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 1세기 로마 식민도시 빌립보에서 묵상하는 빌립보서 (6부)
감옥에 같혀 있는 바울과 그를 방문한 누가. 영화 바울, 그리스도의 사도(2018)의 한 장면.
(사진 출처: https://ffoz.org/messiah/articles/paul-apostle-of-christ-a-review-of-the-movie)
신약성경의 세계 속에서 묵상하는 신약성경
주후 1세기 로마 식민도시 빌립보에서 묵상하는 빌립보서 (6부)
"바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늘 함께 공존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곧) 그분을 신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이,
여러분에게 은혜로이/특권으로 주어졌기(하나님에 의해 [신적 수동태])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29 [필자번역])
빌립보서 1:29에서 바울이 언급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과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관되어 있다. 이 연관관계에 대해 갈라디아서 2:15–16, 19–20과 로마서 6:3–5 및 로마서의 몇 부분들은 흥미로운 통찰들을 제공하고 있다. 서면의 한계상, 로마서 6:3–5과 이와 관련된 로마서의 몇 부분들은 다음 칼럼 글에서 다루겠다. 이번 칼럼 글은 갈라디아서 2:15–16, 19–20을 먼저 살펴보고, 짧은 묵상을 제시할 것이다.
갈라디아서 2:16, 19–20
갈라디아서 2:16, 19–2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과 율법에 대해 죽는 것이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주후 1세기 바리새인 출신이었던 바울에게 이 죽음은, 바울의 내면속에 환희와 동시에 고통을 가지고 왔을 듯 하다. 또한 그 죽음은 바울이 삶으로 살아내며 전파하는 복음의 주요한 부분이었기에, 바울의 인생을 그의 동시대 유대인들에게 핍박 받는자로 살아가게 몰아갔다. 따라서, 바울이 율법에 대해 죽는 것이 그의 삶에 내면적, 외면적 고통을 가지고 왔기에, 그 죽음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15–17에서 주어를 “우리(Ἡμεῖς)”로 바꾸면서, 민족적으로 유대인인 베드로와 자신이 더 이상 율법이 아니라, 율법이 늘 가리키고 있었던(갈3:23–25) 그리스도를 신뢰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자들이 될 수 있음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다.[1] 갈라디아서 2:16에 바탕하여, 바울은 2:19a-b에서 그리스도를 신뢰함이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을 동반한다고 언급한다. 이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은, 바울의 정체성, 세계관, 가치관, 삶의 의미, 존재의 목적,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이해 및 그의 삶의 아주 많고 깊은 것들이 재구성-재조정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것을 고려할 때, 그 재구성-재조정됨이 단순히 감사와 기쁨 속에서만 일어났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오히려, 감사와 기쁨과 동시에 그동안 율법에 대해 배워온 것들과 율법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믿어왔던 것들이 참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 자신의 동시대 유대인들(예: 바울의 가족들 [특히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행23:6)], 함께 동거동락 했던 동료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들을 경험했을 것 같다.
갈라디아서 1:13–14을 비춰볼 때, 율법은 바울의 삶 속에 신앙적, 제의적, 민족적 중대성을 넘어, 깊고 심오한 실존적 중대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이 다소에서 태어나서 약 13-15세로 성장할 때까지(행 21:39; 22:2),[2] 경건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바울의 부모님(특히,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의 아버지 [행23:6]; 빌 3:5)은 여러 그리스-로마 지성적 문화들과 사상들로 가득했던 다소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마도 집에서 집요하게, 회당에서 열심히 배우도록 했을 것이다. 이 가르침은 모세 5경 및 주요한 구약성경들 뿐만 아니라, 율법을 신실히 지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유대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임을 다루는 주후 1세기의 경건서적들인 마카비 1, 2서와 집회서의 주요 내용들을 바울의 내면에 깊이 심기는 것을 수반했을 것이다.[3] 또한, 바울이 초기랍비들의 거성 중 한명이었던 가말리엘의 가르침 아래 약 13-15세부터 율법을 깊이 공부하기 시작하며(행 22:3) 랍비로서의 삶을 구성했던 것은,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이를 수 있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향한 연모와 동경을 바울의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했을 것이다 (롬2:6). 따라서, 바울의 인생과 커리어에 있어서 율법은 그의 정체성, 세계관, 가치관, 삶의 의미, 삶의 방식, 존재의 목적, 하나님에 대한 이해 및 그의 삶의 아주 많고 깊은 것들을 정의 내리는데 있어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2:19a에서 바울이 언급하는 “율법에 대해 죽는 것”은 율법이 바울의 삶 속에 세웠던 모든 것의 재구성-재조정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현상은 바울이 알아온 자신의 존재에 대한 수많은 부분들을 부정하는 것을 수반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율법에 대해 죽는 것은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배우게 했다 ([갈]2:19[b]).[4] 갈라디아서 2:19c–20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기전까지의 자신을 옛 자아로 규정시키고 죽은 존재로 이해하는 듯 하다. 동시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관계가 형성됨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재조정된 자신을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참여함을 통해서만 인식하게 되는 새롭게 창조된 자아/창조물로(갈2:20; 6:14–15) 인식하는 듯하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제는 저는 더이상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그러나) 제 존재의 영역속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는 저는 나를 사랑하셨고 저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실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9c–20 [필자번역])
정리하자면, 바울에게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 세계관, 가치관, 삶의 의미, 삶의 방식, 존재의 목적, 그리고 삶의 아주 많고 깊은 것들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갈 2:20)을 통해서 새롭게 규정되고, 재구성-재조정되는 것을 동반한다. 이러한 새창조(갈2:20; 6:14–15)는 바울의 내면에 환희와 동시에 여러 고통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또한, 바울이 경험한 이 새창조 사건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동시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가지고 오는 다양한 핍박들(외부적인 고통들을 [빌 1:30; 고후11:23–28])을 가지고 왔다. 따라서, 바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늘 함께 공존했다고 볼 수 있다.
