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이웃 되기

(위 이미지는 본 칼럼의 등장인물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웃에게 이웃 되기
“내 약혼녀가 총을 맞았어요!!!”
울부짖음과 섞여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늦은 밤 갑자기 걸려온 전화 너머에서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는 그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듯싶었습니다. “뭐라고? 잘 못 알아 들었으니 다시 한번 말해 봐.” “내 약혼녀가 총을 맞았다고요 (My fiancé has got shot)!!!” 전화로 더 이상 자초지종을 따질 때가 아님이 분명했습니다. “알았어, 지금 내가 바로 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침착해야 돼.”
파리 하나 못 죽이던 마호메드,
반군에 잡혀 친구 살해 당하는 장면 목격해
마호메드(가명)는 북아프리카의 한 이슬람 국가를 떠나 뉴질랜드에 들어오게 된 난민입니다. “아랍의 봄” 바람이 그 나라에 불어 닥치기 전인 2011년까지 그는 정부의 법률자문관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나라의 정세가 뒤집혔고, 결국 그는 반군에게 잡혀 포로 신세가 되고 맙니다. 모진 고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일 년 이상 갇힌 채 수많은 고초를 겪었지요. 내가 보기엔 그가 독재정부에 부역해 의도적으로 악행을 저지를 만큼 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집에 방문했던 어느 날 유달리 파리가 많이 날아 다니기에, 내가 왜 파리를 안 잡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생명을 함부로 죽여요.” 내가 여태까지 몇 달간 보아온 그의 천성은 악행에 가담할 만큼 모질지 못함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늘 조용하고, 어쩌다 의사가 잘 안 통하면 계면스레 얼굴 가득 미소로 답하는 그런 사람일 뿐입니다. 짐작하건대 당시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에 충실한 채 묵묵히 살아온 그런 ‘범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반군에 잡혀 있는 동안 너무도 모진 일을 겪었습니다. 자신의 친구가 자기 눈앞에서 살해 당하는 장면을 두 번이나 목격해야 했지요. 업무적으로 관계가 있던 친구를 그 앞에 데려다 놓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을 고백하라고 위협하며 친구의 다리에 총을 난사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은 그 친구를 총살했고…… 그것도 두 명이나.
그의 17 명이나 되는 형제 중에 한 반군집단의 두목인 형이 있어 목숨만은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친어머니에게서 15 형제자매, 그리고 둘째 어머니에게서 3 형제자매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인접국가의 국경 너머로 끌려가 사막에 버려졌습니다. 이때부터 본국엔 다시 돌아갈 엄두도 못 내고 주변국가를 떠도는 유랑아가 되었지요. 이런 천신만고를 거친 끝에 이 년 전 뉴질랜드에 들어와 정치적 망명을 통한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 주에 그 신청이 받아들여져 뉴질랜드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그였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 생활 이 년여 동안 그의 조카가 세 명이나 반군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가 사랑하던 둘째 어머니도 그를 그리워만 하다가 결국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요.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는 세상에 금방 알려지지만
자신의 나라에선 그와 같은 일 날마다 있어도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
그에 집에 당도해 보니 그는 좌절과 분노로 인해 치를 떨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이를 꽉 깨물어 갈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릴 정도였습니다. 본국에 남아 있는 그의 약혼녀는 산부인과 의사인데, 평소에 인터넷을 통해 서로 늘 통화를 유지하고 있었답니다. 약혼녀가 근무하는 병원은 반군들에게 탈취되어, 아래 두 층은 그들이 본부로 쓰고 위 층들만 병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치안사정은 지금도 우리가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상황입니다. 그가 때때로 분노합니다. 파리나 런던 같은 서방도시에서 일어난 테러는 세상에 금방 알려지고 모두가 공분하지만, 자신의 나라에선 그와 같은 비참한 일이 날마다 반복되고 있어도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이라고. 그날도 들이닥친 반군들이 교전 중에 부상당한 자신들의 동료를 먼저 치료하라고 소리치며 약혼녀를 위협하는 소리를 그는 다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 약혼녀는 매우 당찬 여자인 듯싶습니다. 자신이 수술을 하고 있던 환자가 위중하기에 그럴 수 없다고 저항하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그리고 이어진 총소리…… 통화가 끊겼습니다. 그가 다급한 심정으로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누군가 다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곤 말했답니다. 그녀가 총 맞고 죽었다고. 그는 믿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또 다시 통화를 시도하고...... 한참 후에야 누군가 전화를 받고는 말했습니다. 이번엔 희망 섞인 메시지였습니다. 그녀는 죽지 않았으니 기도하라고. 물론 알라에게.
