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만] 소설 <데미안>으로 기독교 세계관과 구원론 이해하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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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만 : 신학과 문학과의 만남(9)
소설 <데미안>으로 기독교 세계관과 구원론 이해하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통합적 사유로 나아가는 여정"
오늘은 독일계 스위스 문학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통해 인간의 영적 성장 과정과 내면의 깊이를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유복하고 모범적인 가정에서 자라, 늘 '선'한 세계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속한 '선'과 정반대되는 '악'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 호기심은 그를 불량한 소년, 프란츠 크로머와 엮이게 합니다.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자신이 마을 근처의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속인 것입니다. 이 거짓말은 싱클레어의 발목을 잡습니다. 크로머는 이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며 싱클레어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집안에 있는 저금통을 몰래 털며 조금씩 크로머의 요구를 충족시키던 싱클레어는 점점 더 깊은 절망과 죄책감에 빠지게 됩니다. 가족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도둑질이라는 범죄를 처음으로 경험하며 그는 ‘악’과의 접촉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보다 한 살 많은 소년으로, 매우 차분하고 우월한 존재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는 싱클레어와 수업을 함께 들으며, 성경에서 흔히 '악인'으로 여겨졌던 카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소개합니다. 데미안은 카인이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고귀한 인간이라고 말하며, 싱클레어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줍니다. 싱클레어는 이 관점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어느새 설득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때에도 싱클레어는 여전히 크로머에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장면을 본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크로머에 대해 묻습니다. 싱클레어는 끝내 대답하지 못하지만, 데미안은 그를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후로 크로머는 더 이상 싱클레어를 괴롭히지 않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이 상황에 놀라 데미안에게 어떻게 했냐고 묻자, 데미안은 "그저 너와 이야기했듯이 크로머와도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비록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말이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는 크로머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다시 '선'의 세계로 돌아오게 됩니다. 안도감을 느낀 싱클레어는 다시는 '악'에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싱클레어는 자연스럽게 데미안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데미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리 수업 시간에 다시 데미안과 가까워질 기회가 찾아옵니다. 수업에서 선생님이 ‘카인의 표적’에 대해 이야기하자, 싱클레어는 갑작스레 데미안이 떠오릅니다. 이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하게 되었고, 그 이후 데미안은 수업 시간마다 조금씩 싱클레어 곁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결국, 그들은 나란히 앉게 됩니다. 데미안은 이번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그는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간 강도가 오히려 더 정직하고 용감하다고 주장합니다. 비겁함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는 데미안의 해석은 싱클레어에게 또다시 큰 혼란을 안겨줍니다. 그 혼란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싱클레어는 결국 학교를 옮깁니다.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며 더 성숙해진 싱클레어는 여전히 데미안을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혼란스러운 생각들과 그 그리움이 그를 방탕한 생활로 이끌었고, 그는 점점 퇴학의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그때, 싱클레어는 한 다리 위에서 한 소녀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는 싱클레어에게 한눈에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싱클레어는 소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녀를 멀리서 숭배하며 사랑의 대상을 삼습니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그리움과 경외감 속에서 싱클레어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작품이 완성된 후, 그가 마주한 얼굴은 낯익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림 속의 얼굴은 바로 데미안이었던 것입니다. 그 충격적인 깨달음 이후,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매의 그림을 그려 편지를 보냅니다. 이는 그가 다시금 혼란 속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그 이후, 싱클레어는 방탕한 생활을 끝내고 학업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부터 짧은 편지를 받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
싱클레어는 이 편지에 담긴 깊은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다시 한 번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교외의 작은 교회에서 아름다운 오르간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에 이끌려 그는 피스토리우스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싱크레어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아브락삭스에 대한 궁금증과 자신의 내면에 대한 답을 서서히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여정 속에서 싱클레어는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자주 의미심장한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 그림에게 물었다. 그림을 비난했다. 그림을 애무했다. 나는 그 그림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연인이라고 불렀다. 창녀이고 매춘부라고 불렀다. 아브락사스라고 불렀다.” 이 꿈은 싱클레어의 내면적 갈등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드러냅니다. 그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은 그가 찾고자 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대한 갈망을 암시합니다.
