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교회 오클랜드 서부교회
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영원으로 가는 길 Ⅰ, Ⅱ

by AIC posted Mar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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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으로 가는 길 Ⅰ

 

"더 좋은 본향"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인간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자는 아무도 없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이치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도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영원을 생각하지 못하는 인생은 어리석은 인생이다. 모두 평생 살 것처럼 온 맘을 이 땅에 다 쏟고 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이야기다. 영원을 망각하고 이 땅의 복을 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 이 땅의 삶은 그리 길지 않다. 그나마 그 시간도 성경은 날아간다고 말한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성경은 우리의 생명이 잠깐왔다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너무나 안타깝게도 안개와 같은 이 땅의 삶에 집착하고 사는 인생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지으셨다. 언젠가 돌아가야할 본향이 있다.
 

  동물중에 귀소본능(歸巢本能)을 가진 동물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넓은 바다로 나가 3년 세월을 지낸다. 바다에서 자그마치 25파운드나 되는 큰 물고기로 자란 뒤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다에서 강으로, 거센 폭포 물줄기를 거슬러 수만 리 떨어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인간의 마음 속에도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고향에 관한 애수의 노래들이 특별히 많다. "고향 소식, 두고 온 고향, 고향의 노래, 고향 아지매, 고향이 좋아, 고향 무정, 고향의 봄"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있다면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특히 해마다 명절이 되면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실향민들의 아픔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향수병이라는 것이 있다.
 

  특별히 일제시대 때에 만주나 여러 곳으로 끌려간 우리 젊은이들이 마지막 죽어가면서 동굴에 새겨 놓은 글들은 모두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글들이라고 한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본향을 그리워하는 속성이 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이며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5-16).


  우리 인간에게는 육신의 고향과 영혼의 고향이 있다. 내 몸이 태어난 곳이 육신의 고향이고, 내 영혼의 고향은 하늘나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임종 순간에 얼굴이 빛난다. 우리 영혼의 아버지가 계신 천국 본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눈물과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유리 바다와 황금보석으로 꾸며진, 그리고 천군천사와 주님이 기다리시는 그 아름다운 본향으로 가는데 어찌 평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찬송가 480장은 성도의 임종 때 부르는 찬송이다. 얼마나 감격 스러운 찬송인지 모른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1절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

 

   2절 너의 등불 밝혀 있나 기다린다 신랑이
   천국 문에 이를 때에 그가 반겨 맞으리

 

   3절 기다리던 성도들과 그 문에서 만날 때
   참 즐거운 우리 모임 그 얼마나 기쁘랴

 

   후렴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성도에게 죽음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영원한 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수많은 성도들은 오직 이날을 위하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카타콤이란 지하 무덤이 있다. 초대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어 살던 곳이다. 내가 방문한 곳은 지하 4층 정도 되는 곳인데 냉기로 가득차 있고,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흑암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신앙의 순결을 지켰다. 평균 수명이 30세이고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었다. 로마 근교에서 발견된 카타콤만도 약 600여 개이고, 길이가 무려 960킬로미터에 달한다. 그 무덤에 묻힌 사람은 무려 600여 만 명이 된다. 그들이 그곳을 나왔을 때에는 거의 장님이 되었다고 한다. 추위와 굶주림, 전염병 등 그 많은 고난을 겪으며 평생을 그 곳에서 살아온 이유는 오로지 천국을 향한 소망 때문이 었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내 아버지가 계신 나의 고향 천국을 사모하며 소망 중에 사는 자들이다. 그 어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순례의 길을 기쁨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무리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우리의 처소를 준비하고 간절히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제는 더 이상 눈물도 아픔도 고통도 없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아버지의 따뜻한품 이 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한 선교사가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수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군악대의 예포 소리가 울려퍼졌고, 부둣가에는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대통령이 배에서 내려올 때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맞이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 소리도 멎었다.
 

