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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교회가 단 한번이라도 분쟁과 다툼과 분열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정신이 멍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게 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주변사람들과 갑자기 관계도 끊어지고, 사랑은 급속도로 식어져 가면서 관계는 서먹해 지고 냉기류가 흐른다. 이렇다 보니 누구라 할 것없이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큰 상처와 어려움이 생긴다. 심지어 이러한 분쟁과 다툼을 지켜보는 사람들 조차도 심경이 복잡하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현재 교회들 마다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다툼과 분열의 원인과 이유를 세부적으로 정확히 다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한 때 함께 사랑했고, 서로 마음을 나누었고, 서로를 위하며 살았던 분들과 헤어진다는 상실감과 고통은 누구를 막론하고 클 것이다. 비단 이 일이 어느 특정 교회 문제 만이 아니라 주변 많은 교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에 영적 상실감과 무기력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우리들에게 왜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하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면죄부를 팔았던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래도 구원에 대해 불안정한 상태로 신앙생활하기 보다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었으니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중세 교회가 타락하였지만, 그래도 이일로 수 많은 개신교 교회가 전세계에 흩어졌으니 이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거짓말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래도 내 거짓으로 꾸며낸 간증으로 많은 사람들을 회심 시키고 주께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면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주장들을 하는 자들에게 대해 로마서 3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롬3: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위 본문을 잘못이해하면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으면 어떻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을 수 있겠느냐 곧 심판을 받을 수 없다’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상황 윤리 사상이고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한 사람들에 대해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8절)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바울의 입장은 철학적 반론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을 논리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바울은 과거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것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하나님께 열심이 있어 율법을 지키려다 보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으나, 그 핍박하려는 행동 때문에 현재 자신을 있게 했고, 동시에 그 핍박했던 사건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 사마리아와 다른 이방 지역에 복음이 빨리 확산되었다란 궤변과 변명을 하지 않다. 그는 철저히 회개하고 반성하고 그 행동이 어리석었음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행9장, 행22장, 행26,고전15장, 갈1장,빌3장, 딤전1장). 

 

오늘날에 교회 안에 분쟁과 다툼으로 결국 교회가 나뉘어 진 것을 이렇게 교회가 두개가 되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로 커졌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사도바울의 가르침에 동일한 적용 점이 될 것이다.

 

지금도 교회 안에 여러 분쟁과 다툼으로 결국 교회가 나뉘어지는 소식만들어도 고통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때마다 칼로 베이는 듯이 마음이 아픔이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수 없는 생각이 함께 든다. 왜냐하면 분열되는 교회들을 보면서 그들로 인해 마음도 아프지만, 동시에 불편한 마음도 함께 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 곧 우리 믿음의 선진들에게 보이신 선한 길을 알아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동안 선지자가 와서 바른 길을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동료가 와서 권하여도 듣지 않고 결국 분쟁의 꼭지점에 있으려고 한다.  사단의 계략은 교회에 분쟁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을 그 문제의 꼭지점에서 서게 하고 그 문제의 원인을 보지 못하게 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그 동안의 모든 것을 다 보상해 줄 것처럼 성도들을 미혹한다. 교회 분쟁과 다툼과 분열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신앙의 상식과 본능으로 우리는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문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한 채 비슷하고, 같은 일이 계속 반복 되고 있다.

 

오랜 다툼과 분쟁으로 결국 교회가 나뉘어지고 나면,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 같아서 어안이 벙벙해 진다. 그리고 그 안에 수 많은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채 머리 속에서 뒤엉켜 마치 미칠 것 같아 스스로 지난 과거 일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 안에는 분노와 판단과 정죄와 서운함과 슬픔과 괴로움과 외로움 등, 이 모든 것을 세탁기에 돌려서 씻어버리고 싶어한다. 마치 세탁이 다된 후 물이 빠진 소리와 함께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한 자신의 속도 후련하게 뻥 뚫어지길 바라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감동과 위로를 주는 햇살과 같은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전과 같이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지난 일을 잊으려 하다 보니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 오직 과거 일을 빨리 잊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만이 앞서서 잘못된 선택과 그리고 미숙 함에서 오는 반복되는 실수 연발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다라고 하며 자신들의 모습과 현실을 회피하고자 한다. 누구나 이러한 고통과 정서적 압박감 때문이라도 과거 일을 빨리 잊고,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 같다. 아마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일반은총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특별 은총을 허락해 주셨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신앙의 정석과 같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다.

