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평양대부흥운동
- 배경 -
19세기 말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제3차 대각성운동을 통하여 성령께서 많은 엘리트 청년들을 세계 선교로 파송했다. 성령은 한반도에도 훌륭한 선교사들을 파송했고 그들은 조선의 부흥을 위해 복음전도와 사경회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의 때가 차매 북한 원산에서부터 서서히 부흥의 불길을 지피기 시작했다.
- 평양 장대현교회 -
1907년 1월 장대현교회의 사경회는 첫날 저녁부터 남자만 1,500명이 모여들었다. 평양신학교 1회를 졸업한 길선주 목사를 비롯한 조선인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이 번갈아 오전에는 성경공부, 오후에는 복음전도, 저녁에는 "회개하고 성령의 인도하에 살아야 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로 부흥집회를 이어갔다.
이튿날 월요일 저녁 집회 때 이길함(Rev. Graham Lee) 선교사가 집회를 인도하면서 교인들 가운데 누구든지 성령의 감동을 따라 기도하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기도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도록 하였다. 아무런 혼돈도 없이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성령이 기도케 했고 성령이 더 강하게 임했다. 1월 14일 밤의 집회에서 이길함선교사가 강단에 올라 "나의 아버지여"라는 말을 하자마자 사람들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다. 그는 이렇게 기록을 남겼다.
"기도회는 마치 폭포와 대양의 물결 소리같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었다. 온 교인의 성령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면서 기도하기를 새벽 2시까지 계속하였다."
장대현교회의 사경회 이후로 성령의 불은 평양과 북한 전역과 나아가서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ㅂ907년 3월 16일 평양에서 개최된 부흥사경회는 12일 동안 열렸는데, 이 집회에서 전국 각지의 550명의 여성 지도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였다.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부흥은 한반도의 복음화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평양대부흥운동의 특징 -
1. 세계적 부흥운동의 한 축이었고, 감정적 열광이 아닌, "말씀 - 회개 - 성령임함"의 융합으로, 말씀 중심 구조 안에서 성령운동이 진행된 점은 세계 부흥사 연구에서도 독특한 사례로 인정된다
2. 이후 기독교가 사회적 구원(독립운동)의 윤리적 기반 역할을 하게 되는 토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3. 1907년 이후 10년간 교세는 약 7~10배 증가와 함께 회개 중심, 말씀 중심, 성령 의존의 세 가지 기둥으로
“한국교회는 성령운동교회”라는 정체성을 갖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