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교회 오클랜드 서부교회
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행복으로 가는 길 Ⅳ, Ⅴ

by AIC posted Mar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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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는 길 Ⅳ

 

"고난이 주는 행복"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 고난”


  인간의 마음속에는 공통적인 마음이 하나 있다. 그것은 평안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누구도 고난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평안보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난의 강도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다.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인간은 던져진 생을 산다”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통 속에 던져진 생을 사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라고도 한다. 평안을 바라는 심리, 그러나 고통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 그리고 어떠한 고통도 죽음 앞에서 무의미한 이 세 가지는 인간에게 있는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현상이다.
 

  고난은 모든 인간이 원치 않는 것이고 불행의 한 요인으로 생각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떤 고난을 어떻게 당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난의 결론이 무엇이냐’ 이것이 중요하다. 비록 고난이 올지라도 해피엔딩 (happy ending)으로 끝날 수 있다면 그 고난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면,그간의 모든 고통과 흘렸던 눈물은 오히려 그 인생에 가장 값진 보물이 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많은 고통 가운데 살아간다. 아니, 그리스도인이기에 보다 더한 고난과 역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기쁨과 소망속에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행복한 결말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사에서 유명한 성 어거스틴은《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이라는 불후의 명저속에서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고 고통은 동일한 것이로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원망하고 모독하고, 선한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고통은 같은데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있다.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고난을 당하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고통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고, 고난의 의미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많은 고난을 겪은 E. 프랭클(Victor E. Frankel)이라고 하는 분은《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그의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난 속에서 포기한 사람에게는 고난은 저주이지만,고난 속에서 그 고난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고난은 놀라운 축복일 수 있다.”
 

  내 삶을 뒤돌아볼 때에 참 고난의 시간이 많았다. 나는 어머니가 주의 종으로 서원하여 바친 아들이었다. 나는 주의 종이 되는 것이 죽기만큼 싫었다. 하나님은 많은 고난을 주셨다. 나중에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하시고 무릎이 박살나는 장애를 주셨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난을 피하여 뉴질랜드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많은 주의 종들이 은혜를 받고 헌신된 마음으로 신학을 하지만 나는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끌려서 신학대학에 왔다.
 

  늦은 나이에 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는것 자체가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난이 었다. 공부를 하는 중에도 내 마음은 ‘어떻게 하면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그 고난이 나를 살리는 길이었고 축복의 통로였다. 그 당시는 견디기 힘든 고난이었지만 그 고난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를 새롭게 만들어 가셨다. 내 속에 가득한 악을 제하시고, 세상을 향하던 불같은 마음들을 정결하게 만들어 주셨다.
 

  고난은 바로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과정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알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하나님은 내 삶에 끝없는 고난을 주시며 내 믿음을 단련시켜 주셨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내 삶에 고난은 계속될 것이다. 이 고난은 바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징표이다. 사랑하시기에 징계하시고 간섭하신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 12:8-11).
 

  욥은 고난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욥은 의인이다.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1:1).
 

  그는 깨끗하게 산 사람이다. 이러한 욥이 고난을 당하게 된다. 욥과 같은 사람한테는 고통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욥은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날아가고,사랑하는 열 자녀가 한순간에 죽임을 당한다. 몸은 성한 곳이 없고, 가장 신뢰했던 아내마저 저주를 하고 떠나간다. 누가 이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할 수 있겠나? 그런데 그는 이 엄청난 고난을 겪고 비로소 진실한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이 엄청난 고난이 우연한 것이 아니요,엄청난 의미와 깊은 경륜이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 고난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순금같이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깨닫고 찬양하게 된다. 고난의 문제는 결코 고난의 문제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이것은 믿음과 소망의 문제다. 사탄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며,말씀을 못듣게 한다. 종국에는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더 밝은 소망의 세계로 이끌어 가신다.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하고,영의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터널은 출구가 있고, 동굴은 출구가 없다. 고난은 터널과 같다. 반드시 끝이 있다. 그래서 소망이 있다. 터널과 동굴의 공통점은 안이 어둡다는 것이다. 그러나 터널은 지나면 밝은 빛을 볼수 있지만 동굴은 갈수록 어둡고 나가려면 들어온 입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겪는 고난은 터널과 같다. 터널을 암울한 동굴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낮에도 별은 있다. 그러나 이것저것 볼 수 있을 때에는 별을 보지 못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에야 비로소 영롱한 별빛을 볼 수 있다. 욥은 어두움 속에서 별빛을 보듯이 하나님을 보았다.
 

  나치 독일의 악명 높은 수용소인 라벤스부르크에서 갖은 고난을 당했으나 남은 생애를 위대한 복음사역자로 헌신한 코리 텐 붐여사의 이야기다. 그녀는 라벤스부르크의 악몽을 겪은 이후 33년 동안 개인의 안식처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85세의 고령이 되었을 무렵, 몇몇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캘리포니아에 사랑스런 집을 마련해 주게 된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말했다. “코리, 너에게 이런 아름다운 처소를 주신 것을 보니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봐?” 그러자 코리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라벤스부르크 수용소에 있었을 때도 역시 하나님은 선한분이셨어.”
 