  그 뒤를 선교사 홀로 고독하게 내려왔다. '사냥을 갔다 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아내마저 잃고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 선교사는 고독감과 실패감을 느끼며 터덜터덜 걸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 아들아! 네가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으로 길을 깔고 내가 친히 너를 마중 나오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이 땅의 고난의 시간들을 끝까지 인내하며 충성을 다하면 하늘 나라에서 주님이 친히 우리를 맞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의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본향이 없는 자들의 임종은 고통이요, 두려움의 시간이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했다. 그는 병원에 있는 한 달 동안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도 아내에게 묻지 못했고, 아내도 그의 병명을 말하지 못했다. 소리치며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사람! 그런데 그 사람처럼 글로써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


  그는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다. 그것이 그의 말로였다. 1980년 4월 16일,그는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병원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 각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다. 그 때 어떤 독자가 한 신문사에 이런 기사를 투고했다. "그는 아마도 비그리스도인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향이 없는 사람, 참으로 비참한 사람이다.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잠 27:8).
 

  성경은 '더 나은 본향'을 그리워하며 살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6).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처소인 더 나은 본향이 있다. 언제든지 인생의 장막을 걷고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이 땅은 우리의 장막 집이요, 반드시 무너질 날이 온다. 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머무르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가장 간소하게 준비 한다. 머무르는 장소가 아무리 아름다운 곳일지라도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인생은 떠날 이 땅에 자기만의 성을 쌓으려고 일생을 바친다. 성경은 우리를 나그네라고 말씀한다. 나그네는 한곳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 라 지 나가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 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14).
 

  유대인들은 과거 수백 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에 흩어져 살아왔다. 그들은 어느 곳에 살더라도 그들의 본향 가나안 땅 만을 바라보며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그들이 해온 장사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언제든지 쉽게 가지고 갈 수 있는 보석상을 했다. 둘째는 언제든지 쉽게 버리고 갈 수 있는 야채상을 했다. 그들은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추어 살았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우리는 이 땅의 시민권자가 아니고 방문객(visitor)으로 잠시 머물다가는 자들이다. 여행을 하다 호텔 방에 들게 되면 숙박계를 쓰게 된다. 거기에 보면 여러 가지 질문이 나온다.
   첫째,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출신지)
   둘째,지금 무엇 하러 여기에 왔습니까?(용무)
   셋째,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다 가실 것입니까?(숙박일) 넷째,다음 목적지는 어디 입니 까?(행선지)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신학자 리처드 니버는 그의 《계시의 의미》라는 책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이민간 자"라고 말했다. 우리는 순례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뉴질랜드에 많은 사람들이 와 있지만 영주권을 가진 사람과 관광을 위하여 잠시 방문한 사람의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 영주권을 가진 사람은 방문자처럼 마음껏 즐기고 놀 수가 없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부로 1달러도 쓸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돌아갈 고향, 천국이 있다. 고향으로 갈 그 날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 땅에는 세 종류의 나그네가 있다.
 

  첫 번째는 자기가 나그네인 것을 모르고 사는 나그네이다. 이 땅이 내가 영원히 살 곳이라고 생각하여 집착하고 사는 사람이다. 자기의 피와 눈물과 땀을 이 땅에 다 쏟으며 산다. 일생 아파트 평수를 넓히려고 아등바등 살아간다. 먹을 것 먹지 않고 그저 큰 집 에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다.
 

  두 번째는 나그네라는 사실에 너무 집착해서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쾌락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이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에는 세가지 아치로 된 문이 있다. 첫째 문은 장미꽃이 새겨져 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는 글귀가 있고, 둘째 문은 십자가가 새겨졌는데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고 쓰여 있다.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인생살이는 고통도 잠깐이고 즐거움도 잠깐이기 때문에 영생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세 번째는 나그네는 나그네인데 정착지가 있는 나그네이다. 이를 우리는 순례자라고 한다. 비록 걸어가는 과정이 때로는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이 과정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바로 본향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이 되면 고향에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중에는 금의환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려운 중에 도회지에 나와서 착실하게 아르바이트하며 열심히 공부하여 사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된 사람은 고향에 가는 기쁨이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고향에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고향 부모님의 재산을 다 가져다가 허랑방탕해서 날리고 죄만 짓다 거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본향에 갈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한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널리 불린 "하숙생"이란 노래가 있었다. 그 가사가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구름에 달 가듯이 서둘러 가는 길에 미련일랑 두지 말라, 미련일랑 두지 말라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구름에 달 가듯이 인생은 흘러간다. 흘러가는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더 좋은 본향을 향해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밷전 1:17).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 초대교회에 이런 교훈이 있다. "인생은 다리이다. 현명한 자는 그 다리를 건널 뿐,그 다리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눈물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고향이 있다.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이 한 발자국이 오늘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영원으로 가는 길 Ⅱ

