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_6. 최초의 7인 목사 모두 북한 출신
| 성경 말씀 | 사6:8 "내가 여기 있나이다나를보내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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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_6. 최초의 목사 7인 모두 북한출신
1. 길선주(吉善宙)
고향: 평안남도 안주 (Anju)
주요 업적: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으로, 공개 회개를 통한 영적 각성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한국 교회 독특한 전통인 **'새벽기도회'**를 처음 시작하고 정착시켰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평양 장대현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2. 이기풍 (李基豊)
고향: 평안남도 평양 (Pyongyang)
주요 업적:
목사 안수 직후 **"외지 선교사"**로 파송된 **최초의 타문화 선교사 (제주도)**입니다. 당시 말이 통하지 않고 풍습이 다른 제주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심의 상징: 젊은 시절 선교사 마포삼열(Moffett)에게 돌을 던져 턱을 깨뜨릴 정도로 기독교를 핍박했으나, 훗날 회심하여 **'한국의 사도 바울'**로 불립니다.
3. 서경조 (徐景祚)
고향: 황해도 장연 (Jangyeon)
주요 업적:
형 서상륜과 함께 한국 최초의 자생적 개신교회인 **'소래교회'**를 설립했습니다.
한국인 주도로 교회를 세우고 운영하는 모범을 보였으며, 초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4. 한석진 (韓錫晋)
고향: 평안북도 의주 (Uiju)
주요 업적:
자립 신앙의 강연: 선교사의 재정 지원 없이 우리 힘으로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울 안동교회 등을 시무했습니다.
교단 행정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교회의 행정적 기틀을 마련했고, 일본 기독교의 한국 침투를 막는 데 힘썼습니다.
5. 양전백 (梁佃伯)
고향: 평안북도 의주 (Uiju)
주요 업적: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목회자이자 민족 지도자로서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서명하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교육과 계몽 운동에 앞장섰으며,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하다가 순교 직전 삶을 살았습니다.
6. 송린서 (宋麟瑞)
고향: 평안북도 의주 (Uiju)
주요 업적:
교육 목회와 연합 활동: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으며, 주로 평안도 지역에서 목회했습니다.
초기 장로회 총회 회계와 서기 등을 맡아 교단의 살림을 챙기고, 청년 교육과 주일학교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7. 방기창 (邦基昌)
고향: 평안북도 의주 (Uiju)
주요 업적:
성서 번역 조력: 초기 선교사 로스(Ross)와 언더우드(Underwood) 등의 한국어 교사 및 조사(Helper)로서 성경 번역 사업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평생을 전도와 목회에 힘쓰며, 한국 교회가 성경 중심의 신앙을 갖는 데 기여했습니다.
[요약 및 역사적 의의]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한국 교회 최초의 목사로 기록된 이 일곱 인물은 모두 오늘날의 '북녘' (평안도, 황해도 등) 출신입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단순한 출생지의 우연을 넘어서, 북한 지역이 한국 근대 기독교의 뿌리였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따라서 북한 복음화와 인도적 섬김은 역사적 연속성, 문화적 친연성, 전략적 필요성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과제임을 시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