  참된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찬양하는 사람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선물이다. 우리를 정금같이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고난 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행복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령한 행복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 Ⅴ

 

"염려 없는 삶"
 

“염려는 갈라진 마음"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걸리기 쉬운 병 중에 하나가 예기불안 (Anticipatory anxiety) 이라는 병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까를 미리 걱정하면서 병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불안발작증으로 이어져 종국에는 육체의 병으로, 사회의 병으로 파급되는 결과를 맺게 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초조하고 불안하며 절망 이전에 미리 절망하여 죽어간다. 우리 인간의 행복한 삶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은 염려로 인한 두려움이다.
 

  ‘성공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나폴레온 힐은 성공에 대해서 연구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성공을 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변화를 주저하고 결단을 두려워한다. 나폴레온 힐은 그 원인을 두려움이 라고 생각했다. 그는 행복을 방해하는 7가지 두려움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1. 가난에 대한 두려움
 2. 외모와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3.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에 대한 두려움
 4.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
 5. 질병에대한두려움
 6. 자유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7.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 세상에 걱정과 염려가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염려와 고민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인간이 염려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이 염려로 인해서 마음이 파괴되고 몸에 병이 생기고 삶 자체가 무너진다. 성경은 염려가 뼈를 마르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가장많은 것이 심인성 신체질환(Psychogenic Disease)이다. 즉 ‘신경성’이란 말이 붙은 질병들이다. 신경성위궤양, 신경성관절염, 신경성심장병, 신경성두통 등 수없이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사자가 35만 명이었는데, 참전한 자식이나 남편 때문에 염려하다 심장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무려 100만 명이었다는 통계가 있다. 염려가 전쟁보다 무서운 셈이다. 염려는 몸과 마음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파괴시키다. 그래서 어느 심리학자는 말했다. “염려는 인간을 서서히 죽이는 느린 형태의 자살 행위다.”
 

  모든 사람들이 염려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앙적으로 바라보면 염려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염려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내 인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이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일을 행하다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내 인생을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터진 웅덩이를 파는 헛된 짓을 하기 때문에 염려와 두려움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머리카락 하나 검고 희게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
 

  나의 뜻, 계획, 소원 모두 깨끗이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자기를 비운 일이다. 영어로는 비웠다는 말이 ‘Nothing’으로 표현된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로, 오직 하나님 의 뜻대로 살도록 자신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6-7).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Phii 2:6-7).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을 nothing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자로 만들어야 한다. 교만하면 죽는다. 내 힘으로 살아가려면 일생을 염려 속에 살다 갈 수밖에 없다. 주님은 우리가 평안 중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수도 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친히 지켜주시겠다는 뜻이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0-32).
 

  어린 자녀들이 부모님과 살면서 매일매일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한다면 그 아이는 온전한 아이가 아니다.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고 매일매일 부모님이 해야 할 염려를 아이가 하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린아이들은 식사 때가 되면 부모님이 밥을 줄 것을 믿고 옷이 떨어지면 사줄 것을 믿고 있다.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저 부모님이 함께 계시면 평안한 것이다. 어린 아기가 엄마 품에서 젖을 빨며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라. 그 얼굴에 무슨 염려나 근심을 느낄 수 있겠나? 어머니의 존재를 느끼는 동안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 어머니 품이라면 언제나 평안하다.
 

  염려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문제이다. 환경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염려거리 밖에 없다. 한 순간도 두려움 없이 지낼 수가 없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홍해와 애굽 군대를 보았기에 염려로 죽게 되었다.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한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고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평안할 수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염려하게 된다. 공중의 새를 보기 전에 그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한다. 들의 백합화를 보기 전에 비를 주시고 태양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한다. 믿음이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또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보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느 2:18).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믿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이후에 늘 극도의 염려와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 일개 신부가 유럽을 장악하고 있는 교황청을 상대로 종교개혁을 일으켰으니, 어마어마한 압력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먹이를 먹고 나뭇가지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보고 크게 깨달았다. ‘저 작은 새는 내일 아침 먹을 것에 대해서도, 내일 밤 잠자리에 대해서도 아무 걱정이 없구나! 새조차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 염려 없이 자고 있는데, 왜 나는 그토록 많은 걱정을 했을까? 작은 새 한 마리도 돌보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아끼시고 보호하시겠는가!’ 이후 루터는 자신도 그 작은 새처럼 하나님을 믿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맡기고 용기와 힘을 얻어 교황청을 상대로 싸워 이김으로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 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 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0-12).
 