묵상적 단상
바울의 삶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가지고 오시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빌 1:28e, 29a) 내면적인 고통과 외부적인 고통을 포함하는 듯하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은, 종종 고통스러운 내면적 가치들의 재조정-재구성을 동반한다. 또한, 21세기 현대 서구문명 사회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재구성된-재조정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여러가지 고민들을 마주하게 된다. 세상속에서 비그리스도인들과 다양한 관계들을 맺으며 살아갈 때,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하고, 이 선을 지키기 위해 2-3배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참고 더 용서해야 한다. 이러한 삶을 살며 외부적인 고난인 사회적 고립이나 일종의 외면을 받기도 한다. 갑의 자리에 있지 않고, 을의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바울은 그의 삶 속의 여러 내면적-외부적 고난을 결코 혼자 견뎌내여야만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이를 위해 고린도후서 1:8–10을 잠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빌립보서가 어디서 쓰여졌는지에 따라 빌립보서의 저술시기는 달라진다.[5] 하지만, 빌립보서가 주후 50년대 중반에 에베소에서 저술되었다면, 바울이 빌립보서 1:30에서 언급하는 자신이 당한 고난은, 고린도후서 1:8–9에 언급된 에베소에서 당한 극심한 고난을 가리킨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린도후서 1:8–10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8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에 대해 여러분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질 지경이 됐습니다. 9 우리는 마음에 사형 선고를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0 그분은 우리를 과거에도 그렇게 큰 죽음에서 건지셨고 또 미래에도 건지실 분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이후에도 건져 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고후 1:8–10 [우리말성경])
바울은 이러한 극심한 고난속에서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3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4 그분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인해 우리도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넘칩니다. (고후 1:3–5 [우리말성경])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가운데 있는 바울을 위로하시며 그 고난을 통과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낸다. 특히 고린도후서 1:10에서 바울은 자신이 미래에 당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자신감 있게 선포하며 소망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속에서 바울은 고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발견한다.
비슷하게, 빌립보서 3:2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속에 있는 빌립보 성도들이 이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고대하며-기다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실 하늘에 우리의 시민권이 있습니다!” (빌 3:20 [필자번역]).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가득한 이 땅으로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땅은 한시적으로 지내는 곳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따라가는 것과 공존하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고난은 하늘의 시민으로 겪어야 하고, 그 시민으로 성장해 나가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길/삶의 일부분”인듯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울의 여러 면모들은, 바울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보다, 바울서신들의 모든 독자들이 바울과 같이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필자와 이 칼럼 글을 읽는 모든 독자분들이 바울의 축도를 통해 힘과 믿음의 용기를 얻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신실히 통과할 수 있길 기도한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에베소서 3:20-21 [우리말성경])
각주:
[1] Wolter, Michael, Paul : An Outline of His Theology (Waco, Texas: Baylor University Press, 2015), 253–54.
[2]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책을 추천한다: Martin Hengel and Roland Deines, The Pre-Christian Paul (London: SCM Press, 1991).
[3] 마카비 1, 2서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들을 타협하라고 압박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신실히 지키다가 순교한 경건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주후 1세기 유대인들의 주요한 경건서적들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집회서는 유대인이 바라보기에 여러면에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그리스-로마 사회속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경건히 살 것인가를 다루고 있는 주후 1세기 유대인들의 주요한 경건서적들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특히 회당에서 젊은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4] 존 M. G. 바클레이, 바울과 은혜의 능력, 김형태 역 (서울: 감은사, 2021), 119.
[5] 이 부분에 관하여, Michael F. Bird and Nijay K. Gupta, Philippians, New Cambridge Bible Commenta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0), 20–24를 보라.
원처치 칼럼은 육하원칙에 의거 사실 전달에 충실한 기사와는 달리, 저자 개인의 주장이 담긴 글임을 밝힙니다.
원처치 저자 신찬기 교수

신찬기 교수는 미국 텍사스 침례대학에서 인문학를 전공하고, 고전어(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부전공 했다. 미국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석사(Th.M)를 졸업했으며 신약성서학을 전공했다. 현재 오타고 대학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사용하는 아버지 은유에 관한 박사(Ph.D) 연구논문을 집필중이며, 뉴질랜드 알파크루시스 컬리지 한국부 학장으로, 미국 미드웨스턴 침례 신학대학원과 스펄전 컬리지에서 신약성서학 객원교수로, 오타고 대학에서 신약성서 헬라어 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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