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묵상할 때 우리의 태도
성경은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면서도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이 많지 않다. 물론 주변에 성경을 다독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보다 성경을 단 한번도 읽지 않는 분들이 더 많다. 그 이유가 두꺼워서도 그렇지만 또 다시 보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역설적으로 성경은 아무리 학식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읽으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왜일까?
그만큼 성경은 읽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어낸다는 것이다. 즉 학식이 많던 적던 문제는 그 읽는 사람의 상태와 태도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어낸다는 것이다.
이 곳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서 보통 겪는 것이 영어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다. 이민자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은 내 부족한 영어를 끝까지 경청하려고 하고, 친절과 인내를 가지고 들어주지만, 도와주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은 ‘ what, pardon, sorry, I don’t understand you,..’하며, 애써 피하려고 한다. 똑 같은 영어를 쓰는데도 듣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내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처음부터 차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자국민에도도 그리고 세계 어디나 동일하다. 다시 말해 언어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성경에도 이러한 사람들의 상태를 표현한 곳이 있다.
사29:11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사29:12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유식한 자-학식이 있는 자, 지도층을 가리킨다.
☞무식한 자-학식이 없는 자, 일반 백성을 가리킨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연결된 본문 13절을 통해 보면 당시의 사람들의 영적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 것은 바로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았고, 입술로만 주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고 찬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참고로 이사야 본문 전체를 살펴보면 당시 히스기야 왕은 그의 주도하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적인 종교 정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러한 개혁에 왕의 명령에 마음을 같이하지 않고 억지로 겉 모양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우상과 재물과 더러운 양심을 깨끗케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경건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도 부인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권면하였다(딤후3:5).
예수님은 이러한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여 당시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는 경건하지 않는 유대인들과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적용하여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고 책망하였다(마15:7,8).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으로 만들어 읽도록 했는데도 불구하고도 어떤 이들은 율법을 외적인 지식은 갖춘 학식이 있는 자와 지도층 사람임에도 영적인 통찰력은 지니지 못하였으므로 계시의 말씀을 깨달은 수가 없어 그 말씀이 마치 굳게 닫혀서 도무지 열수 없는 봉함 된 책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말씀이 거룩하다는 것은 아나 자신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단정하고, 이해하려는 시도 조차를 하지 않아 그들에게도 마치 봉함된 책과 같다.
그래서일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인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진 사람에 대해 그들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30배 60배 100배 결실했다’고 비유로 가르쳤다.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을 깨달아 결실하는 자니라.’ 쉬운 성경에서는 이 본문을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표현했다.
‘착하고 좋은 마음 또는 정직하고 선한 마음’은 성도로서 우리가 말씀을 대할 태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충분히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본문을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예수님께서 말하고자 한 초점을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되 그 말씀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듣는데 그치지 않고 지키는 사람을 말할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염려, 재물에 대한 욕심, 그리고 쾌락과 같은 마귀의 시험을 '인내'로 견디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야고보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성경을 읽지만 정작 적용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나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책망하였다(약1:22) 이는 마치 거울로 자신의 생긴 얼굴을 보고 곧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라고 하였다. 선한 양심을 갖고 정직한 사람은 실행하는 사람이며 그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약1:22-25, cf;마7:24-27,롬2:13, 눅11:28)
이처럼 성경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할지 예수님의 말씀을 포함해서 성경 전반에서 다양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레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던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심장을 살피고 폐부를 시험하고 그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삼상16:7, 렘17:10)…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