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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아투 선교 이야기 6 - 선교사와 기다림의 미학

by 원처치 posted May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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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선교이야기 6.jpg

 

막연한 질문 같지만 누군가가 “선교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지체하지 않고 “선교는 기다림이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선교는 우리의 사역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기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분랍 부족을 알면 알수록 그들의 전통(custom)은 생각보다 강했다. 밀림 안은 그들만의 왕국이다. 대추장(Paramount chief) 아래에 여러 명의 추장이 있다. 대부분의 바누아투 부시 부족에서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존경받고 지도력이 있는 부족원 중의 한 사람을 추장으로 선출하지만, 이 부족의 대추장은 세습제이다. 세습제라는 것은 그만큼 추장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추장 Bancurd는 천둥, 지진, 번개, 쓰나미까지 만들어내는 초능력자라고 부족원들을 속이고 있으니 그의 말은 법과 같았다. 지금도 바누아투 밀림에는 종종 블랙매직(바누아투 밀림에서 비밀스럽게 행해지는 흑마법과 같은 의식으로 종종 심장이 몸 밖으로 나와서 사체가 발견됨)이 행해지고 있는데 어느 날 이웃 부족의 추장이 Bancurd가 블랙 매직으로 5명을 죽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나에게 슬며시 귀띔해 줄 정도로 분랍 부족은 무지하고 강한 부족이다.

 

또한, 다양한 율법이 존재하고 부족 내에는 법정(custom court)이 있어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는 그 법정에 서야 한다. 만약 내가 그 부족의 법을 어긴다면 나도 부족 법정에 서야 하니 추장의 말을 잘 들으라고 아들 베베(Bebe)가 말해 주었다.

 

남자아이들은 3살이 되면 할례의식을 행해야 하고 7살~10살 사이에 치러지는 성인식인 낭골(naghol, land diving)은 막대기를 연결하여 높이 25m의 탑을 세우고 단계별로 점프대를 설치하여 각자가 가능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의식으로써 얌(Yam, 타로와 함께 바누아투인들의 주식 중 하나)의 풍작과 부족의 왕성한 번식을 기원하고 그들의 용맹성을 자랑하는 의식이다. 오늘날 번지 점프는 바로 이 naghol(land diving)에서 유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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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community hall)과 같은 역할을 하는 나까말(Nakamal) 안은 3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신분에 따라서 불을 피우는 장소가 달라지며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나까말에 들어올 수가 없다. 그 외에도 성인들은 나같은 백인들이 요리한 음식을 먹을 수가 없고 어린이와 여자들은 먹을 수 있다. 또한, 백인들은 그들의 경내에서 사진도 찍을 수가 없는데 오직 나에게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자기들이 키우고 있는 돼지가 경내를 벗어나면 부시 나이프로 돼지의 다리를 쳐서 죽여버린다. 어느 날 돼지 뒷다리가 잘려져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돼지를 가지고 왔는데 경내를 벗어나서 다리를 잘라버렸단다. 사람이 죽으면 신분에 따라서 돼지를 잡고 돼지 한 마리에 사다리 한 칸을 만들어 죽은 사람의 신분에 존경을 표시하는데 베베(Bebe)의 아버지 Telkon 추장이 죽었을 때 사다리의 칸수는 36칸이었다. 36마리의 돼지를 잡아서 의식을 행한 것이다.

 

분랍 부족을 수시로 드나들며 구급약과 침과 부황을 가지고 그들의 아픈 곳을 치료해주며 친밀감을 쌓았다. 복음을 제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좀처럼 잡지 못했다. 만약 내가 복음을 제시했었다면 분랍에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추장이 조처했을 것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정령숭배와 추장의 교활함과 사기(자기가 초능력자라고 속임)와 무지에 빠진 저들, 미래에 대한 어떠한 소망도 없고, 부러움도 없고, 비교도 없고,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고,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먹고 마시고 살다가 죽는 일차적 관심밖에 없는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이 무지하고 행복한 사람들에게 복음의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그것이 나의 기도 제목이었다. 행복지수 1위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행복해도 주님 안에 있지 않은 행복은 복이 아니라 영적 사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3년이 훌쩍 지나갔고 나와 서광순 선교사는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복음을 제시조차도 하지 못하였는데 이 부족에 꽉 차 있는 이 미신과 무지를 어떻게 깨뜨린단 말인가? 설사 이곳에 교회가 세워져도 정령숭배의 바탕에 세워진 교회는 다른 복음으로 변질된 혼합종교가 되어서 남미의 가톨릭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수차례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무능함이 느껴지고 선교의 열매가 맺힐 가능성과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선교사의 마음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선교의 모양은 있지만, 복음의 진보는 멈추게 된다. 그래서 선교사에게 가장 큰 선교의 방해물은 바로 선교사 자신이며 선교사에게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성 관리이다. 나는 이러한 내면적인 갈등 때문에 많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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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내와 나는 마지막 방문을 준비했다. “주님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주님이 아십니다. 저도 아내도 많이 지쳤습니다. 이번 방문을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 기도하며 아침 일찍 부족 마을로 가기 위해 트럭에 올라탔다. 분랍 부족에서 첫 밤을 보낼 때 주님께서 분명히 응답하셨는데 이렇게 마치게 되다니! 착잡한 마음으로 트럭에 몸을 맡기고 가는데 갑자기 내 안의 저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일어나며 성령께서 감동을 주셨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출애굽 시켜라” 성령께서 마음에 주시는 음성은 뚜렷하게 깨달아진다. 안개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그 말씀이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동시에 깨닫게 된다. 주님께서 출애굽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부족의 소년들을 부족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학교를 보내고 성경을 가르치라는 것임을 순간적으로 알게 되었다. 문맹률 99%인 부족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문맹을 깨뜨림과 동시에 복음도 함께 전하며 자기 부족을 깨울 자부족 사역자를 양성하라는 주님의 응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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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랍 부족에 첫발을 디딘 후 7년 만에 겨우 11명에게 세례를 주었으니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특별하고 위대하고 복 받은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위험했고 얼마나 힘들었으며 얼마나 많은 경비가 소요되었는가? 이쯤 되면 “선교는 기다림이다.”라고 표현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서울에서 제주도를 가려면 아무리 바빠도 비행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안개 때문에 연착되어 늦어지면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가 비행기가 취소되면 다음 비행기가 뜰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목적지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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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하면서 깨달은 것은 기다림도 선교라는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는 일하지 않고 멈춰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기다림도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는 행위 중 하나이다. 그러나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다리는 것이다.

 

오랜 발효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진한 장맛이 나듯이 오랜 기다림 끝에 오는 하나님의 은혜에는 진한 복음의 향취가 있다. 펜데믹으로 인하여 선교와 교회의 사역들이 잠시 멈추어 선 것 같지만 “기다림의 미학”으로 해석하면 그것도 은혜이다. 지금까지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그 무엇이 있었던가?

 

 

기고: 정창직 선교사 (장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파송선교사)

 

원처치 뉴질랜드 onechurchn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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