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림"에 대한 성경적 묵상
| 성경 말씀 |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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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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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방식으로 “다스리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이 다스림은 단순한 권력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반영하는 사명이다.
창세기 1장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다스림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공허한 곳에 생명을 채우시고,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시며, 어둠 속에 빛을 비추신다. 동시에 그분의 나라는 단지 세워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지켜지는 나라”(창2:15)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다스림은 창조와 보호, 확장과 책임이 함께 가는 통치다.
이 다스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참된 권세가 지배가 아니라 섬김임을 몸소 보여 주셨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은 곧 섬김의 다스림, 곧 창조적이고 생명을 살리며, 맡겨진 것을 책임 있게 돌보는 청지기적 통치다. 이것이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이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인간의 다스림은 쉽게 왜곡되었다. 섬김의 다스림은 지배의 다스림으로, 청지기의 권세는 자기 확장의 도구로 변질되었다. 권력은 생명을 보호하기보다 소유와 통제의 수단이 되고, 질서를 세우기보다 혼란을 키우며, 하나님을 대리하기보다 자신이 주인이 되려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 두 가지 다스림의 대비는 오늘의 사회와 정치 현실을 성찰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자유, 삶의 질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때, 그것은 섬김의 다스림에 가까워진다. 반대로, 권력이 불안과 공포를 낳고 사회적 신뢰와 질서를 흔들며, 공동체보다 권력 그 자체의 유지에 집중될 때, 그것은 폭력적 다스림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정부와 지도자는 이 성경적 기준 앞에 서야 한다. 그들의 권력 행사가 국민의 생명을 살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청지기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회에 분열과 불안을 키우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이때 국민은 감시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교회는 침묵하는 동조자가 아니라 선지자적 양심의 목소리로 서야 한다. 교회의 사명은 특정 권력을 지지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권력이 하나님의 통치 방식, 곧 생명을 살리고 질서를 세우며 평화를 이루는 다스림을 향하도록 촉구하는 데 있다.
적용: 나는 과연 선지자적 양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과 뒷담이 싫어서 침묵하는가? 어떻게 해야 정치에 편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 앞에 설 수 있는가? 곰곰히 기도하며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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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z 충현교회 신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