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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하나님 바로 섬기기 Ⅱ, Ⅲ

by AIC posted Jan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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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바로 섬기기 Ⅱ

 

"그리스도인의 가치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어느 책에 나오는 슬픈 이야기이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평생 꿈이 집 장만이었다고 한다. 집을 갖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악착같 이 돈을 모았다. 오랜 고생 끝에 집을 사서 입주하고 몇 년이 흐른 뒤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화장실이 마당에 있었기 때문이 다. 아주머니는 또다시 악착같이 일해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새 아파트를 장만했다. 행복했을까? 아니다. 시간이 지나자 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녀들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다음 목표는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집이었다. 또 수년을 고생한 끝에 화장실이 두 개인 집에 들어갔다. ‘이만하면 됐다’ 하고 뿌듯해하던 아주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말기 암이라는 것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아주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뒤돌아보니 자기 인생이 딱 세 글자로 표현되더란다. “화장실.”


  우리는 과연 일생 동안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나? 오늘 우리 삶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은 내 일생 뿐 아니라 영원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치관의 변질이다. 가치를 두어야 할 것에 가치를 두지 못하고,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될 것에 가치를 두고 산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삶에 기쁨과 행복이 사라지고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만이 있다.

 

  오늘 우리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왜 가장 행복해야 할 가정에 고통이 있나?
  왜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야 할 부부가 헤어지고 한을 품고 살아가는가?
  왜 꿈과 희망으로 살아야 할 자녀들이 절망과 원망 속에 살아가는가?

 

  바로 가정의 가치관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사랑과 우애가 가장 가치있어야 할 가정에 돈이 더 중요하고, 공부가 더 중요하고, 출세가 더 중요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이제는 가정의 아름다움도 찾아보기 힘들고, 인간관계의 아름다운 미덕도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 주님보다도 세상의 축복이 좋고, 물질과 명예가 더 좋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주님께 영광 돌리기보다는 주님의 도움으로 내 뜻을 이루고 복을 누리고자 함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15세기 이탈리아가 낳은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건축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일화이다. 그가 43세가 되던 해, 화가로서 완숙했을 때 이탈리아 밀란의 두도 빙코 공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의 모습을 그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빙코 공의 부탁을 받은 그는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완성했다. 중앙에 예수님께서 오른손에 잔을 들고 계셨고, 양쪽에는 제자들이 세 명씩, 세 명씩, 즉 예수님의 오른쪽에 제자 6명, 왼쪽에 제자 6명을 그려 놓았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으레 그렇듯이 그는 절친한 친구를 한 사람 불러서 그림을 보여주며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림을 본 친구는 깜짝 놀랐다. 최대의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수님 손에 들린 은잔이 어찌나 섬세한지 그 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느낀 바대로 다빈치에게 느낌을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붓을 들고 은잔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것이라도 중심이 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가장 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눈길을 끌면 그것은 우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신앙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주님의 뜻이 항상 내 뜻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인간은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산다. 시간도, 젊음도, 나아가서는 생명까지도 버리게 된다. 그래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느냐 이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인만의 분명한 가치관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된 가치관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가치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이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다. 오직 내 삶에 하나님만 있을 뿐이다.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때 100미터 세계최고기록 보유자인 에딕 리들이라는 영국 선수가 있었다. 그는 단연 금메달 우승후보였다. 100미터 경기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첫 예선 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바로 그날이 주일이기 때문에 에릭 리들은 100미터 예선 경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경기가 있는 7월 6일 주일에 스코츠 커크 장로교회에서 간증설교를 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국민과 언론은 일제히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비애국자, 반민족주의자, 옹졸한 그리스도인,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등등 갖은 말로 그를 비난했다. 그리고 영국 왕실에서조차 경기에 출전하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400미터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100미터 선수가 400미터 선수들과 함께 달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처음부터 100미터를 달리는 것처럼 총알같이 질주했다. 그 결과 당시 우승후보인 임바흐, 피치 등의 우승 후보를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총알처럼 질주할 때에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저렇게 뛰다간 심장 터져 죽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그는 경기를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이렇게 뛸 수가 있느냐?”고 물을 때에 이렇게 대답했다. “200미터는 제가 뛰고, 200미터는 하나님이 뛰어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한 분께 영광을 돌렸다.
 

  에릭 리들은 선수생활을 마치고는 일평생을 중국에서 보냈으며, 가난한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곳에서 생을 마쳤는데 후에 그를 기념하는 전기가 나왔다. 그것이 《날으는 영국인》(The Flying Scotsman)이다. 이것이 영화화되어 1982년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는데, 그 영화 제목이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나 사상가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뛰어난 목사나 신학자도 아니지만 그는 신앙인의 원칙을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산 사람이었다.”


