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곡에서 말씀을 만나다 5 ] 나그네 (박목월)

가곡에서 말씀을 만나다
나그네 (박목월)
"세상의 환경이 변해도
주님의 손 꼭 잡고 동행하는 이 풍경만은 결코 변하지 말아야하는 나그네 삶입니다."
‘나그네(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바람이 있는 저녁에 달을 보고 있노라면, 달이 구름 사이를 바삐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The Wayfarer'에서는 이 모습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라고 정말이지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그런데 현실은 달이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구름이 바람에 밀려 저 멀리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눈이 착시 현상을 일으켜 구름은 멈추어 있고 달이 가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을 화면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배경들은 흘려보냅니다. 이렇게 시인도 나그네를 시/時/poem라는 공간에서 놓치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칩니다. 그래서 시인은 나그네는 멈춰 세우고 배경은 흘려보내게 됩니다.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라는 시구(詩句)가 바로 시인이 원했던 최상의 컷인 것입니다.
나그네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운명처럼 정처 없이 떠나 버리는 그 나그네를, 나도 운명처럼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나요? 내 운명인 그 나그네를 떠나보내고 후회의 나날을 보내야만 할까요?' 그는 채비를 하고 이미 저만치 떠나갔는데요.
'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요. 더 이상 망설일 필요 없이 나는 그 나그네와 길을 함께 가기위해 그동안 머물었던 내 삶의 자리를 과감히 버리고 그를 따라 나섭니다. 세상은 그를 나그네로 부르지만 이제 나에게 그는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닙니다.
이전에 나의 삶은 똑같은 환경, 똑같은 배경이었습니다. 가끔 지나가는 나그네의 등퇴장이 내 삶의 유일한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놀랍게도 배경은 매일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변함없이 나와 사랑하는 그(나그네)가 언제나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찍어둔 숱한 사진 뒤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네요. 강나루도 건넙니다. 밀밭길이 나오네요. 외줄기 300리 길도 걷습니다. 술이 익어가는 마을이 저만치 앞에 있는데 저녁노을이 붉게 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시간이 존재합니다. 크로노스/χρόνος와,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크로노스 ‘흘러가는 시간’을, 카이로스는 ‘결정적 시각’을 의미합니다. 크로노스란 과거에서 미래로 일정 속도와 방향으로 흐르는 기계적, 연속적 시간이지만, 카이로스란 결정적 순간이나 임팩트 있는 주관적 시간입니다. 요한복음은 크로노스로 사건을 배열하기보다는 카이로스로 배열했습니다.
크로노스는 세상의 시간표에 따라 가는 시간이요,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갑니다. 크로노스 즉 세상의 시간이란 정지된 환경과 배경에서 매일 동일한 아침과 저녁을 보내는 것입니다. 가끔 그분이 지나가실 때도 있었지만요. 반면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란 매일 환경은 새롭게 변화되지만, 그와 같이 걸어가는 동행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의 왕이신 예수께서 세상의 시간(크로노스)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으로 살아가신 여정을 밟아 보겠습니다. 나그네 예수님은 강나루를 건너고 밀밭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남도 300리 외줄기 길을 걷다가 노을이지는 때, 술 익는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몇 일째 성대한 혼인잔치가 있는 가나라는 시골 마을입니다.
두 카이로스
예수님과 다섯 제자와 어머니 마리아도 이 혼인 잔치에 있었습니다. 혼인 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쯤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가 끝나려면 한 주나 그래도 몇 일이라도 버텨야하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혼인잔치의 흥이 사라지고 기쁨은 곧 끝날 것 같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문제를 타계할 기발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반응에 항상 의아 했었습니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존칭하시고는 정중한 거절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아주 질 좋은 포도주를요. 이런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이 아주 많은 사건 중에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이 이야기를 선택하고 요한복음의 7개의 기적 중 처음 기적으로 배치한 것에는 깊은 의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을 하신 것으로 보아,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 얘기를 하시면서 예수님이 당연히 예측할 만한 어떤 의도를 같이 전달했을 겁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을 통해 예수께서 바로 메시아이신 것을 보여줘야 할 때가 왔다는 의도를 전달 한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대답 하신 것이었습니다. 반면 이 대답이 포도주 만드시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거절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와 비슷한 장면이 요한복음 7장에 한 번 더 나옵니다. 이 사건도 육신의 가족의 요청, ‘때’에 관하여 반응하심, 결국 요청을 이행 하신 것이 닮았습니다. 유대 사람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지니,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형님은 여기에서 떠나 유대로 가셔서, 거기에 있는 형님의 제자들도 형님이 하는 일을 보게 하십시오.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님이 이런 일을 하는 바에는,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예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의 때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요 7:2-6) 그러나 예수님의 형제들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간 뒤에, 아무도 모르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10절)
우리는 여기서 ‘내 때’와 ‘너희 때’를 주의 깊게 묵상해야 합니다. 원어에는 이 ‘때’라는 단어 둘 다 ‘카이로스’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때는 카이로스지만 ‘너희 때’는 사람의 때임이 분명한데 어찌 같은 카이로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지 당황스럽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의 친동생들이 예수님께 때가 되었다고 압력을 넣는데 이것이 어떻게 ‘카이로스’일까요?"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처럼, 예수님과 친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너무 쉽게 넘어가는 선이 바로 이 ‘너희 때’ 카이로스입니다. "예수님 지금 예수님을 증명해 주세요. 지금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 때’라구요.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19’로 2차 대전만큼 심각하다고 말하는데, 당신의 교회를 통해 얼른 백신을 내려 주시든지, 담임 목사가 기도하면 확진 환자가 모두 털고 일어나는 기적을 지금 보여주시옵소서!!!"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예찬공동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 ‘너희에게는 아무 때나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세상이 너희는 미워할 수 없지만 나는 미워하고 있다. 세상이 하는 짓이 악해서 내가 그것을 들추어내기 때문이다."(요7: 6,7)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지금 떡을 만들어 먹으라!" 금식하여 몹시도 배가고픈 바로 지금!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강력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하셨습니다. 말씀이 사라지고 말만 무성한 세상을 향해 예수께서 강하게 질타하시는 오늘의 말씀 아닌가요? 길어만 가는 전쟁으로 경제 지표 폭락, 죽음의 공포 등으로 고통당하는 세상에 우리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요? ‘예수님께 지금이 그때입니다. 당신을 보여주세요. 세상에 드러내실 때가 지금입니다.’ 이렇게 소리치며 예수님께 압력을 넣는 것일까요?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께서 작금의 이 세상에 가장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적의 떡이 아니라 말씀이다! 백신이 아니라 말씀이다!’ 여러분은 이 음성이 들리시나요?
