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경배의 삶을 추구하는 예배자
예배에 관련된 책을 읽는 가운데 눈에 띄는 표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참을 수 없는 예배의 가벼움’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표현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그 표현이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모습 중의 한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기에 큰 공감이 되었다. 왜냐하면 오늘날 예배가 너무 가벼워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교회와 여러 곳의 현장사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역자들과 예배인도자들에 의해서 들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히 음악 스타일만 가벼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약해져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외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너무 가까워졌다고 표현하시는 분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친밀하다 못해 격의와 예의가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온라인 게임을 같이하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80년대에 시작된 찬양 운동은 엄격한 예배의식에서 생기발랄한 찬양으로 전환되면서 예배의 변화를 가져왔다. 예배의 변화는 결국 의식의 변화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의 변화까지 가져오게 되면서 예배의 자유를 가져왔다. 그리고 90년대에는 수도권에서 시작된 찬양 운동이 지역교회 예배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개념도 ‘거룩’에서 ‘친구’개념으로 변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부르심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잊어버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배의 중요한 목표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경외’이기 때문에, 많은 예배사역자들이 예배인도를 통하여 목표하는 바가 바로 ‘하나님을 향한 경외’이다.
90년대 이후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Praise and Worship’이라는 용어는, 번역하면 ‘찬양과 경배’이다. 예배인도자는 경배와 찬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회중과 함께 예배의 자리로 나아감을 선포하고, 소극적인 모습의 예배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예배참여의 자세를 요구한다. 이것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의 중요함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예배의 찬양 가운데 나타나는 불편한 현상 중의 하나가 ‘Praise’의 자리에는 나아가고 있는데 ‘Worship’의 자리에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주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계획하심과 역사하심과 그 은혜의 감격을 고백하는 것에는 익숙한데, 그 후의 모습이 약하다는 것이다. 즉 ‘Worship’(경배)의 자리에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배’는 히브리어로 ‘야레(arey)’라는 단어로써 ‘존경과 두려움’을 의미하며, 종종 ‘경외’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글자 그대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 두려워함으로 공경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존경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것을 뜻한다. 이 마음이 경외감이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경배인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 10장 12절에서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씀하신다.
나아가 본질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감으로 예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속성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그분의 속성을 고백한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은, 죄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속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의미하고, 공의의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갈 때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인 된 모습에 스스로 부끄럽고 또 두렵고 떨리지만, 그러나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그분의 한없는 사랑을 알기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뜨거운 사랑과 깊은 존경심이 교차하는 경외감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경배인데, 찬양으로 그분의 이름을 높여드리며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선포하고 난 이후에, 바로 경배의 시간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과 주인이심을 선포하고 그분의 뜻과 통치에 우리를 순종하고자 엎드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예배자들의 고백은 ‘경배는 경외와 어울리는 것이고, 경외는 경배의 뿌리가 된다’고 전한다. 이 경외감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경배는 예배의 깊은 단계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존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그 존재 앞에서 나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의 시간에 높으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표하고,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결단이 없다면 그것은 참된 찬양과 경배의 예배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오늘날 예배에서 바로 이러한 경배에 이르는 데까지 나아 갈 때의 우리의 마음과 자세(소위 예배의 품격, 권위, 진지함, 광휘, 경외감 등)가 약해져 가는 것을 두고, ‘참을 수 없는 예배의 가벼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찬양은 많이 하고 있는데, 경배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유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배스타일로 이해하여 옛날 방식의 예배가 깊은 예배이고, 전자악기를 사용하며 드리는 오늘날의 예배방식은 깊이가 약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찬양에만 편중되거나, 감정만 중요하게 생각하며 경배의 자리(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에 나아가지 못한다면, 현대예배에서 종종 나타나는 지나친 청중의식과 자극적인 감정주의, 그리고 젊은이를 끌어들이고자 사용되는 무분별한 도구들의 사용 등이 도가 지나치게 되어, 오히려 ‘교회 성장을 위한 필요악 정도로 생각되는 유행’에 머물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갈 때에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진심으로 찬양을 올려드린 후에, 자신에게 우리가 찬양했던 그분은 누구이신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 앞에 자신을 낮추고 나아가는 경배는, 우리가 깊고 성숙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도록 마음의 결단을 갖게 하고, 말씀을 실천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친구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나를 어루만지시는 주님’ 등과 같이 우리의 눈높이로 성육신하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예배는 그 본질이 예배를 드리는 ‘나’에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어떤 예배라도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내재성, 친밀감과 함께 그분의 거룩하심, 경외감에 대해 균형 있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의 특징과 문화적 환경 등의 영향으로 우리의 다음 세대는 기존의 세대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잘 표현하는 세대임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세대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더욱 깊은 경배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삶을 순종하며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원처치 저자 김태원 목사

저자 김태원 목사는 대전 침례신학대학교 및 대전 침례신학대원(M. Div) 졸업했다. 청년 사역자 모임에서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뉴질랜드 에덴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Who's 원처치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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