한편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이 반복되면서 싱클레어는 그와의 대화가 점점 지루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피스토리우스는 알에서 나오지 못한 존재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인물이었고, 이에 반해 싱클레어는 여전히 알을 깨고 나아가려는 열망을 지닌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싱클레어는 새로운 깨달음과 변화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후 길을 걷던 싱클레어는 우연히 다시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데미안의 초대로 그의 집에 가서 어머니 에바부인을 만납니다. 싱클레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바부인이 싱클레어의 꿈속에 그려졌던 여인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싱클레어가 오랜 시간 갈망해 온 이상적인 여성상이었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에바부인에게 싱클레어는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에바부인은 그런 싱클레어에게 깊은 통찰을 전합니다. “사랑은 간청해서도,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리지 않고 스스로 끌게 됩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지만, 언젠가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 때, 내가 당신에게로 갈 것입니다.”
때마침 러시아와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함께 전쟁에 참전합니다. 전쟁터에서 싱클레어는 한 폭격에 맞아 중상을 입고, 메트리스 위에 눕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데미안이 누워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이 순간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란 인물이 단지 그의 친구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너무나도 닮아 있는 존재였음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싱클레어의 여정은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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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철학을 통해 이 작품을 바라보면, <데미안>의 이야기는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 사이에서의 갈등과 성장을 상징합니다. 기원전 428년경 플라톤 이후, 서구 철학은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를 구분하는 방식의 세계관을 형성했습니다. 플라톤의 관점에서 현실 세계는 변화하고 불완전한 반면, 이데아의 세계는 영원하고 완전합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고대 그리스 철학이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에 융합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었으며, 헬레니즘 시대와 초기 기독교 교부들을 통해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원론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플라톤 이전의 유대교적 세계관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적 세계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규범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사상은 철학적 개념보다 하나님과의 언약,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철학적 사변보다는 실천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이 강조되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성, 인간의 윤리적 책임, 그리고 구원의 약속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플라톤 철학은 기독교 교리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때때로 그 영향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은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를 이원화하여, 물질세계를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를 왜곡하여, 물질세계를 악한 것으로만 여기게 만들었고, 구원을 오직 영적인 해방으로만 이해하게 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결국 영지주의(Gnosticism)와 같은 이단 운동을 발생시키며 기독교 신앙에 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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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플라톤 철학처럼 선과 악의 기준을 이원론적으로 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선과 악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고,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할 때,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선'은 단순하고 명확했습니다. 그의 부모와 교회, 그리고 사회가 가르쳐준 도덕과 규범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싱클레어의 눈에 선한 사람은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아벨이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자신의 첫 번째 양을 제물로 바쳤고, 하나님은 그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반면, 가인은 농작물을 제물로 드렸지만, 하나님은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이에 가인은 질투와 분노에 휩싸여 동생 아벨을 살해하게 됩니다. 성경 전통에서 가인은 죄와 악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데미안은 가인을 단순히 악인의 상징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인을 하나님의 특별한 표(אֹ֔ות)를 받은 인물로 해석하며, 가인의 행동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으로 재해석합니다. 가인이 단순히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인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뛰어넘어 자신의 길을 찾고자 했던 인물로 바라본 것입니다.
또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행악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따르면,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난하며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외칩니다. 반면, 다른 강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첫 번째 강도는 불신과 조롱의 상징으로, 두 번째 강도는 회개와 구원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데미안은 이 두 강도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 틀로 가두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해석합니다. 즉, 첫 번째 강도는 기존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반항의 상징으로, 두 번째 강도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의 일부로 바라봅니다.
