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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2019.08.11 19:00

▶ 목사와 성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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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와 성도-③

지난번 글을 통해 목회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신앙으로 함께하는 형제들 가운데서 칭찬과 존중을 받고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사도바울의 말로 나누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전서(4:16)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요청합니다. 이와 같은 성격의 말들을 여러 서신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갈4:12,빌3:17,살전1:6,살전2:14,살후3:7-9). 이 모든 본문들 중에서 사도바울은 단 한번도 그리스도의 위치를 탐하려 했거나, 자신을 신격화 하여 구원자로 믿고 따르라는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서신서를 읽는 우리도 사도바울을 영적 교만과 우월감과 자만심 가운데서 자신을 자랑한 사람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면 그것은 본절의 의도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사도 바울을 다른 이단들이나 변질된 사역자들과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복음에 대한 수고와 헌신을 훼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를 크게 훼손하는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본받는 자 되라고 권한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결국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는 고전11: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그러면 사도바울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하지 않고, 왜, 굳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했을까요? 어느 신학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복음을 드러내고자 일평생 수 많은 고난 속에서 살았던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직접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두기 위하여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저는 이에 대한 의견에 추가적으로 두가지를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믿으며, 따르고 있지만, 깨닫는 것과 믿는 것이 더디어 계속 양육이 필요한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의 삶을 본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미숙하고 어리석은 사역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두가지 이유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여러 번 직간접적으로 그의 서신서를 통해서 언급하였습니다. 특히 이 글의 주제에 따라 살펴보더라도, 사도바울은 규모없이 행하고,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게 행하며 오직 자신들의 배와 유익과 이익만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에게 철저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간청한 것입니다(살후3:9). 그러면 사도바울은 그러한 자들에게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본받으라고 했을까요?

 

서신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듯이 사도바울은 육체의 약함과 고질적인 질병이 있었고(갈4:13-15), 어느 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떠나 행하고 믿음에서 떨어져 가는 형제들에게 투박하고 거친 말로 책망하였고(고후11:4,갈2:11-14), 어느 때는 거짓된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거침없이 저주를 퍼붓듯이 말을 험하게 하였고(갈1:8), 그리고 어느 때는 복음을 타협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 보기에 거만한 태도처럼 보이는 행동을 했음에도(갈2:1-9)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된 형제들이 자신을 본받기를 바랬습니다. 오늘날 사역자들이 사도바울을 통해 무엇을 본받아야 할지 깊이 상고하여 다양한 사역 현장에서 적용함으로 공동체와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후서 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살후3:6 형제들아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위 본문을 살펴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밤낮으로 수고하고 애썼던 것을 언급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고 탐욕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사역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미숙한 사역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은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보장받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특히 고전9:6-10절에서는 일반적으로 일한 대가로 그에 상당한 임금을 받는 것이 마땅하 듯 사역자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말에 이어서 세상에 속한 것으로 영적인 것과 비교할 때 지극히 미미한 것을 요구한다고 하는 것이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님을 피력한 것입니다(고전9:11). 특히13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드려지고 남은 고기 중 일부를 그들의 몫으로 할당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율법 규정(레7:6-14, 레7:18-36)까지 언급하면서 교회가 복음 사역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를 공급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합법적인 권한을 쓰지 않고 도리어 스스로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자비량(tent-maker)으로 사역을 하곤 했습니다(고전9:7,행18:3,행20:34-35). 그 이유는 교회에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다 혹 복음이 가리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잠시 누릴 유익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된다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후서와 고린도 전서를 통해 사도바울은 오늘날 사역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슨 본을 보이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합법적인 권리라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처음 세운 자로서 그 어떠한 사람들보다 더욱 물질적인 권리를 요구할 권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도 그러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교회에서 신령한 일을 담당한 자가 사역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과 물질에 얽매여 산다는 것은 합당치 못함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역자가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보장 받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성도들에게 이 일로 실족함 없이 건강하게 신앙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인내로써 모든 것을 참았던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면 한심합니다.
‘사례비를 더 올려 주라’, ‘판공비를 더 주라’, ‘은퇴자금을 주라’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느 때에 교회에서 받을 연봉을 생각하고, 은퇴자금을 생각하고 신학교에 입학하였던가요?

‘부름 받아 나선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다’라고 찬양하며, 고백하지 않았던가요?

누가 여러분을 이렇게 속이고 꾀었습니까? 
어찌하여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까?

 

어떤 분들은 성경을 오해하여 마치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이 복음적이고,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 또한 성경을 왜곡한 것입니다.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복음적이며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사람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도 그리고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더욱 믿음으로 행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고 우리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만 내려 놓으라고 하지 말고, 실제로 목회자가 자기의 합당한 권리를 복음을 위해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그 어떠한 말보다 힘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서를 통해 사역자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좆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이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명하였습니다(벧전5:1-4). 그러므로 성도 위에서 군림하는 자세가 아닌 양무리에게 본이 되는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목회서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디모데서와 디도서에는 사도행전에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목회자의 자질과 자격에 대해 말해 주고 있지만, 이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과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잠10:12,벧전4:8).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며,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하는 자로서 모든 사람과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고전10:23-33).

