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을 회상하며...
저는 1999년에 아내와 함께 이 곳 오클랜드로 이민해서 그 동안 주의 은혜로 슬하에 6자녀가 있습니다. 큰 애는 현재 대학생이며 모두 홈스쿨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사역은 여러 한인교회와 키위교회에서 협력목사로 사역했고 그리고 Fowey Lodge Bible College에서 헬라어(Greek)와 사복음서(The Four Gospels) 강사로 3년간 섬겼습니다. 그리고 작년 2018년 초에 ‘말씀과 만남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만 1년을 넘기면서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이렇게 글로 써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람들은 ‘좋은 사람, 선한 사람'란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가끔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때는 선한 사람으로 그리고 어느 때는 악한 사람으로 보여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또한 말로 인해 천냥 빛도 갚기도 하고 또는 더욱 오해도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말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의 선한 양심을 따라 덕을 끼치고 유익하고 선한 말을 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가 믿음 안에서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또는 좋은 목사, 귀한 성도’ 등등 좋은 말과 격려가 되는 말을 서로 하며 신앙생활을 하면 좋을 텐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말과 동시에 마음에 상처가 되고 어려움이 되는 말도 들으면서 신앙생활 하시는 성도들과 사역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칭찬과 동시에 저주에 가까운 말을 극단적으로 듣는 사람들도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이와 같은 말입니다. ‘설교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정반대로 ‘사랑이 없다, 거짓말쟁이, 이단, 사단’이란 등과 같은 말들입니다.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서로반대되는 말을 듣는 분은 아마 예수님과 사도바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요7:12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요7:40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물론 오늘날 몇몇 목회자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거짓된 복음과 이단적 사상을 가르치고, 불법을 행하고, 탐욕을 품으로 인해 오는 비판은 마땅히 받아야할 것이지만, 오해와 불신과 연약함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식어져서 오는 것이라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이제 제 이야기를 시작 해보려고 합니다.
오래 전에 키위교회를 협력하면서 그 교회에 출석하는 한인들도 함께 담당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아내는 통역과 봉사와 섬김을 담당했고, 저는 그들을 위한 별도 성경공부와 예배 등을 섬겼습니다. 예배 후에는 함께 식사도 했고, 야외에서 친교 활동도 하고, 서로 방문하며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감이 서로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 질서를 오랫동안 어지럽히던 어느 성도의 치리 문제로 시작된 일이 결국 저의 부족한 신상까지 공개되면서 듣지 않아도 될 말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치리 할 성도에 대해 키위교회 리더십과 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한인 모임들도 저와 교회 리더십을 믿고 잘 따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치리 문제가 수석 장로의 병환으로 차일피일 미루어지다가 시간이 한달 정도 지체되면서 한인 모임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가 잠시 어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성도는 교회 리더십의 권면을 받아들여 좋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인 모임 사이에 갑자기 제가 졸업한 신학교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이야기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치리 문제는 해결 되었으나, 치리기간 동안 한인모임 사이에서 대두되었던 제 신학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졸업한 신학교가 문교부에 인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단도 없는 신학교라고 비난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제가 졸업한 신학교는 문교부에 등록은 안되었지만 대한예수교 장로회 교회(독노회) 산하에 있었다가 본 교회가 카이캄(한국독립교회 선교단체연합회)에 등록되면서 자연스럽게 신학교도 카이캄의 신앙고백과 함께한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그 교회가 기독교한국침례회 서울서부지방회에 가입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 때에는 카이캄이 한국뿐만 아니라 이 곳 오클랜드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상태였고, 성도들은 이미 온갖 생각으로 감정을 갖게 되었고 흥분한 상태였기에 저의 지난 행동을 색안경을 끼고 보듯 저를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분들은 제게 와서 자세히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문교부에 등록되지 않는 신학교를 나왔기에 목사로 인정할 수 없고, 교단도 불분명한 사람이 거짓으로 목사라고 속이고 교회에 들어와서 가르치고 있다는 말로 와전되어 결국 이단이란 말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그렇게 교회에 고발한 것입니다. 