물론 데미안의 해석은 자의적이고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해석은 전통이라는 틀 속에 갇혀 일률적인 사고방식만 고수하는 우리의 사유 체계를 환기시킵니다. 플라톤주의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세상과 성경을 선과 악으로만 이분화하는 시각은 때때로 우리를 교조주의와 율법주의에 얽매이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원론적인 사고는 우리가 참된 자유 대신, 규범과 틀에 얽매여 진정한 영적 성장을 방해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성경이 주는 은혜와 진리 안에서 더 깊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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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경과 세상, 그리고 나 자신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에 대해 훌륭한 답을 제시한 초기 기독교 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2세기 말,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위협하던 영지주의에 맞서 「이단논박」(Against Heresies)을 저술한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입니다. 그는 기독교의 통합적 구원 사상을 정립하고, 구원을 단순한 영적 해방이 아닌 전인적이고 구속적인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레니우스의 구원론은 특히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인간의 궁극적인 성숙을 강조합니다.
먼저, 이레니우스는 창조와 타락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셨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인간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였고,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성장해야 했습니다. 즉, 인간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성숙해져야 할 존재로 보았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레니우스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인간을 구원하고 성숙시키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이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레니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아담’으로 묘사하며, 아담이 실패한 곳에서 예수님은 순종을 통해 승리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예수님을 통해 다시 생명과 구원이 세상에 주어졌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이 구원의 의미를 ‘총괄갱신’(recapit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시고, 타락한 인간의 실패를 고치셔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의 모든 실패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회복의 길로 이끄십니다. 따라서 이레니우스의 구원론에서 구원은 단순히 죄사함이나 형벌에서의 해방이 아닙니다. 구원은 더 나아가, 성화(deification, theosis)를 통한 완전한 성숙을 목표로 합니다. 이 성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레니우스는 이를 신화화(deification) 또는 신격화(theosis)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으며 성화의 여정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 구원의 여정은 즉각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숙의 과정이라고 이레니우스는 강조합니다.
처음부터 성숙할 존재로 지어진 인간은, 타락으로 그 성숙 과정이 방해되었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다시금 그 여정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레니우스의 구원론은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성숙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도 이 여정 속에서, 하나님을 닮아가며 성숙해져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레니우스의 구원론적 시각에서 성경을 바라보면, 우리는 가인과 아벨, 그리고 십자가 위의 두 강도의 인생을 인간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사랑하셨지만, 가인도 똑같이 사랑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 역시 우리가 쉽게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선과 악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세상을 그러한 기준으로 바라보는 데서 얻는 유익이 분명히 있겠지만, 현실에서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면, 세상에는 뚜렷한 선과 악보다는 희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복잡한 상황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다룹니다. 예를 들어, 잠언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며 젊은이들에게 지혜의 길을 걷도록 권면합니다(잠 1:22). 그러나 전도서는 더 복잡한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전도서는 선과 악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으며, 선한 것 속에도 악함이 있고, 악한 것 속에도 선함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전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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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그의 대표작 「감시와 처벌」(Discipline and Punish)에서, 인간이 사회적·역사적 구조 안에서 형성된 주체라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는 모두 사회의 전통과 이념 속에 갇혀 있으며, 이러한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나 푸코는 저항과 비판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미 사회 속에서 형성된 이념과 