 

"천국에 보물을"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인도의 항구도시인 캘커타에 지부를 두고 있는 영국선교협회의 한 직원이 그 도시의 이름 있는 상인을 찾아가 선교를 위한 헌금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그 상인은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짓고는 어렵게 250불짜리 수표를 끊어 주었다. 이 직원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막 사무실을 나오려는데 그 상인 앞으로 급한 국제전보가 한 통 전달되었다. 이 전보를 받은 상인의 얼굴이 갑자기 백지장처럼 변했다. 무엇인가 불길한 소식임이 분명했다. 이 직원은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았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 상인은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 물건을 가득 싣고 항해하던 저의 배 한 척이 침몰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손실은 저의 사업에 아주 치명적인 일입니다."
 

  한참 말을 하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상인은 조용히 방금 끊어 주었던 수표를 돌려달라고 했다.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 선교회 직원은 주저 없이 수표를 돌려주었다. 그 수표를 돌려받은 상인은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적더니 다시 수표를 주었다. 그 수표는 뜻밖에도 1,000불짜리 였다. 당황한 선교회 직원이 물었다. "이것은 1,000불짜리인데 혹시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닙니까?" 그 상인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오. 지금 제가 받은 전보는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전보였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전보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보물을 쌓고 있는가? 오늘 많은 인생들이 이 땅에 보물을 쌓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 땅의 부를 가져 보려고 밤잠 자지 않고,이 땅의 명예를 얻어 보려고 동분서주한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보물로 생각하지만 실은 내가 가장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이 나의 보물이다. 돈 버는 것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면 돈이 내게는 보물이다. 높은 자리의 명예를 위해 살아간다면 명예가 나의 보물이다. 내가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쾌락이 내 인생에 보배인 것이다.
 

  내 마음이 가 있는 그것이 바로 나의 보물이다. 내 생의 목적이 바로 나의 보물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가치관의 기준이 되고, 내 성공과 실패의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보물은 때로는 물질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 자식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이 보물을 끝없이 채워 보려는 욕망이 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모든 인간은 아마도 돈을 가장 큰 보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돈이 잘 통용되기 전에는 아마도 보석들이 가장 큰 보물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경주 천마총을 방문해서 무덤 속의 사람의 죽은 모습을 그대로 보관한 것을 보았다. 물론 사람의 육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나 죽은 모습 그대로 옷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 많은 금 장식물과 보석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죽으면서까지도 보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는 것 같았다. 아마 죽은 후 사후세계에서 이 보석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족들의 무덤에는 다 이런 보물들이 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속에는 보물을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현대에 들어서서는 이 보물을 대신하는 것이 돈이고 물질이라 하겠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많다. 돈으로 명예도 살 수 있고, 돈으로 기쁨도 살 수 있고, 돈으로 나의 부족함을 채울 수도 있다. 돈의 위력이란 굉장하다. 요즘 사회가 물질만능주의가 되다보니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한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다. 슬픈 이야기지만 교회도 마찬가지다. 재벌이 교회에 오면 대우가 다르다. 돈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주님께서는 두 주인으로 표현을 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하나님의 자리에 물질이 함께 올라와 있다. 이것은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섬긴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보다 이 땅의 보물에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 이 땅에 보물을 쌓으려는 교인들도 많다.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이 땅에 반드시 물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 먹고 살고, 자녀들도 교육을 시키고, 또한 선한 사업도 할 수 있다. 보물을 쌓지 말라는 말은 돈을 벌지 말라는 말이 아니 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물질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고 물질을 대하는 자세를 바로 가지라는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마 6:19).
 

