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떠난 레바논 기독교인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맞이한 '눈물의 부활절'

레바논 베이루트 교외 제데이데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성금요일 미사 중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이 성당은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이 된 남부 레바논 마을의 기독교인들과 연대감을 표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AP 사진/에밀리오 모레나티
예년 같았으면 마룬 가파리(Maroun Ghafari) 신부는 이스라엘 접경지인 레바논 남부의 기독교 마을 알마 알샤브(Alma al-Shaab)에서 부활절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그는 고향 성당 대신 베이루트 외곽의 한 교회에서 신자들을 맞이했다.
제단 옆에는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Hezbollah) 간의 교전으로 갈 수 없게 된 고향 성당의 모습을 본뜬 판넬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난달 이스라엘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사이의 무력 충돌이 본격화된 이후, 레바논 전역에서 1,400명 이상이 숨지고 100만 명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다. 수 세기 동안 비잔틴, 아랍, 오스만 제국의 통치와 현대사의 숱한 위기 속에서도 신앙의 터전을 지켜온 남부 지역 기독교인 수천 명도 결국 정든 고향과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전을 뒤로한 채 피란길에 올랐다.
인구 약 550만 명 중 3분의 1이 기독교인인 레바논은 아랍권에서 기독교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고향의 포성에서는 멀어졌지만, 피란지인 베이루트에서도 이스라엘 전투기의 굉음과 공습 소리는 이들의 가슴을 여전히 조여오고 있다.
"성전이 마지막 보루였는데"...
계속되는 비극에 결국 피란 이스라엘의 대피 권고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지키던 알마 알샤브 주민들은 격렬한 교전 속에서 성전을 유일한 안식처 삼아 버텼다. 하지만 비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지난 3월 8일, 가파리 신부의 형인 사미 가파리(Sami Ghafari, 70)가 잠시 정원을 가꾸러 나갔다가 이스라엘군의 드론 공격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사건은 끝까지 마을을 지키려던 주민들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결국 가파리 신부를 포함한 남은 주민들은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의 도움을 받아 베이루트 북부 외곽으로 대피했다. 가파리 신부는 "전쟁은 파괴와 죽음, 이별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며 탄식했다.
레바논 마로니트(Maronite) 교회의 베샤라 알라이(Beshara al-Rai) 추기경은 부활절 강론을 통해 "헤즈볼라를 통한 이란의 개입과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며 양측 모두를 비판했다.
"고향의 냄새가 그립습니다"… 멀리서 전하는 기도
부활절 전날인 '성토요일'에 조상의 묘를 찾는 오랜 전통도 올해는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검은 옷을 입고 미사에 참석한 나빌라 파라(Nabila Farah)는 "고향 집의 냄새, 세 곳의 성전에서 울려 퍼지던 종소리가 너무나 그립다"며 "이곳에서도 부활절 분위기를 내보려 하지만 고향에서 느끼던 그 기분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남부 요충지인 티레(Tyre)에 남아 있는 이들도 고립무원의 처지이다. 레바논 군이 철수하면서 이스라엘군의 진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데다, 생필품마저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교황청이 주도한 40톤 규모의 구호 물자 전달 계획도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되었다.
베이루트 성 안토니오 성당(St. Anthony Church)의 도리 파야드(Dori Fayyad) 신부는 고난 주간 미사에서 남부 지역 성당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신자들을 위로했다.
"오늘 여러분은 '십자가의 고난'이 관념적인 상징이 아니라, 여러분이 현재 겪고 있는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고향의 성전들은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고통과 신앙을 묵묵히 지켜보는 증인들입니다."
문수아 기자 onechurchn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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