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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 되어 준 뉴질랜드 교회가 지진에 돌 하나도 끄떡없게

by OneChurch posted Oct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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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Z

 

 

특별한 배경의 역사적인 교회, '오랜 기다림 끝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교회가 지진 위험으로 폐쇄된 지 7년 만에 지진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게 공사가 시작된다.

 

성공회 교회인 타라나키 세인트메리 대성당(Taranaki Cathedral)은 앞으로 6개월 동안 벽에 뚫린 총 구멍에 특수 그라우트를 주입하는 첫 작업이 진행한다.

 

이 시험 작업이 성공하면 향후 내진 공사 비용이 최종 결정된다.

 

1846년 타라나키 화산석으로 지어진 세인트 메리 성공회 교회는 1860년대 타라나키 전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요새로서 영국 정착민들의 중심지가 되었고 파케하(백인) 민간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으며, 군 진영지가 되기도 했다.

 

교회 마당에는 1860년 11월 6일 마호에타히에서 전사한 나티 하우아 마오리 부족장(Ngāti Hauā) 웨티니 타이포루투(Wetini Taiporutu)과 그의 아들 헤미(Hemi), 나티 아파쿠라(Ngāti Apakura) 부족장 와라랑이(Whararangi), 나티 코우라(Ngāti Kōura) 부족장 하코파(Hakopa), 그리고 무명 용사였던 부족장 2명이 묻혔다.

 

이 교회의 특별한 배경 몇 가지

 

타라나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이전 세인트 메리 교회)은 뉴플리머스(New Plymouth)에 위치한 성공회 교회다.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발생 후인 2016년 대성당은 수리를 위해 폐쇄되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교회이며 뉴질랜드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뉴플리머스는 뉴질랜드의 두 번째 유럽 식민지로 선정되어 1841년부터 영국 정착민들이 도착했다. 이 지역에서 기독교가 시작된 것은 영국에서 온 정착민들에게는 익숙한 영적, 문화적 기관이, 마오리족에게는 선교 봉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주민이 영국 성공회 교인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교회 선교회(Church Mission Society)는 뉴플리머스를 새로운 뉴질랜드 성공회 교구로 선정하고 주교를 임명했다.

 

뉴플리머스 해변에서 가져온 돌을 사용하여 18개월 만에 교회가 건축되었다.

 

교회는 예배 장소일 뿐 아니라, 1차 및 2차 타라나키 전쟁 때 교회 마당이 군인들의 진영지로 사용되면서 종교적 요새가 되었다. 교회에는 한동안 탄약과 폭발물을 보관하는 장소도 있었다. 교회 벽에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는 총구멍도 만들어져 있다. 마을이 포위당할 것으로 예상되자 해군 병력이 교회 내부에 배치되었고, 여성과 어린이들이 안전을 위해 교회 안으로 피신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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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교회 모습 ©Alexander Turnbull Library

 

1842년부터 2010년까지는 일반 교구 교회였다가 2010년 3월 6일 와이카토와 타라나키 주교구의 대성당으로 축성되었다. 1984년 6월 28일에는 뉴질랜드 문화유산(Heritage New Zealand)으로 등재되었다.

 

타라나키 대성당은 못 십자가공동체 회원이며 평화와 화해의 중심지이다. '못 십자가공동체(Community of the cross of nails, CCN)는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 사역을 펼치는 전 세계 200여 회원을 둔 기독교 공동체다.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 이후 안전성 평가에서 강화 공사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고 2016년 2월 폐쇄되었다. 이후 주일 예배는 길 건너 평화의 전당(Peace Hall)에서 계속되었다.

 

교회를 둘러싼 공동 묘지에는 교회 문을 연 윌리엄 볼란드(William Bolland) 목사와 헨리 고베트(Henry Govett) 제2대 목사, 헨리 킹 대위, 치안 판사, 그 밖의 주목할만한 역사적 인물들이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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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옆 공동 묘지 ©Wikipedia

 

새로운 교육 센터인 Te Whare Hononga가 이미 완공을 마쳤으며, 식민지 시대 목사관은 2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이전 및 복원을 마쳤다.

 

지난 10월 2일 제이 루카(Jay Ruka) 교구장은 마오리식 기도(카라키아)를 통해 교회 공사 마지막 단계의 시작을 알렸다.

 

루카는 교회가 다시 문을 열 수 있도록 지진 강화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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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나키 대성당 교구장 제이 루카 ©RNZ

 

내진 공사 비용을 위한 모금은 계속되고 있으며, 기부자들은 대성당 복원,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복구 또는 교회 오르간 수리에 기여할 수 있다.

 

대성당 복원 담당자는 교회가 뉴플리머스 지역 정체성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면서 복구 작업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공사 현장 관리자인 호아니 러셀(Hoani Russell)은 대규모 교회 복원 공사인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성공회)에서 사용된 기술이 타라나키 대성당에도 이용된다고 설명했다.

 

러셀은 "이러한 기술 전문적인 재건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우리가 공사하면서 하나하나 꺼내는 모든 돌에 번호를 매겨서 원래의 위치로 정확히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카라이티아나 기자 onechurchn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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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인용하실 경우 '출처: 원처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https://www.rnz.co.nz/news/national/499216/quake-strengthening-begins-at-historic-taranaki-cathedr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