  믿는 자에게는 염려가 필요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자가 초대 교회와 관련된 문서를 연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초대 교인들에 대한 삶이 기록되어 있는 그 문서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이름 앞에는 ‘티테이오스’라는 단어가 하나같이 붙어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바나바와 바울, 베드로와 같은 모든 사도들뿐 아니라 일반 평신도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이름에도 어김없이 ‘티테이오스’라고 쓰여 있었다.
 

  신학자는 곧 이 단어의 뜻을 알아보았는데 ‘티테이오스’는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었다. 당시 초대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발각되면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고 극한 고난을 당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늘의 소망을 품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에게는 염려할 문제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먹을 것 입을 것 이 세상의 것들을 위해서 염려하지 마라. 너희에게 필요한 것 내가 다 알고 있다. 내가 다 채워 주겠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1-32).
 

  우리는 이 신실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일이다. 독일군의 연이은 폭격으로 불안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영국 런던 시에서 평안히 잠을 자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그 비결을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매일 밤 기도한답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들어 평안하게 잠자리에 들게 되지요. 사실 하나님과 내가 둘이 다 깨어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다. 우리를 지으시고 보살펴주시는 그분께서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히 잠잘 수 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4-8).
 

  사전에 보면 ‘염려’란 '어떤 생각에 잘못 집착해서 그 생각 때문 에 다른 생각을 전혀 할 수 없게 된 병리적 심리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염려는 헬라어로는 ‘메림나’이다. 이 말은 본래 ‘갈라진 마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만을 생각해야 할 그 마음이 세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염려가 생기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지 말고 오직 내 마음을 하나님 한 분께 고정하고 그분의 선하신 손길을 바라보자. 내가 참 좋아하는 말씀이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6:10-13).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뉴질랜드 땅에 선교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 주셨다. 무에서 선교센터 빌딩을 주실 때 이미 그 안에 아름다운 영어학교도 준비해 주셨다. 뉴질랜드에서 우리 힘으로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엄청난 물질과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 학교를 세우게 하시고 빌딩을 주실 때 바로 선교할 수 있도록 학교도 함께 주셨다.
 

  이번에도 이곳 교회들을 위한 수양관 설립을 놓고 마음 아파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3일 만에 약 2만 평의 땅에 모든 시설을 갖춘 크리스천 캠프장을 주셨다. 한 가정이 34년 동안 가꾸어 놓은 에덴동산 같은 캠프장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실망하게 하시지 않았다.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아시고 모든 것을 이루어주셨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염려가 필요없다.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체제 밑에서 박해를 받던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는 그가 옥중에 있을 때에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 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된 것을 보고 도대체 몇 번이나 쓰여 있는가를 세어 보았더니 꼭 365번이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이 숫자는 1년 365일 매일 한 번씩에 해당되는 숫자이다.

 

  주님께서는 매일매일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염려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염려 없는 삶, 이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 로다”(신 33:29).

 

원처치 저자 이은태 목사

profile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 속에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다. 뉴질랜드 유학 중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개의 빌딩을 받고, 크리스천 영어학교를 세워 매년 200여 명의 기독청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 지원,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 노인 나눔센터 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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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원으로 가는 길 Ⅰ, Ⅱ

    영원으로 가는 길 Ⅰ "더 좋은 본향"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인간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자는 아무도 없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이치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
    Date2022.03.24 Category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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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행복으로 가는 길 Ⅳ, Ⅴ

    행복으로 가는 길 Ⅳ "고난이 주는 행복"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 고난” 인간의 마음속에는 공통적인 마음이 하나 있다. 그것은 평안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누구도 고난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평안보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
    Date2022.03.18 Category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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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행복으로 가는 길 Ⅱ, Ⅲ

    행복으로 가는 길 Ⅱ "평안과 소망" "참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영국의 역사가이자 평론가인 토마스 칼라일은 "인간은 희망에 기초한 존재이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사람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희망이 있을 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내게...
    Date2022.02.11 Category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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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 바로 섬기기 Ⅵ, 행복으로 가는 길Ⅰ

    하나님 바로 섬기기 Ⅵ "절대적 믿음" "With God nothing is impossible"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은 바로 믿음이다. 신앙이란 바로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의 지식과 생각으로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믿음으로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
    Date2022.02.04 Category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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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나님 바로 섬기기 Ⅳ, Ⅴ

    하나님 바로 섬기기 Ⅳ "헌금의 은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은혜의 표현 '헌금'" 왜 하나님께서는 헌금이란 제도를 만드셨을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문제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셔서 우리에게...
    Date2022.01.26 Category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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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하나님 바로 섬기기 Ⅱ, Ⅲ

    하나님 바로 섬기기 Ⅱ "그리스도인의 가치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어느 책에 나오는 슬픈 이야기이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평생 꿈이 집 장만이었다고 한다. 집을 갖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악착같 ...
    Date2022.01.18 Category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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