  이 땅에 보물을 쌓아 두면 좀과 동록이 생기고 도둑이 가져간다고 말씀하신다. 좀은 옷을 못 쓰게 만드는데, 그대로 두어도 자연적으로 상실된다는 뜻이다. 동록은 구리에 생기는 파란 녹을 말하는데, 쇠를 못쓰게 만든다. 이것은 시간과 함께 변질됨을 말한다. 도둑이 가지고 간다는 것은 상황과 함께 없어진다는 말이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더라도 이 세상의 것은 언젠가 다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 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0).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은 히브리적 용어로 '선행을 하라', '하나님의 뜻대로 써라', '하늘에 쌓아 두라'는 뜻이다.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은 바로 선을 위해서 다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가장 큰 보물로 생각하는 재물을 우리에게 특별히 부어 주셨다. 매년 여러 빌딩과 쇼핑센터를 통해서 수십억 원의 물질을 주셨다. 나는 성경의 법칙에 따라 모든 물질 을 하늘나라에 쌓으려고 애쓴다. 구제와 선교가 우리 사역의 목표다. 지금까지 힘이 닿는 대로 보물을 천국에 쌓았다. 놀라운 일은 늘 잔고가 거의 없을 정도로 물질을 사용했으나 사역의 규모는 나날이 성장했다. 지난 7년간 자산은 10배로 늘어났다. 천국에 보물이 쌓여가는 동안 이 땅에도 차고 넘치도록 채워 주셨다. 이것이 천국계산법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생이 있다. 일평생 모으기만 하고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고 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있다. 그저 모으는 재미로 산다. 자기를 위해서도, 자식을 위해서도 쓰지 않는다. 참으로 비참한 사람이다. 돈의 노예로 살다 가는 사람이다.
 

  1870년대 세계 최고 갑부인 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이 바로 '월가의 악녀'라고 불리던 헤티 그린이다. 그녀는 1800년대 세계에서 가장 부자였고 또한 가장 지독한 구두쇠이기도 하였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헤티는 아버지로부터 약 9억 원 정도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녀는 50년 동안 주식과 채권 등 온갖 수단으로 재산을 백 배 이상으로 불렸다. 그녀의 생활신조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서른셋 되던 해에 그녀는 백만장자인 에드워드와 결혼을 하였다. 에드워드는 아내의 재산에 일체 손을 대지 않는다는 각서를 헤티에게 제출하고서야 비로소 결혼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헤티는 에드워드와의 사이에서 두 자녀를 낳았는데 남편이 투자한 주식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자 곧 이혼을 해버렸다.
 

  이후 헤티는 재산세를 내지 않기 위해 값싼 호텔을 전전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그녀는 의복과 세탁비를 아끼려고 아이들에게 까지 매일 똑같은 검은색 옷만 입고 다니게 하였고, 옷을 빨 때에도 땅에 닿는 끝부분만 빨았다. 어느 날 그녀의 아들이 무릎을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그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아이를 직접 치료하였지만 2년 후 아들은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았다.

 

  그녀는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은행 귀중품 보관실 바닥에 앉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증권과 채권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종이에 싸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어온 마른 빵조각을 꺼내 먹곤 했다. 1916년 헤티 그린은 8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원인은 우유 값 때문이었다. 우유 값을 덜 내려고 상인과 말다툼을 하다 뇌졸중 으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900억 원이 넘는 재산 중에 그녀는 단돈 1원도 가져가지 못했다. '악녀'라는 이름만 세상에 남았을 뿐이다.


  다음은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다 가는 자가 있다. 일평생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남을 위해 쓰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의 쾌락만을 위해 산다. 자기를 위해서는 전혀 아끼지 않는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가방을 몇 개나 가지고 온몸에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면서도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 이웃에게는 단돈 천 원도 주지 않는다.
 

