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튬 무대에 선 이혜교 씨 ©ONECHURCH
왕관은 얻지 못했지만 새로운 역사는 남았다.
뉴질랜드 한인 청년 이혜교(Grace Lee·19) 씨가 한국계 참가자로는 처음으로 ‘미스 유니버스 뉴질랜드(Miss Universe New Zealand)’ 최종 결선 무대에 올라 수개월간 이어진 도전을 마쳤다.
2026 미스 유니버스 뉴질랜드 최종 결선은 7월 28일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오클랜드 스카이시티 시어터에서 열렸다. 화려한 조명과 음악으로 꾸며진 이날 결선에서는 매그너스 댄스 크루(Magnus Dance Crew)등 다양한 축하 공연도 펼쳐졌다.
결선 진출자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교육과 인터뷰, 워킹과 무대 표현 훈련 등을 거치며 최종 무대를 준비했다. 대회에 앞서 진행된 예비 인터뷰에서는 참가자들의 가치관과 리더십, 사회를 향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을 평가했다.
이날 결선 무대는 뉴질랜드 내셔널 코스튬(New Zealand National Costume), 스윔수트(Swimsuit), 포멀 롱 가운(Formal Long Gown) 순으로 진행됐다.
첫 순서인 내셔널 코스튬 무대에서 참가자들은 뉴질랜드 각 지역과 도시의 자연과 문화, 역사적 특색을 표현한 의상과 소품을 선보였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대표하는 지역의 상징과 출신 배경을 의상에 담아내며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펼쳐 보였다.
이어진 스윔수트 무대에서는 자신감 있는 워킹과 무대 표현력을 선보였다. 참가자들은 오랜 준비 과정에서 쌓은 자기관리와 건강한 에너지, 당당한 태도를 각자의 방식으로 드러냈다.
19세로 결선 참가자 가운데 최연소였던 이 씨도 침착하게 무대를 소화했다. 경험과 연령의 차이에 위축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집중하며 안정된 표정과 워킹으로 무대를 이어갔다.

포멀 롱 가운으로 무대에선 이혜교 씨 ©ONECHURCH
마지막 의상 순서는 포멀 롱 가운 무대였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개성과 분위기를 담은 긴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결선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진 마지막 무대에서는 참가자들의 우아한 워킹과 침착한 태도, 무대 장악력이 돋보였다. 이 씨도 마지막까지 차분하게 무대를 마치며 수개월 동안 준비한 기량을 보여줬다.
세 차례의 무대를 통해 참가자들은 지역과 문화적 정체성, 자신감과 자기관리, 무대 표현력과 품격을 차례로 선보였다.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겨루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배경과 가치관, 리더십을 표현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최종 우승의 영예는 크라이스트처치 출신 조지아 워딩턴(Georgia Waddington)에게 돌아갔다. 워딩턴은 뉴질랜드 대표로 오는 11월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열리는 제75회 미스 유니버스 세계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이혜교 씨는 이날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와 관계없이 한국계 최초 결선 진출자이자 최연소 참가자로 최종 무대까지 도전을 이어가며 뉴질랜드 한인 사회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2026 미스 유니버스 뉴질랜드로 선발된 조지아 워딩턴 ©ONECHURCH
“한인으로서 도전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결선 무대를 마친 이 씨는 수상 여부보다 한인 청년으로서 이 무대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미를 뒀다.
“한인으로서 도전할 수 있어 좋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에게 이번 대회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왕관만을 얻기 위한 경쟁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받은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한국계 뉴질랜드인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비슷한 배경을 가진 다음 세대에게 용기를 건네기 위한 도전이었다.
이 씨는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는 저와 닮은 사람이 큰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제가 무대에 서는 것이 누군가에게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메시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어린 시절 김밥 도시락과 보리차, 한국 이름과 외모 때문에 낯선 시선과 조롱을 경험했다. 자신이 충분히 뉴질랜드 사람인지 스스로 질문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두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과거 자신을 위축시켰던 ‘다름’은 이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세워주는 힘이 됐다.
“진정한 리더십은 섬김에서 나옵니다”
이 씨는 대회 공식 소개 영상에서도 자신의 한국계 정체성과 삶의 가치관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는 한국 이민 가정에서 성장한 경험을 소개하며 뉴질랜드에서 살아온 시간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또한 서로 다른 문화와 꿈, 공동체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이 뉴질랜드의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씨는 뉴질랜드의 핵심 가치 가운데 하나인 ‘마나아키탕아(Manaakitanga)’를 언급했다. 마나아키탕아는 타인을 존중하고 친절과 관대함으로 대하며 공동체를 돌보는 태도를 뜻한다. “마나아키탕아는 존중과 친절, 관대함으로 사람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저는 진정한 리더십은 섬김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그가 말한 섬김의 리더십은 기독교 신앙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사람들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영향력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이다. 화려한 왕관과 무대보다 사람을 대하는 작은 태도에서 신앙이 나타나야 한다는 그의 믿음도 여기에 담겨 있다. 친절함과 겸손함, 섬김과 배려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선교에서 더욱 깊이 만난 하나님
이 씨의 신앙을 한층 깊게 만든 경험은 지난해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참여한 선교 활동이었다. 그는 현지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면서 사랑과 섬김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선교 현장에서 그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됐고,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진심 어린 사랑은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캄보디아 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신앙은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경험은 이번 미스 유니버스 뉴질랜드 도전에도 이어졌다. 대회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감추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체성과 기회를 통해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세우는 길을 선택했다.
현재 오클랜드대학교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 씨는 에덴장로교회 청년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학업과 대회 준비를 병행하는 치열한 일정 속에서도 말씀과 기도로 삶의 방향을 바로잡았다고 고백했다.

2026 미스 유니버스 뉴질랜드 파이널리스트 이혜교 씨 ©ONECHURCH
왕관은 얻지 못했지만 남겨진 기록
이 씨는 앞서 인터뷰에서 왕관의 의미에 대해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책임이고, 영향력이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비록 이날 왕관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도전을 통해 그 말의 의미를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줬다. 한국계 최초이자 19세 최연소 참가자로 무대에 서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기독교 신앙을 숨기지 않은 채 섬김과 다양성의 가치를 전했기 때문이다.
대회는 끝났지만 ‘한국계 최초 결선 진출’이라는 기록은 남았다. 19세 한인 청년이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 꿈을 품고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무대에 섰다는 사실도 사라지지 않는다.
왕관은 다른 참가자에게 돌아갔지만 이 씨의 도전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자신과 닮은 누군가가 큰 무대에 서기를 기다렸던 한 소녀가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희망의 얼굴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과정의 마지막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백으로 마무리했다.
송성한 기자 onechurchn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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