 

그동안 이 곳에서 분쟁과 다툼과 분열이 있는 교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분쟁과 다툼과 분열이 반복되다 보니 헤어진 옷처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한 상황까지 된 성도들을 보면 안타까움과 눈물을 감출 수 없다. 분쟁과 다툼이 있는 교회들이 결국 나뉘어져 따로 각각 자신들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린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이 각자 자신들의 예배와 기도와 찬양을 받으실 것이라는 무한한 확신 가운데 있는 것 같다. 무엇을 근거해서 그리고 어디를 근거해서 그런 확신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상처와 아픔은 사그라져 다행히 분열된 두 교회가 각각 안정을 되찾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계속된 분쟁과 다툼이 반복되는 교회도 있다. 그렇다 보니 짧게는 몇 개월 후에, 길게는 몇 년 후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교회도 있다.  그 때마다 눈물의 기도와 찬양과 말씀은 있으나 문제의 본질과 원인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길에서 해석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곧바로 잊어버리려고 한다. 아마 그동안의 분쟁과 다툼으로 오는 정신적 피곤함과 정서적 불안감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의지적 모습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러한 성도들에게 권면과 조언은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대해야 할 것이다. 이미 여러가지 분쟁과 다툼의 일로 마음이 지쳐있고 예민해진 성도들에게 자칫 심리적으로 더 강한 압박감을 주어 도리어 문제의 본질을 못보게 하고 도리어 감정만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주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가르치려고 힘써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때가 악 하므로 사람들이 바른말 하는 선지자의 입을 막고 오히려 자기들의 뜻에 맞는 부드러운 말과 미혹하는 말을 찾아간다는 것이다(사30:10).

 

하나님은 오늘날 예레미야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촉구하고 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함께 아래 예레미야 말씀을 읽어보면서 오늘날 교회 분쟁과 다툼과 분열 중에서 문제해결보다 마땅히 우리가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렘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18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분쟁과 분열이 있고 난 후 각자 기도에 눈물이 있으나 정작 자신들이 하는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말씀을 각자 들으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있다. 그리고 각자 성경을 읽으나 그 뜻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좋은 음율에 맞추어 찬양을 하나 그 찬양의 가사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단지, 이 모든 상항을 하나님의 뜻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찬양과 기도와 스스로 내뱉는 말로 스스로 취해 있는 것 같다. 이제 성경 하나를 같이 풀어보면서 우리의 각자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아래 욥기서의 글을 읽어보자.

욥25:2 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3 그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 광명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냐 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6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이 말씀의 배경을 알지 못하고 그냥 읽으면 참으로 은혜스럽고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는데 합당한 내용이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욥의 친구 빌닷이 욥에게 한 말로서 그는 의롭다 칭할 수 있는 권리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 자기 사정을 말하겠다는 욥을 교만하다고 정면으로 논박하고 있다. 이 말은 신학적이고 매우 경건한 발언 같으나 이제까지 욥이 항변해 온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엉뚱한 것이며, 욥이 말하고자한 초점에서 벗어난 이야기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들을 책망하면서 욥의 말과 같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책망하였다(욥42).

 

왜일까?

 

제가 이곳에 말하고자 한 문제의 핵심은 누가 더 감동과 은혜스럽고 경건한 언어와 신학적인 언어를 쓰느냐가 초점이 아니라 상항과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고 있느냐에 초점이 있다. 미숙하고 둔하여 마음으로 깨달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훈계를 그러나 의로운 마음이 불법한 행실로 인해 그 마음이 고통받는 자에게는 위로가 필요한 것이다(벧후2:8). 이와 같이 우리가 하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경우에 합당하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회개하려고 해도 돌이켜 갈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지만, 귀가 어두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 듣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뜻이 무엇인지 선지자를 통해 알려고도 하지도 않고 심지어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말씀을 깊이 묵상하거나 상고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으면서 찬양과 기도 예배를 드리면서 감이 저절로 떨어지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많은 질문과 함께 고민하고 갈등하고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것도 잠시 잠깐 그리고 귀찮은 듯 이렇게 말한다. 이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라며 현실을 회피하려고 한다. 모든 일에 스스로 해탈하듯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에 둔하고, 어리석고, 미련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대신해 그 자리에 쓴 뿌리가 나서 정작 그 뜻을 알려고 하기보다 누가 더 잘했는지 판단해 주길 바란다. 아마 자신들이 맞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 라고 말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혹 자신들에게 책망이나 바르게 하려는 시도를 하면 곧바로 경직되어 버리거나 배척해 버리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문제는 계속 반복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지혜도 없다. 모두 손 놓고 바라만 보고있다. 사단의 권세가 교회를 흔들고 무너뜨리고 분열시키고 파괴시켜도 그냥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고 있다. 그래서 교회 분쟁과 분열을 몇 번 경험한 분들은 신앙을 포기하거나, 가나안 성도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매우 방어적인 태도로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반대로 공격적인 태도로 교회를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 이렇다 보니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신뢰가 사라지고 트라우마를 안고 있듯이 조금이라도 비슷한 소리가 교회에서 나면 곧바로 방어적 태도로 또는 공격적인 태도로 전환하는 것 같다.