  우리의 가치는 오직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 떠난 그 어떤 것도 다 무가치한 것이다. 나는 일평생 세상의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살지 않았다. 물질도, 명예도, 학식도 나에게는 별 가치가 없었다. 오직 내 삶의 가치관은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 안에 죽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나는 물질도, 시간도, 건강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쓰려고 애쓴다. 세상의 어떤 평가도, 인간의 어떤 칭찬도 나에게는 무의미하다. 오직 주님의 평가에 온 맘을 기울인다. 나는 내 자녀에게도 일평생 세상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자로 살도록 가르쳤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다. 잠시 후면 사라질 안개와 같은 세상의 헛된 것에 가치를 두면 안 된다. 영원히 영광스러운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야 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 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하나님 바로 섬기기 Ⅲ

 

"참 예배"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면 먼저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분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예배와 헌금과 기도가 잘못되어 있으면 다른 모든 신앙생활은 바로 될 수 없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 결과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인 것이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예배를 생활화하는 성도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설사 예배를 드리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한 예배를 드리는 성도를 보기가 어렵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존재로 만드셨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응답이요, 감사의 표현이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만큼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당신 평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한참 눈을 감고 회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 “전투가 치열하던 어떤 주일이었죠. 그 때 나는 아침에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최고로 행복한 순간은 바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이다. 인간의 행위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것이 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의 참다운 의미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예배란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이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능력과 지혜를 얻고 신령한 은사를 맛보게 된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나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예배는 나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의 행위이다. 이것이 온전한 예배이다. 복을 받기 위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참 예배가 아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셔야 한다.
 

  찬양을 드려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찬양을 해야 한다. 내 기분에 맞는 찬양, 내 소원만을 아뢰는 찬양, 특별히 세상 곡조에 맞춰 육신의 감정을 자극하는 찬양은 진정한 찬양이 아니다. 나는 요즘 새로운 찬양들을 보면서 ‘과연 이 찬양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곡조도 모두 인간들의 기분에 맞도록 바뀌어 가고 있다. 심지어는 팝송 가락으로, 랩 가락으로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런 곡들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어느 대학 채플에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 준비찬양 시간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난잡한 복장으로 한 무리의 워십팀이 나와서 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한 몸짓으로 몸을 흔들어대며 “자 여러분, 즐기세요, 마음껏 즐기세요”라고 외치며 세상 곡조에 맞춰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댔다.

 

  ‘이 시대의 선지자’라고 불렸던 A.W. 토저는 ‘연예 오락’이라는 큰 우상이 예배를 타락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말년에 “세상이 교회속으로 침투해 교회를 잔인하게 유린하는 것을 막지 못해 크리스천들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저는 《예배인가, 쇼인가!》라는 그의 저서에서 성장을 위해서 대중의 인기에 야합하고, 거대기업의 경영방식을 무차별적으로 차용하며,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방식을 예배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토저의 말대로 과연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그 무엇이 ‘예배’ 인지, 아니면 ‘쇼’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성도들이 쇼를 보기 위해서 교회에 왔다면 그들은 ‘더 좋은’ 설교와 예배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움직일 것이다. 토저는 말한다.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는 적극적인 행위가 예배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이 없는 예배를 싫어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웅장한 의식의 예배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과 정성이다. 이사야 1장 11절 이하를 보면,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 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 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 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 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 -14).

 

  하나님은 거짓된 예배를 미워하시고 진노하신다.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신학자 윌리엄 템플은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의식을 소생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로 마음을 풍성케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에 뜻을 바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삶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삶 가운데 참된 예배가 없기 때문이다. 참된 예배의 생활이 인생의 성공이요,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 꾸준하게 신앙이 성장하는 성도, 시험을 이기고 열매를 거두는 성도의 삶의 비결은 온전한 예배의 삶이다. 참된 예배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의 고백이요,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의 표현이다. 우리의 진실한 감사의 마음이 입술로 나와서 찬양이 되고, 헌금이 되고, 봉사가 된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세상의 높은 사람을 만나도 최고로 단정하게 몸가짐을 한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기가 찬다. 예배시간 내내 다리를 꼬고 있지 않나, 핸드폰을 쳐다보지를 않나, 졸지를 않나. 경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주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라고 하셨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요 4:23).

 

  ‘영’(in spirit)이라는 뜻은 비물질적인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드리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한 곳에 미친 사람을 혼을 다한다고 한다. 그 순간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결승점으로 달려가는 선수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려야 한다.
 

  ‘진리’(in truth)라는 뜻은 거짓과 반대되는 말이다. 예배에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의 예배는 너무나 거짓이 많다. 기도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과 나 사이 에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한다. 설교도 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이제는 옛 선지자들의 책망의 설교를 들을 수 없다. 사람의 기분에 맞추는 설교가 주를 이룬다. 이제는 설교를 통하여 십자가와 회개와 구원의 소리보다 세상의 축복을 빌어 주는 거짓 선지자 발람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진리를 듣기가 너무나 어려운 시대가 왔다.
 

  이 혼탁한 시대에 적어도 우리 교회만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초대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게만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온 맘을 다해 가르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은 예배를 드리는 자세가 다르다. 가장 깨끗한 복장으로, 가장 아름다운 자세로,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매일 예배를 드린다. 주일 예배를 위해서는 토요기도회로 주일을 준비한다. 매 예배시간 20분 전부터 온 맘으로 찬양하며 온전한 예배를 준비한다. 철저히 나를 죽이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닮아가려고 혼신을 다한다. 이 모습이 나의 자랑이고 기쁨이요, 20년이 넘도록 이 사역에 헌신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참된 예배를 통해 세상 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 그리고 죄와 세상을 이길 능력을 얻는다.
 

 

원처치 저자 이은태 목사

profile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 속에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다. 뉴질랜드 유학 중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개의 빌딩을 받고, 크리스천 영어학교를 세워 매년 200여 명의 기독청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 지원,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 노인 나눔센터 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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