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교회 오클랜드 서부교회
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행복으로 가는 길 Ⅱ, Ⅲ

by AIC posted Feb 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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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는 길 Ⅱ


"평안과 소망"

 

"참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영국의 역사가이자 평론가인 토마스 칼라일은 "인간은 희망에 기초한 존재이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사람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희망이 있을 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잃는다해도 희망 한 가지만은 끝내 가지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그렇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일어설 수 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희망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 많은 현대인들이 희망없이 절망 속에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할 젊은이에게도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한때 청년들 사이에 '3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5포 세대'라는 말이 나타났다. 그것도 잠시 다시 '9포 세대' 라는 말이 들려왔다. 9포 세대란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건강, 외모를 포기 한 세대를 뜻한다.
 

  이제는 9포 세대를 넘어서 '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제는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삶을 일컬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헬조선', '흙수저'라고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삶의 희망을 버리고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욜로족'이라는 새로운 부류의 삶의 그룹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100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노후가 준비되지 않은 많은 노인들이 절망의 그늘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청년들과 노인들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절망과 불확실한 미래로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녀들의 사교육비, 학교든 일터든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경쟁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일가족이 자살하는 비극적인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전해진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동반 자살하는 일도 이제는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OECD 국가 중 한국은 자살률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평균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1.3명이지만 한국은 31.2명이다. 10대에서 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75세 이상 자살률은 OECD 평균의 무려 8.3배나 되며, 80세 이상 자살률은 20대의 5배 이상이 된다. 전 세계 자살률을 보면 1년에 약 130만 명으로 이는 30초에 한 명씩 자살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결과는 깊이 생각해 보면 경제 문제도 아니요, 더구나 정치·사회 문제 때문도 아니다. 그들을 파국으로 이끈 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언론문학상인 퓰리처상을 받았던 마가렛 하기우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로 미 해병대와 함께하며 갖은 고생을 다했다. 해병 5중대에 소속되어 취재를 하다가 한 번은 참호 속에 갇혀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 병사들은 시체가 쌓여 있는 그 속에서 벌벌 떨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서로가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마가렛 기자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 당신들에게 지금 무엇을 해주면 좋겠습니까?" 그때 한 병사가 이렇게 대답했다. "Just give me tomorrow"(오직 내일을 주십시오).

 

  절망은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소망의 문제다. 오늘 우리로 하여금 절망케 하고 좌절케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 기관 조사결과 30-40세대의 78.6퍼센트가 이민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민을 가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때문이다. 미국에 가면, 뉴질랜드에 가면 행복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마지막 남은 지상낙원이라는 이 뉴질랜드 땅에 지난 20여 년간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이민을 왔다. 그러나 이곳도 그들에게 참 평안과 행복의 땅은 아니었다. 이민자의 반 이상이 실패하고 돌아갔다. 사업에 실패하여 자살한 사람들도 있다. 현실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가정이 파괴된 집들도 많다.


  이 세상 어디에도 행복과 미래를 보장해 주는 곳은 없다. 우리에게 평안과 행복을 주는 것은 복지국가가 아니다. 또한 풍요로운 삶도 아니다. 평안과 소망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믿음의 문제요, 영적인 문제다. 하나님만이 참 평안과 소망을 주신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 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13).

 

  나에게도 견디기 힘든 절망의 시간들이 있었다. 나이 38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미지의 땅으로 유학을 왔다. 신학공부를 하는 동안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영주권은 아예 신청할 자격도 되지 않았다. 더욱 나를 절망케 한 것은, 신학을 해도 갈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지만 내 눈에는 그 어떤 아름다움도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가슴에 바위가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희망이라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라는 절망 속에 하루하루가 초주검이었다.
 

  이런 절망의 순간에 나에게 소망을 준 것은 인간의 도움도, 환경의 변화도 아니었다. 기도 중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이었다. 하나님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약속을 주셨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것들을 이루어 주셨다. 무에서 땅을 주시고, 3개의 빌딩을 주시고, 쇼핑센터를 주시고, 선교센터와 영어학교를 세워 주셨다. 또 수원 나눔센터와 크리스천 캠프도 세워 주셨다. 하나님이 이루신 이 모든 것들을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 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
 
  우리는 세상에서 평안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불확실한 것들을 바라보며 헛된 소망을 가져서도 안 된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오기를 원하신다. 이제는 헛된 소망을 붙잡고 가슴 조이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붙잡고 전심을 다해서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전심으로 찾으면 만나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 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 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뉴질랜드의 기후는 참으로 변덕스럽고 예측하기가 어렵다. 어느 날은 너무나 맑고 화창하여 기분 좋게 우산도 없이 외출을 나간다. 그러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폭우가 쏟아지곤 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여 온 종일 비가 올 것처럼 보였는데 10분도 안되어 밝은 태양이 내리쬐는 경우도 자주 있다.
 

  나는 뉴질랜드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늘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내 삶에 다시는 빛이 비치지 않을 것 같은 먹구름이 가득 덮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 걷혔는지도 모르게 먹구름이 변하여 찬란한 빛이 되었다. 분명한 사실은 엄청난 먹구름 뒤에 태양은 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소망의 미래를 준비하고 계신다. 절망적인 순간이 때로는 오래갈 수도 있고 바로 바뀔 수도 있다.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상황은 달라 질 것이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자에게는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게 하시며, 재앙이 변하여 평안이 되게 하시며, 눈물이 변하여 웃음이 되게 해주신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우리에게 더 이상 절망은 없다. 오직 평안과 미래로 가득 찬 소망만 있다.