영적 거리 좁히기
‘코로나 바이러스19’는 지구촌에 엄청난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 새롭게 상식이 된 사회의 규범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거리’입니다. 대략 살펴보면 1. 마스크 착용, 손씻기 2. 타인과의 만남 자제 3. 다중이용시설 이용 자제 4. 해외방문 여행 자제 5. 공공사용물 소독 6. 타인과 2m 떨어지기 악수 자제 등입니다.
이탈리아의 수로에 물고기 때가 돌아오고, 심각한 대기오염지역에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때 카이로스가 만들어놓은 무서운 행태가 단 하나, 바이러스로 저지를 당하자 자연계가 회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줄만 알았던 일상이 실상은 기적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있었던 큰 교통사고에서 내가 목숨을 건진 것은 기적인데, 매일 매일 차를 타고 다녀도 어제 말고는 단 한 번의 교통사고도 당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겁니까? 생각해보면 정말 놀랍고, 정말 대단한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친 듯이 달려가기만 하면서 온 지구촌을 매일 과로하게 만들었던 사람의 때 카이로스가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에 의해 잠시 멈추게 되면서 자연계의 모습이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결국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영적 거리 좁히기’입니다. ‘사회적 악수’ 대신 예수님의 손을 잡는 일입니다. 그동안 외면했던 그분 손의 못 자국 보며 미안해하고 눈물 훔칠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때 카이로스는 지금 내가 기도드리는 그 자리에 보란 듯이 내리지는 백신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때는 십자가였습니다. 술 익는 마을 가나가 아니라, 기름 짜는 마을 겟세마네였습니다. 화려한 도시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가 아니라, 골고다 언덕 십자가 나무 끝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오신 나그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우리들은 나그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늘의 사명을 이루는 그 자리에 함께 서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진실된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순종인 것입니다.
하늘 나그네의 지구촌 여행은 세상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깨워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를 알고 따른다고 하는 가족과 제자들에 의해 계속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마치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며 유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한다면서도 내 익숙한 배경에 머물며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마는 정착민입니까? 아니면 배경을 흘려보내고 예수님이 내 생의 화면에 가득찬 나그네입니까?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오늘 예배를 드립니까? 거류민 생활 잘 할 수 있는 은총을 받기 위한 예배입니까? 아니면 나그네의 삶에서 더 주님과 가까이 있는 행복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배입니까?
주님의 못 박히신 손은 가나의 혼인잔치와 예루살렘 성전꼭대기가 아니라 겟세마네와 골고다로 이어진 카이로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세상의 환경이 변해도 주님의 손 꼭 잡고 동행하는 이 풍경만은 결코 변하지 말아야하는 나그네 삶입니다. 그러니 크리스천에게서 가장 위험한 것은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을 놓치는 것입니다. 변하는 환경에 놀라 주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까? 그렇다면 세상이 흔들린다고 따라서 부화뇌동하지 않아야합니다. 만약 세상을 따라하고 세상보다 더 흥분한다면 당신은 예수님의 못 박히신 손을 놓친 것입니다. 온갖 유혹에서도 주님은 나를 위하여 주님의 때를 정확히 맞추셔서 사랑의 흔적, 죽음으로 얻으신 사랑의 흔적을 그 손에 지니고 계십니다. 내가 세상에서 두려움에 떤다면 나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신 못 박히신 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내 배경이 두렵게 변한다 해도 그 손 못 자국 만지며 나그네의 삶을 유쾌하게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담고 있으며, 원처치의 신학적, 정치적 등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원처치 저자 박성열 목사
박성열 목사는 뉴질랜드 남십자성어린이예술단 음악감독으로 8년 간 봉사했으며, 뉴질랜드 시온합창단(성인혼성) 지휘자로 또 8년 간 봉사했다. 또 뉴질랜드 오페라단 단원으로 12년 간 활동했다. 오클랜드 장로합창단 지휘자로 13년 째 봉사하였으며, 현재는 오클랜드 오라토리오코랄 운영위원장으로 13년 째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뉴질랜드 예수찬양교회 시니어 목사로 20년 째 사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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