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도둑이라>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한복음 12:6)
가룟유다
겉으로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척했다.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척 했지만
속은 자신의 재물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진실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행동으로
집 안에 향기를 가득하게 채웠던 마리아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마리아는
내면에 있는 그 사랑이
가리울 것 없이 그대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표출된 사랑의 표현은
누가 보기에는
귀중한 것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과 같은
매우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일 수 있었다.
마리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영리하게 자신을 감출줄 모르는
상대방의 비위에 맞출줄 모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쉽사리 드러내는
매우 순수한 영혼이었던 것같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달랐다.
가룟유다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너무나 잘 포장할줄 아는
수려하고 설득력있고 논리적인 말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것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얻어오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가룟유다의 주장은 매우 합당한 것이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요 12:5)
너무나 합리적인 얘기였다.
주변에 있는 제자들은 아마 모두
그에게 동의했을 것이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마리아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 누구나 가룟유다처럼 생각하며
그녀를 질타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툭하면 비난하는 모습들...)
그런데 하나님은
외형이 아닌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
예수님이 보신 것은 달랐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중심을 보셨다.
누군가 말하는
거룩한 낭비 같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은
낭비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중심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을 이용하여
거룩한 낭비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정욕을 채우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가룟유다의 중심 또한 보셨다.
가룟유다의 말은 칭찬 받을만한 말이었다.
성경의 전체 골자와 전혀 다를바 없는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에 그대로 일치하는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의 중심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룟유다가 동일한 말을 했더라도
중심만 옳았다면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셨을 것이다.
마리아는
어리석었을지 몰라도 진실했다.
가룟유다는
영리했을지 몰라도 위선적이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얘기한다.
그는 도둑이라
그는 도둑이라
그는 도둑이라
이 말씀이
내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한 마디다.
내 마음을 아프게 찌르는 말씀이다.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척하는
가식적이고 위선된
가룟유다
나는 가룟유다와
동일한 마음을 가질 때가 많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대의를 위하는 척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척
얘기하지만
내 안에
그런 얘기를 통해
나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
내 정욕을 채우려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홍규야, 너는 도둑이라!
오늘 이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나님
내가 오늘 진실되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인도하여 주소서
영리하지 못하더라도
진실되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