  뉴질랜드로 유학을 오기 전에 한때 한국에서 가장 부자들이 다니는 강남의 한 교회를 잠시 다닌 적이 있다. 이 교회는 장관, 국회의원, 탤런트 등 유명한 사람들이 즐비했다. 수만 명의 교인들 중 대부분은 강남 부자들이 었다. 그들은 예배를 마치면 교회 주위에 밀집해 있는 일류식당에서 비싼 점심을 즐겼다.

 

  그때 교회 입구 그늘진 곳에서 매 주일 두 다리가 잘린 40대 아저씨 한 분이 추위 속에 찬송을 부르며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이분의 간청은 너무나 간절했다. 예배가 마치면 몸에 수백만 원,아니 수천만 원짜리 밍크코트를 걸친 여성도들이 줄을 지어 그곳을 지나갔다. 오랜 세월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옆을 지나가며 바구니에 단돈 천 원을 넣고 가는 성도를 보기가 어려웠다. 가끔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바구니 위에 올려놓고 가는 사람은 있었다. 
 

  지금부터 잠깐 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혹시 내 선행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여질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다. 내가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전하고자 함이다. 
 

  내가 구걸하는 이분을 처음 보았을 때 이분이 겪고 있는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팠고, 또 한편으로는 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으면 이분의 모습처럼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스러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이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 매 주일 만 원짜리 지폐를 준비해서 손을 잡고 전해 주었다. 만 원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월급쟁이인 내가 매달 4-5만 원을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주 찾아주는 나를 이분은 늘 간절히 기다렸다. 어떤 때는 주차장에 차를 급히 빼야 할 상황이 생기면 멀리 차를 옮겨두고 다시 돌아와서 꼭 이분을 만나고 갔다. 혹시라도 내가 가지 않으면 그분이 느낄 실망감이 너무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몇 년 흘러 나는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다시 못 볼 이분을 위하여 봉투에 10만 원을 담아 미리 전해 주고자 했다. 그런데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 오는데 이분이 3주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음 주엔 오시겠지 하며 기다리다 보니 떠날 마지막 주일이 되었다. 그날 아침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내가 이분을 만나서 사정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몇 날이고 나를 기다릴텐데 그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간절히 기도했기에 오늘은 반드시 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교회로 갔다. 그런데 그날도 이분은 보이지 않았다. 그 실망감과  아픔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예배시간 내내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나님, 이분을 꼭 만나고 가게 해주세요." 그 간절 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예배를 마치고 한 발 한 발 이분이 있던 자리로 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멀리서 이분의 찬송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움에 단숨에 달려갔다. 이분의 손을 꼭 잡고 이제는 유학을 가게 되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준비한 돈을 전해 주었다. 이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며 한참 내 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 이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헤어졌다.  하나님은 나의 이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다음은 일평생 모아서 마지막에 선한 일에 내어놓고 가는 사람이 있다. 간혹 신문을 보다보면 죽음 직전에 자기의 전 재산을 장학금이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참 아름다운 일이다. 누구나 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하루하루 선한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이런 사람이 되라고 말씀한다. 앞으로 돈 많이 벌어서 선한 일을 하겠다, 주를 위해 살겠다, 선교하겠다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오늘 이 순간 선을 행하며 사는 것, 이것만이 천국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오늘 이곳 뉴질랜드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오고 있지만 정작 뉴질랜드에 살도록 자격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의 박사학위가 수십 개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업적을 쌓아도 천국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이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일이다. 영원을 바라보고 천국에 보물을 쌓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선을 위해 뿌리는 물질, 시간, 땀, 피와 눈물이 모든 것들은 바로 하늘나라에 나의 보물이 된다. 
 

  이 땅에 자기를 위해 쌓은 보물은 언젠가 다 사라져 버리지만 하늘나라에 쌓은 보물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한  가지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있다. 내가 쌓은 하늘의 보물에 비례해서 이 땅에서도 모든 것을 차고 넘치도록 하나님이 채워 주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내가 일평생 체험한 간증이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오늘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때다.

 

원처치 저자 이은태 목사

profile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 속에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다. 뉴질랜드 유학 중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개의 빌딩을 받고, 크리스천 영어학교를 세워 매년 200여 명의 기독청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 지원,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 노인 나눔센터 사역을 하고 있다.


원처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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