이런 혼란 속에 그가 내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원래는 자기를 지극정성 돌봐주고 있는 또래의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먼저 했는데 연락이 닿지를 않으니 나를 찾았나 봅니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몸부림 치는 그를 안정시켜보려 했지만 사실 나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독한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지탱해오던 그였지요.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로지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의 보루, 고향의 약혼녀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잠시 후에 달려온 그 절친 친구까지 합세해 그를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막무가내인 그를 어떻게 해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자기도 죽겠다고 목을 매려 하는 그와 승강이하다 무슨 불상사를 볼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111’으로 구원을 요청했고 그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그날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금씩 믿음 공동체의 관심으로
안정을 찾으며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그를 위로하기 위해, 또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그 둘도 없는 절친 친구는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자주 그를 찾아 함께 지내고 때론 밤을 지새기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사역하는 공동체에 알려서 여러 사람들이 방문해 같이 격려해주고, 무엇보다도 기도로 아픔과 소망을 함께 나누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지요. 그는 그렇게 조금씩 우리 믿음 공동체의 관심과 함께함으로 인해 안정을 찾으며, 아울러 우리를 향해 세워 놓았던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모든 상황을 한꺼번에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많은 이들의 기도 덕분에 정말 기적처럼 그는 새로 희망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여러 날이 흐른 후 방문한 어느 날 밤 그에게 시편 40편을 전했습니다. 그 내용이 마음에 위안을 준다고 말하길래 계속 그 말씀을 되새기며 예수님께 기도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아직도 기도는 알라에게 한다고 말하는 그였지만, 그래도 그날은 별 저항 없이 그러마고 대답하니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날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날아가고 있었지요. 굳이 설명을 안 들어도 희소식임에 틀림이 없다고 넉넉하게 짐작이 되는, 기쁜 느낌이 물씬 묻어있는 목소리였습니다. “무사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약혼녀는 살아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그날 반군들이 약혼녀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위협사격을 가하긴 했지만 결국 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라도 더 의사를 붙잡고 있어야 그들에게 이롭기 때문이겠지요. 대신 그녀를 고향이 아닌 다른 도시로 납치해 거기서 위협하며 반군들을 치료하게 했다는 겁니다. 정말이지 그에겐 이보다 더 좋은 기적의 소식이 있을 수 없었지요. 그리고 둬 주일이 지난 후 그와 약혼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채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습니다. 일주일간이나 지속되는 이슬람 식 결혼이었습니다. 신랑은 비록 한자리에 있지 못하지만 제대로 된 의식을 거쳐 완성된 혼사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법적인 부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약혼녀가 아니고 자신의 아내라고 미소를 머금은 채 불러 보는 그가 익살스럽게까지 보입니다.
무슬림 이웃에 대한 편견을 허무시고
그들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려는 마음을 부어주신 하나님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께서, 그 혼돈의 시간에 우리가 그와 함께 있도록 해주시고 당신의 위로와 소망을 나누게 하셨으니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로 인해 생명을 살리시고 새 소망을 누리게 하셨으니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때론 무슬림 이웃을 딴 세계 사람으로만 인식했던 편견을 허무시고 그들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려는 마음을 부어주셨으니 어찌 감사를 감출 수 있겠습니까? 작은 마음이지만 크게 나눌 수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지나치지 않고 돌보게 하셨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소망 없는 우리와 함께 해 주신대로, 우리도 그분 따라서 소망 잃은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에게 사마리아인처럼 낯설게만 여겨졌을 우리를, 이제 서슴없이 친구도 아니고 언제나 형제(brother)로 부르며 반기는 관계를 맺게 하셨으니 은혜가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을 부인하던 우리가 이제 따르는 자가 되었듯, 우리의 이 무슬림 이웃도 이런 함께함에 힘입어 다같이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될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 마음 간절합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누가복음 10:36-37, 새번역)
Who's 이홍규
뉴질랜드에서 26년째 살며 에뮤(Emu) 농장, 'Storage Box' 등의 사업을 경영했고, 팬지웡 (Pansy Wong) 국회의원 보좌관을 역임하였다. 파파쿠라 침례교회에 출석하며, 2015년 레이드로 대학 (Laidlaw College) 목회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는 국제선교 단체인 인터서브 (Interserve New Zealand)에서 '교회협력 대표 (Church Representative)'의 역할을 통해 디아스포라 사역자로 섬기고 있다. 뉴질랜드 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저서 '내 이름은 아직도 이새별'을 홍성사에서 2013년에 출간했으며, 크리스천라이프에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이홍규의 웰리빙'을, 원처치에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Faith Talk'을 연재 하였고, 한국의 크리스천 월간지 '신앙계' 등에 글을 쓰고 있다.
2019년부터는 '원처치'의 대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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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칼럼니스트들의 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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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차원의 영적전쟁에서 다루어야 부분은 먼저 '견고한 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사단의 주요한 전략은 인간의 마음에 자신의 요새를 세워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하거나, 불순종하게 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Date2017.04.06 Category신다니엘 목회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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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순회 집회 (2)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던 지난날의 이야기 고국에는 이미 ‘소련 선교회’라는 선교단체가 있었습니다. 아직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기 전 고국의 젊은이들은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그 땅에 들어가 선교하기 위해 기도로 준비...Date2017.03.30 Category이근택의 선교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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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인격을 부여한 나라에서 사는 법 처음 뉴질랜드에 와서 키위 분의 집에 살 때 그 주인은 ‘그림자’라는 이름을 가진 커다란 개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이름 그대로 ‘그림자’는 주인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그...Date2017.03.23 Category양철권 목회적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