이 말을 장로들에게 처음 듣는 순간 저는 많이 놀랐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 동안 2년 가까이 해오던 모든 사역을 내려 놓겠다고 그 자리에서 말하고 사역을 곧바로 정리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한인 사역뿐만 아니라 키위교회에서 하는 설교나 성경공부를 다 중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리더십에서 중립을 가질 수 있도록 주일 예배 출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까지 결정한 것은 교회 장로십들이 중간에서 중립적으로 중재하도록 제가 잠시 뒤로 물러 서있는 것이 좋다라고 판단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리더십들이 편견없이 판단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 키위 교회에서 협력하면서 제출한 제 이력서를 보신 분들은 제게 처음 협력을 요청한 교회 임원들만 보았기 때문에 한인모임에서는 저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리더십에 의해 쉽게 이 일이 해결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동안 주일 설교를 마치면 일반적으로 목사님들이 성도들에게 들었던 말, 곧 우리가 설교에 은혜 받았다, 오늘도 새롭게 배운 것이 있다.. 등등 여러 칭찬했던 교회 모든 분들이 이제 마치 나를 전혀 모른 사람처럼 대하고, 마치 내가 그 곳에서 헌신했던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것도 저의 난독증으로 두 번의 신학교 입학이 좌절된 피해의식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의뢰하고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장로십에게 전에 제출한 제 이력서에 나온 대로 제가 왜 첫 번째 신학교(서울 장로교 신학교(호헌)를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 신학교 운영 관계로 두 번째 신학교로 편입했는지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교회 리더십들이 회의를 하여 협력하면서 제출했던 제 이력서와 그 때 카이캄에서 발행한 신앙고백서에 서명한 것 등이 거짓없이 이력서에 작성했고, 그리고 그 동안 교회에서 영어로 말씀을 증거했던 것과 영어 성경공부에 참여한 장로와 중직들의 중론으로 저의 신학과 신앙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도리어 복음적인 설교를 전했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 후 한인 모임을 모아 교회 입장을 설명하고, 최종 리더십 입장을 공포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리더쉽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인모임에서는 제가 목사 안수 받은 교회와 그 산하에 있는 신학교에 대해 아직 카이캄에서 소식을 받기 전이니 수용할 수 없다고 하며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리더십에서는 카이캄 입장보다 교회 입장이 더 중요하니 몇 주를 더 기다릴 필요 없다고 하면서 저의 대한 교회 입장을 최종 발표한 것입니다. 그 사이에 어떤 분이 저에게 사단이라고 고함을 치면서 수석 장로의 공표에 강하게 반발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치리 일로 사랑이 없다 그리고 신학교 일로 거짓말쟁이, 이단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단이란 말들을 들으면서 잠시 들었던 생각이 내가 그 교회에서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 싶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화가 나기보다 말이 사라지고, 그들의 요란한 소리 사이에서 조용히 그 회의 장을 아내와 같이 나왔습니다. 그 동안 저는 그 곳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숨김없이 담대히 증거했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약한 자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증거했고, 주의 진리 말씀을 힘써 상고하여 교훈 하였고, 때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힘썼던 내가 미약한 신학교 출신이란 이유 때문에 이렇게까지 내게 비인격적으로 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사람들도 사회에서 출신과 배경을 보지 말고 현재의 모습을 보라고 가르치고, 이것이 바른 사람이 사는 사회라고 말을 하는데, 심지어 교회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며 잠시 한탄해 하였습니다. 그면서 결국 내 자신을 탓했습니다. 제가 그 만큼 잘못 가르쳤고, 그 동안 본이 되지 않아서라고 자책을 하며 여러가지 감정을 달랬습니다. 아마 제가 성도들을 탓하려는 감정과 의도를 이러한 방법으로 스스로 제어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누가 뭐라하여도 제가 신학교를 통해 목사가 되었고, 목사로서 선한 양심과 믿음을 따라 성심껏 말씀을 준비해 증거했고 성도들과 교제와 그들의 안녕을 바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 협력 사역하면서 협력했던 교회의 담임을 탐하거나, 내 자신의 명예와 유익이나 사례를 바라기 보다, 부족하나마 교회의 유익과 성장과 성숙을 바라며 교회들을 협력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주께서 이런 제 마음을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 마음을 주께서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미숙하고 둔하여 자격 없는 저를 하나님께서 목사로서 사역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형편과 여건과 조건을 만들어 주신 것에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만 드릴 뿐입니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부모가 가난하고 무학자라 할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포장 하지도 않습니다. 이렇듯 저의 신분을 바꾸기 위해 거짓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거나 남들에게 좋은 신학교 출신이란 것을 어필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신학교 출신인가 아니라, 그 곳에서 말씀과 신학을 배운 대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의 권면과 같이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열심히 성경을 꾸준히 묵상하고 상고하면서 성도들을 권면하고 잘 가르치면서,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과 행동에서 모범을 보이고, 사랑과 믿음과 정직한 양심과 깨끗한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본을 보일 뿐만 아니라 목회자가 더욱 진보하는 모습을 성도들에게 보이는 것이는 것도 중요한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딤전4:12-16). 그리고 목사는 성도의 본이 되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딤전4:12).