 

오늘날 교회에서 담임목사 세습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사도들과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을 본 받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양무리인 교회를 위해 자신의 합당한 권리마저도 포기했던 사도들처럼 내려놓고 희생하고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우리와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구속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빌2:6-8). 우리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서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도 부족할 이 때에 불법을 행하고, 없는 권리도 만들어 강탈하고, 빼앗고, 갈취하려고 하니 이 시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시대에 주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주의 양무리를 위해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 가슴을 치며 또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동안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의 여행에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음(고후11:23)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해 도전한 거짓된 선생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현혹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도발로 인해 괴로워하였습니다(고전9:1-2,고후11:22-32,행20:29,30).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들 중에 누가 약하거나, 누가 실족한 성도가 있으면 마음을 함께 하였고, 함께 애타며 괴로워했습니다(고후11:23-30).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할 때 함께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이것은 또한 건강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엡1:22,23). 바울의 태도는 그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우리는 각 지체임을 분명히 믿고 자신의 삶 속에서 그대로 느끼고 살았음을 증거합니다. 그래서, 성도 중에 누구라도 실족하게 되면, 애타하지 않더냐?(고후11:29,고전 9:22)라고 한 것은 심지어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했던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에 대해 악한 감정으로 대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감정과 사도적 인격과 목회자적 열정으로 대했던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분쟁이 많은 교회에서 모든 사역자가 본받아야 할 태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역자가 다른 교회의 분쟁과 다툼을 먼산 불구경하듯 하고, 심지어 자신의 교회의 성도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에게 좋은 소리하는 성도들의 말만 듣고, 혹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성도들에게는 악한 감정으로 대하고 있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와 같고 사도바울이 고난 중에라도 우리에게 본을 보인 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태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도바울은 수없이 죽을 뻔했고,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음에도 불구하고도, 날마다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로 속에 눌리는 일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고후11:28). 이 염려와 눌림은 자신의 생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오직 목회적 관심, 즉 교회에 관한 염려와 눌림 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마음에 고통이 되는 것은 성도들이 온전한 신앙에 이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교회들로부터 들려오는 분쟁과 타락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으며, 교회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고심하고, 눌림이 있을 만큼 애썼던 것입니다(롬14:1). 그는 교회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 더 도와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눌림까지 생길 정도로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선을 행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모습을 본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역자가 당시에 사도 바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도들을 비롯한 많은 복음의 동역자들과 경건한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과 같이 이렇게 수고한 다른 사도와 복음전도자들과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교사들을 본받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빌립보서 3장 17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이 본문에서 '우리'라는 말은 사도바울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빌2:25,29)를 말합니다.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은 물론 다른 동역자들의 삶을 본받아 배우기를 권면한 것입니다.

 

특히 히브리서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복음을 위해 희생했던 삶을 살았던 여러 믿음의 형제들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6-38).

 

이 본문에서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의 죽음과 고통과 시험과 희생을 경험해 보아야 그들의 삶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려는 의도보다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구원의 능력 곧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이러한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려고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히11:35), 자신의 합당한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자 했던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유익과 이익과 배를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기꺼이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고 희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것과 수 많은 시험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궁핍과 환난과 학대와 유리하는 것을 참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직분을 막론하고 그 자질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지난 글에서 에베소서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목회자는 물론 모든 교회 직분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역자들 이므로 본이 되는 위치에 있어야 함을 요청 드렸습니다. 그 한 예로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를 교회에 세우라고 합니다(딤전3장). 이는 어느 특정 직분자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모든 직분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특히 목사는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양무리를 먹이는 자로서 모든 형제들보다 배나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께 교회를 돌아보리요?’(딤전3:5)라고 하신 것은 곧 가정이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목사는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가정의 훌륭한 가장이 되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에게 본이 되도록 하며 그들로 부모에게 복종하는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목회자 자녀들이 신앙에서 탈선하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일은 자연스럽게 교회 직분자들과 성도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청년이 없다, 청소년이 없다, 어린이가 없다고 하며 사회풍조를 탓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 자녀 문제와 목회를 따로 구분해서 보는 것은 외식 된 태도이고 이중적 자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성경은 보편적인 상식에서 우리에게 합당한 본을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의 자질에 대해서만 논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자질에 대해 더 많이 논해야 할 이유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건강히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선한 본을 보여야 제직자들이 그 본을 따라 행하고 그리고 성도가 그 본을 따라 선하고, 의롭고, 바르고, 신실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번 글을 통해 목회자의 자질에 대해서 나눈 것은 목회자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연약하지만, 끊임 없이 말씀에 착념하여 그리스도를 본받고, 사도들을 본받고,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본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양무리들에게 본이 되고, 더 나아가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도 주의 이름으로 주의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고 헌신하고 애쓰는 모든 주의 사역자들에게 앞으로 우리의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을 것입니다(벧5:4). 끝으로 헌신하시는 모든 목회자와 모든 성도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고,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여 성령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목사와 성도’라는 주제로 세번에 걸쳐 짧게 나누었는데, 이 주제는 2015년 목회자 대상, 12강으로 나눈 내용을 지면으로 다 옮기는 것이 어려워 1강에서 나눈 내용 일부분을 발췌해 편집해 전해 드렸습니다. 글로 전하는 것이 한계가 있고, 부족함이 많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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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이다.

(좋은만남 교회-북쪽), 021262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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