 

이 세대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란 말씀이 무슨 뜻인지 마음으로 깊이 깨달아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날 교회에 분쟁과 다툼이 많은 이 시대에 믿음의 선진 호세아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길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상고해 보길 권한다. 그리하여 각자 허리를 동이고 마땅히 해야할 일을 생각해 보자

 

▶호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 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 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 의 고기 도 없어지리라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 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 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 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본문 4절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는 것은 이 상황을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하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그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고 비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알기를 원치 않고 누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느냐?에 대한 비난과 비방과 다툼은 결국 사랑을 잃어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진리에서 떠나 버리게 하고 그 자리에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포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절).

 

그리고 4절 후반부에서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라는 것은 이미 타락한 제사장들처럼 너희 백성들도 똑같이 타락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백성이 타락하여 제사장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제사장들이 먼저타락함으로 백성들이 완악 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라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은 많아도, 반대로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완악한 백성을 본받지 말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그 만큼 교회 분쟁과 다툼과 분열에 있어서 교회 리더십이 중심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성경에서는 인도자의 타락상을 성경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다(마23장,렘5:30,렘6:13,겔34장). 지난 해 2018년에 교회개혁실천연대가 교회 문제로 상담해온 117개 교회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담임목사 때문에 교회에 분쟁이 생겼다는 교회는 68개로 전체의 58%를 차지했다. 그리고 원로목사 부목사 포함하면 70%를 차지한다. 그리고 교회 전체 리더십까지 포함하면 90%를 넘나든다. (http://christian.nocutnews.co.kr/news/5090127) 이러한 통계는 교회 문제로 상당해온 교회를 대상한 것이지 현재 잘하고 있고, 건강한 교회를 포함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통계는 100%신뢰할 수 없다 할지라도 참고할 상항은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목회자를 무한정 신뢰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반대로 모든 일에 책임을 목회자로 돌리는 것도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세의 잘못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호세아 4장을 살펴보자.  2절에서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라는 의미는 폭력은 폭력을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는 뜻이다. 이를 교회에 적용하면 교회 안에 사랑보다는 믿음을 위한다는 명목아래 비난과 비방의 언어폭력이 난무하여 사랑이 식어진 모습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작금의 현실에 일어나는 일은 어느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책망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의미로 각자가 받아들이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특정 장소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각각 자기를 돌아보고 그리스도께서 용서함과 같이 서로 용납하고 서로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그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 열거되는 말씀을 스스로 읽어보면서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들에게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겸손히 듣고 행하길 바란다.  

▶마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 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 하였으리라

 

▶마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미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 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 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 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제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 보면 좋겠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거부당하거나, 외면 당해서도 안됩니다. 세상이나 철없는 어린 아이들에게나 있는 왕따가 우리 신앙과 교회 안에는 없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참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양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되고, 한 몸이 된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산과 광야와 들판에서 유리한 자같이 내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악한 자의 노략 거리와 이단의 간사한 이빨에 잡혀 그들의 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겔34:5-6). 성령이 오래전에 우리로 하나되게 하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엡4:1-3). 우리의 신앙을 좀먹는 기복주의 신앙과 맘몬주의와 바알과 아세라를 제하여 내고 힘써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의 말씀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분쟁과 다툼이 있는 상항일수록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여호와께 돌아가 주의 뜻과 율례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요14ㅣ15). 그 동안 교회는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을 잘 감당해 왔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른 신학을 지키려고 애를 썼고, 더불어 이단과 사이비들의 교리들과 싸워왔고, 그리고 사회 불의에 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싸움에서 우리는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진리를 교회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믿음이 교회 안에서 점점 희미해진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쉽게 비판하고, 서로 파당을 만들고, 수군수군하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이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다툰다 할지라도, 교회는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믿음과 말씀과 복음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엡6:11-13).…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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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묵상 하나님께 기쁨이 되자 KWILEE 2019.03.26 70 3
168 일반 사람을 찾습니다 (김금옥 님) shhan 2019.03.18 135 2
167 광고 금요 찬양 예배 원처치 2019.03.16 1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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