그리고 그 날 오후에 교회 리더십이 찾아와 본인들이 애써 그 자리를 만들었는데, 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심지어 내 자신을 변명할 기회를 갖지 않고 떠나버렸냐고 따지듯이 제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흥분된 상태이기 때문에 나도 같이 흥분해서 혹 말로 실수할까 해서 그 자리에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나를 변명하러 다가 도리어 하나님께 더 큰 죄를 범할까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그 상황에서 저는 무슨 말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두렵기도 했고, 어떤 생각도 없었습니다. 여하튼 리더십과 교회 입장은 제가 본 교회에서 계속 사역하길 바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말로 저를 위로해 주고 갔습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 저는 오랜 고민 끝에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저를 신뢰한 리더십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하고, 교회 사역에 대해 사임의사를 밝혔습니다. 교회 리더십들은 제 결정에 당황하였고, 계속 저희 집에 방문하여 사직을 만료했으나 저를 반대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사임을 하는 것이 교회에 유익하다고 말 하였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저에게 대한 신뢰가 사그라져버렸고, 이런 입장에서 제가 다시 말씀을 증거 한들 그들의 마음에 더 큰 오해와 아픔만 남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 감으로서 분쟁의 요소가 없어지면 다행이지만, 도리어 리더십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 입장만 생각해 그 교회로 들어가면 저에게 이미 마음 상한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여도 어려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교회 조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교회 그 자체인 성도들의 마음이 다치고 떠나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저를 오해하고 저에 대해 좋지 않는 감정을 갖는 것은 괜찮으나, 저로 인해 혹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버리고, 신앙에서 떠나 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에게 대한 적대감 때문에 유리 하듯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면서 더욱 심한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로서 다른 곳에서도 사역 할 수 있지만 성도들은 교회에서 꼭 붙잡아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상처와 부족함과 연약함도 그 교회에서 보살펴주고, 양육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니더라도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능력 있는 말씀과 주의 사랑으로 복음을 증거한다면 그들이 치료되고, 변화 되고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일로 많이 고뇌하였고, 이 일을 통해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리고 더 많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크게 미안함과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몰라서 그랬던 것을 피해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는지, 아니면 그들이 직접 내게 와서 물어 보길 바랬는지 몰라도 내 자신을 변명할 의욕이 없이 침묵함이 그들로 더 화나게 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이렇게 글로 표현해 봅니다. 그 때 제가 이런 입장이었다고 전해 봅니다.
그리고 이처럼 마지막 사임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셋째를 임신한 아내의 도움도 컸습니다. 임신 중에도 저의 고뇌에 함께 동참해 주었고, 결정하는데 끝까지 신뢰하고 동참해 주었습니다. 당시 교회 사임은 경제적 어려움도 함께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경제적 어려움은 아이들을 홈스쿨링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제가 자비량으로 사역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 사역을 내려놓고 있을 때 대신 홈스쿨링과 자비량으로 협력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일로 낙담하지 않도록 협력할 수 있는 사역을 계속해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동안 협력했던 교회마다 미약하나마 교회 공동체에 힘이 되고,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역하였습니다.