 

 

 

행복으로 가는 길 Ⅲ


"감사가 주는 행복"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심리학 용어 중에'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현상을 말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8월 23일부터 28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Norrmalmstorg)의 크레 디트반켄(Kreditbanken)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에서 유래했다.
 

  당시 강도 두 명이 은행을 습격하여 6일간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직원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인질범들을 자기들을 지켜줄 사람으로 착각하고, 오히려 그들이 잠이 들면 대신 총을 쏘며 경찰과 대치했다. 오히려 그들과 정서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인질로 잡은 은행 강도들을 위해 경찰과 직접 협상했으며, 강도들에 게서 풀려날 때에 그들과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납치한 인질들이 그들을 지켜 주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 들의 말을 듣고 따르는 현상을 보였다.

 

  오늘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는 하나님보다 나를 멸망케 하는 세상을 더 사랑하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영적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우리의 모습이다.
 

  내 평생 마음을 짓누르는 두 단어가 있다. 그것은 은혜와 감사이다.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분에 넘치는 은혜 속에 살았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됨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그 은혜를 잘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배은망덕함을 보시고 심히 안타까워하신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3-4).

 

  모든 신앙의 시작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드리고 헌금을 드린다. 의무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은혜를 배신하는 것만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은혜를 망각하고 오히려 악으로 갚는 것이 배신이다. 배신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뜨겁게 사랑하셨다. 그들을 만방의 머리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우상을 섬기다 멸망했다. 멸망의 이유가 우상숭배였으나 깊이 들어가 보면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가 없다 보니 배반하게 되고, 결국 우상을 섬기다 망하게 되었다.


  오늘 왜 인생이 망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자들이고, 감사가 없는 자는 복을 누릴 수 없는 자들이다.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무엘하 9장에 참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이 가장 사랑했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이야기다. 다윗이 오랜 시련 후에 왕위에 앉았을 때, 다윗이 요나단과의 우정과 그가 베풀어 준 은혜를 생각하여 요나단의 마지막 남은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돌봐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삼하  9:7-8).

 

  므비보셋의 고백이 참 감동적이다.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이게 은혜 받은 자의 고백이다. 나도 늘 하나님 앞에 이런 고백을 한다. "아무 은혜도 받을 가치가 없는 자를 어떻게 이렇게 사랑하여 주십니까?" 내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독일의 위대한 신학자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인가 비기독교인인가의 구별은 그 사람이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알 수 있다." 신앙의 본질은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올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다.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고, 섬김의 마음이 나오게 된다. 사랑도, 섬김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으나 크게 보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 참 감동적인 30여 통의 편지를 받았다. 나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은 탈북학생들로부터 온 편지였다. 이제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그 고마움을 깨알같은 글자로 빼곡히 적어 보냈다. 이 편지를 다 읽고 너무나 감동해서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 다. 이들은 어떻게 이 작은 은혜에 이렇게 깊이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 감동적인 ○○○ 학생의 편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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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편지를 받고 난 뒤 내 마음을 짓누르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어떻게 하면 이 학생들을 더 돕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인간 인 내 마음도 이럴진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들을 향한 하 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감사하는 자에게 어풀어 주시는 하나님 의 은혜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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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복받는 길이요, 하 나님의 은혜안에 사는 길이다. 우리가 감사의 삶을 살려면 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먼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노력과 나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곳에는 감사가 있을 수 없다.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을 때에 감사할 수가 있다.


  운명으로 생각하는 자에게도 감사가 없다. 팔자 혹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감사를 할 수 없다. 운명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내 운명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삶을 통해서 복된 운명으로 만들어져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운명이 아주 복된 운명으로 바뀐다. 운명을 믿는 사람은 그 운명대로 비참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많이 은혜 받았다고 많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깨닫는 만큼만 감사한다. 감사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다. 하나 님의 은혜를 얼마나 깨닫느냐, 이것이 내 삶을 좌우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07:1).

 

  시편에 수도 없이 나오는 이 한 말씀,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 심이 영원함이로다." 왜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시기 때 문이다. 현재의 감사는 미래의 축복을 만드는 초석이 된다. 감사 는 바로 축복의 통로이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에게 큰 것으로 채워 주신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별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달을 주시고, 달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하늘의 영광의 빛을 주신다." 말세에 나타 나는 가장 큰 현상 중 하나는 감사가 사라지는 것이다. 감사가 없 는 삶에는 고통이 임한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 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 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 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우리는 감사로 살고, 감사로 죽어야 한다.


  나에게 큰 감동을 준 아름다운 시가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글이다.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자가 되지 못해도, 빼어난 외모가 아니어도, 지혜롭지 못해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 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삶, 내 인생, 나    ·.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 언더우드의 기도 낙서장에서 -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9:15).

 

  바울의 고백이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은혜 적 가치관으로 살아야 한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이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령한 행복이 차고 넘칠 것이다.
 

 

원처치 저자 이은태 목사

profile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 속에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다. 뉴질랜드 유학 중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개의 빌딩을 받고, 크리스천 영어학교를 세워 매년 200여 명의 기독청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 지원,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 노인 나눔센터 사역을 하고 있다.


원처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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