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선교_2. 첫 조선인 세례교인들 및 자생교회의 출현
1872년 중국에 파송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 교회의 Ross 선교사가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갖고 1874년 10월 중국营口를 출발해서 고려문에 이르러 조선인에게 전도하기 시작했다. 봉황성 아래의 작은 마을인 고려문은 국경지역이자 교역의 관문이었기에 조선 상인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이 때 50대 조선 상인으로부터 조선어를 배우면서 그에게 한문신약성경과 "정도계명"을 주었고, 그는 고향 의주로 돌아와 아들인 백홍준과 그의 친구들에게 복음서와 소책자들을 돌려 읽게 하였다.
Ross는 1876년 4월 다시 고려문을 방문하여, 의주 상인 이응찬을 만나 함께 봉천으로 와서 그에게서 조선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로스는 이응찬 등 몇 몇 조선인의 도움으로 성경번역에 착수하여, 1878년에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을 번역하였다. 이응참이 귀국한 뒤 로스는 매킨타이어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서상륜을 소개받았다. 1879년 백홍준. 이응찬 등 4명의 조선인들이 영구에서 매킨타이어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써 한민족 교회사에 이정표를 남기게 된다.
만주에서 번역•간행된 성경을 조선 땅에 들여와 보급한 것은 조선인 개종자들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882년 3월 김청송이 권서가 되어 즙안 일대의 한인촌에 성경을 반포하였고, 그 결과 많은 개종자가 나타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봉천으로 로스를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1884년에 로스는 동료 선교사 J.Webster와 함께 직접 한인촌을 방문하여 4개 마을에서 75명의 남자에게 세례를 주기도 하였다(50.) 이같은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복음 수용의 결과 1884년 말 압록강 연안 계곡의 28개 한인촌에는 세례자 100여명, 남자 세례 요청자600여명 등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는 수많은 한인가정이 있게 되었다.
한편 의주에서는 1879년부터 백홍준의 전도로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성경의 수효가 폭증했다. 이에 1882년에는 서상륜이 대영성서공회 최초의 조선인 권서로서 파송되어 약 3개월간 의주 일대에서 선교했다. 그는 교리문답반을 운영하며 꾸준히 말씀을 가르쳤고, 결과 1885년에 이르러는 18명의 신자에 예배처도 마련하게 된다. 이것이 곧 국내 최초의 자생교회인 의주 신앙공동체이다.
1885년 서상륜은 봉천을 방문하여 국내에 70여명의 세레 청원자가 있음을 보고하면서 로스의 조선 방문을 요청 한 뒤, 의주를 거쳐 고향인 황해도 소래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동생 서경조와 함께 열심히 전도하고 성경을 가르쳤고, 1886년 예배처를 구입하여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소래교회가 탄생한다. 이 신앙공동체는 그 지역 사람들의 힘으로 설립•운영되었으며, 58세대 가운데 50세대의 어른들이 교회에 나올 정도로 발전하였다(52).
만주를 통하여 조선 선교가 시도되고 있을 무렵, 1882년 12월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간 이수정이 기독교인 농학자 쓰다센을 만나 복음을 접한다. 그리고 1883년 8월 미국 선교사 녹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뒤 이수정은 일본에 유학 온 조선인 학생들에게 전도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일본 최초의 한인교회를 설립한다. 동시에 한자에 토를 다는 방식의 이른바 "현토성서"를 번역하였다. 이수정은 미국 선교부에 여러차레 편지를 써서 미국 선교사를 조선에 파송 할 것을 요청하였고 그 결과,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에 상륙할 때 들고 온 복음서가 바로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