그 동안 이 곳에서 18년간 부족하나마 미자립 교회를 포함해서 분쟁과 다툼이 있는 교회들을 협력하고 위로하고 돕고자 했습니다. 지역 교회들을 자비량으로 돌아다니며 라아코스(양육과 성장 https://www.onechurch.nz/26841 )와 같은 다양한 성경강해를 통해 도움을 주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세계 어느 곳이나 교회들이 분쟁과 다툼의 소식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성도들이 돌봄과 양육 받지 못해 흩어져 가는 것도 발견합니다. 서로의 탐욕과 욕심으로 인해 성도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바알과 아세라를 제하고 이제 다시 여호와께 돌아와께 돌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험한 말을 하고 미워하는데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길 바라니 우리 서로 사랑하여 죄를 이겨야 합니다. 그 동안 이 곳에서 교회들을 돕고 협력하면서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꼭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과 부담감도 있지만, 출석을 통해 담임을 비롯 모든 성도들이 힘을 내길 원하는 마음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협력사역을 통해 저는 주께 받은 작은 달란트 하나를 가지고 섬기지만, 도리어 다양하게 협력했던 교회에서는 많은 것들을 받고, 배우고, 더욱 성숙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배우고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과 주의 사랑과 우리의 선한 양심의 믿음 만이 교회의 모든 분열과 분쟁과 다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오면서 난독증으로 인해 수 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님의 은혜요, 사랑 안에서 그 때 그 때 마다 허락하신 형편에 감사하며 주의 긍휼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소속되던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르게 그리고 정직하게 증거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자주 느끼는 것은 어느 신학교 출신보다는 어떻게 말씀대로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명성 있고, 좋은 신학교를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바른 믿음과 착한 양심으로 사역한다면 문제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신학교가 불분명하면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그러나 죠지뮬러와 로이드죤슨 목사님처럼 끝임 없이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면서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고 살피면서 믿음과 착한 양심으로 바른 신앙을 증거하고 살아 간다면 그 것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오래 전 신학교 입학 식 때 어느 교수님이 환영사를 전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들은 이 곳에서 신학부4년, 신대원 3년 총 7년을 공부하고도 목회 현장에 가면 3년 목회 리소스 밖에 안되지만, 신학교 때 구입한 신학 책들을 통해 바른 신학과 목회의 멘토를 삼으면 평생 목회할 리소스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교수님들에게 자주 들었던 것은 바로 신학 책을 힘껏 많이 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신학생 형편이더라도 교수들이 추천한 신학책은 당장 안 읽더라도 꼭 사두라고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회를 하기시작하면 서점에 있는 신학책보다는 신앙 관련, 목회성장 관련, 그리고 설교 관련 책에 더 손이 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교수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연구하고 살피라는 의도에서 했던 말인데 정말 오늘날에도 필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지금 많은 신학자들의 지적과 같이 목회자가 신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거나, 상고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 곳 오클랜드에는 다양한 목회자 세미나를 포함한 여러 선교단체의 세미나 그리고 한인들을 위한 신학교들이 활성화 되어 있는 것에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많은 복음주의 신학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신학을 존중합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해 지금까지 1% 채 안되는 것을 알고 있어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지만, 미약하게 알고 있는 그 것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주의 깊으신 뜻과 지혜를 배우길 원합니다. 그리고 전과 같은 기회가 올 줄 모르겠지만, 신학생 때처럼 풀 타임으로 공부만 하고 싶다 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저는 배움에 느리고 부족함이 많아 항상 배우려고 하고 이해가 부족하고 미련함이 많아 질문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따라 제 위치에서 더욱 허리를 동이고 주 안에서 겸손히 섬기려고 합니다. 얼마 전 차 사고로 아직도 몸이 100%회복 되지 못했지만, 자비량으로 사역하고, 가정을 돌보고,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주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바라며 지금까지 성령 안에서 우리의 호흡을 붙잡아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주의 모든 형제들에게 주의 평강을 전합니다. 살롬 (참고로 저의 난독증과 신학교 입학에 관련해서 글을 따로 써놓는 것을 링크해 둔다- https://www.onechurch.nz/19132 )...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