가치관 안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비판하고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념 중 하나가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플라톤의 세계관, 하나의 전통만을 절대화하는 근본주의 사상, 그리고 생각의 기초를 흔드는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우리가 이러한 고정된 틀, 즉 '알'을 깨고 나와야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레니우스가 강조한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잘못된 전통과 왜곡된 사회적 규범이라는 '알'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 알이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 안에 갇힌 새는 결코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헤세는 이렇게 말합니다.“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고정된 전통, 잘못된 사회적 규범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향해 날아오를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성숙과 구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원처치 저자 탁재우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과정(M.DIV)을 마치고, 숭실대학교에서 성서신학(TH.M)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오클랜드 한인교회에서 다음세대 사역을 섬기고 있으며, 청년사역자모임(청사모)에서 회장으로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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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교회와 신앙(8) 신앙의 여정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으니, 신앙에 대한 상상이 끝 없이 일어난다" 장로연합회에서 나의 신앙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작 쓰려하니 내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쓸까 ...Date2024.09.24 Category교회와 신앙 -
[성경과 통일] 분단 책임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반성
(chatgpt 생성이미지) 성경과 통일(8) 분단 책임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반성 "한반도의 분단은 한국 교회의 신앙적 실패로 인한 결과입니다." I. 서론: 분단에 대한 신학적 반성 한국 교회의 분단 책임과 그 원인을 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합...Date2024.09.23 Category성경과 통일 -
주후 1세기 로마 식민도시 빌립보에서 묵상하는 빌립보서 (4부)
(주후 19-20세기 프랑스 조각가 죵-밥티스테 클루드 유진 귀욤[Jean-Baptiste Claude Eugène Guillaume]이 만든 주전 2세기 로마공화국의 평민출신 정부관료로 활동했던 그라쿠스 집안형제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 묘사동상 ) 신...Date2024.09.15 Category신약의 세계 속에서 묵상하는 신약성경 -
[일기쓰기] 도전! 그리스도인의 완전 (1/3)
[사진설명: 영화 해리 포터의 배경이면서, 1725년 한 학생이 방법쟁이 일기쓰기를 암호로 쓰기 시작한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출처 - 위키피디아 CC BY-SA 4.0] 일기쓰기(8) 도전! 그리스도인의 완전 (1/3) "그러므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Date2024.09.14 Category일기쓰기 -
[신.문.만] “소설 <연금술사>로 인간론 이해하기(8)
©아트인사이트 신.문.만 : 신학과 문학과의 만남(8) 소설 <연금술사>로 인간론 이해하기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오늘은 1988년에 처음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약 8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된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Date2024.08.31 Category신.문.만 -
[성경과 통일] 어두운 광복을 기리며
사진: AI 생성 성경과 통일(7) 어두운 광복을 기리며 "평화통일을 위해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들어가는 말 1945년 7월 26일, 미국 대통령 트루먼, 영국 수상 처칠, 중화민국 장개석은 연합국을 대표하여 공동으로 포츠담 선언에 서명했습니다. 선언의...Date2024.08.29 Category성경과 통일 -
[교회와 신앙] 나의 믿음(FAITH), 하나님의 은혜(GRACE)
교회와 신앙(7) 나의 믿음(FAITH), 하나님의 은혜(GRACE)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믿음(FAITH)” 그리고 “은혜 (GRACE)”일 뿐이다." 우리 딸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자기가 덮는 작은 ...Date2024.08.26 Category교회와 신앙 -
주후 1세기 로마 식민도시 빌립보에서 묵상하는 빌립보서 (3부)
고대 로마의 금세공업자의 일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비문. (출처: Jahrbuch des Deutschen Archäologischen Instituts, Band 26, 1911, S. 289 nach Walter Amelung [https://digi.ub.uni-heidelberg.de/diglit/jdi1911/0299]) 신약성경의 세계 속에서 묵...Date2024.08.18 Category신약의 세계 속에서 묵상하는 신약성경 -
[일기쓰기] 도전 성경 읽기
(그림설명: 윌리엄 호가스의 "술취한 거리(Gin Lane)" 1750-1751. 거리에는 주검을 장례하는 사람들, 뼈다귀라도 먹고 살려고 개와 싸우는 사람, 안전장치 없이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어린아기 등이 사회의 아픔을 표현한다) 일기쓰기(7) 도전 성경 읽기 "한 ...Date2024.08.14 Category일기쓰기 -
[신.문.만] “소설 <닫힌 방>로 천국과 지옥 이해하기(7)
©매일경제 평생을 함께한 연인이자 사유의 친구였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1947년 사진. 신.문.만 : 신학과 문학과의 만남(7) “소설 <닫힌 방>로 천국과 지옥 이해하기"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타인은 왜 나에게 지옥이 될까요? 우리는 어떻게 천...Date2024.08.05 Category신.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