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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예배자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역할을 아는 중보기도의 사람

by 원처치 posted Aug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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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가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하나의 옛 이야기처럼 생각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돌아보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여러 가지의 모습에서 현실로 나타나기에 한편으로는 두려움마저 생긴다. 아브라함 시대 당시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19장 초반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성경은 극심한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이 하나님의 면전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었다고 증언한다. 결국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 위해 소돔성에 천사들을 보내시고, 천사들은 저녁 때에 소돔성에 도착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자신의 집 안으로 영접하는데, 그 후에 놀라운 상황이 발생한다. 즉 천사들이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소돔 성에 있는 각 마을에서,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든 남자가 롯의 집에 몰려와서 그의 집을 에워싸고 롯에게 소리치며, 그 밤에 도착한 사람들을 내놓으라고 시위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황당한 이유가 마을의 모든 남자들이 그들을 ‘상관’하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상관하다’는 ‘성관계를 갖는다’는 뜻으로, 동성애를 의미하는 말이다. 얼마나 이 동성애가 만연해 있었는지, 저녁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온 도시에 소문이 난 것인데, 학자들의 자료를 보면 이 시대는 족장시대(청동기시대 초기)로 횃불을 밝히던 시대이기에, 해 질 무렵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대략 두어 시간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두어 시간 만에 그 도시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고, 남녀노소가 아닌 노소(젊은이와 노인)를 막론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남자들이 새로운 남자들을 상관하고자 롯의 집 앞으로 몰려온 것이다. 그 의미는 도시에 새로운 남자들이 들어왔다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에는 빅뉴스가 되어 퍼질 정도로 그 성의 남자들끼리는 이미 다 상관했다는 의미이고, 조금 더 깊이 보자면 그룹 섹스를 공개적으로 떠벌릴 정도로 타락했다는 놀랍고도 두려운 그 당시의 현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나아가 당황한 롯이 나그네(하나님의 천사들)를 보호하기 위해 아직 처녀인 자신의 두 딸을 내어주겠다는, 부모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비상식적인 말을 해도, 그들은 이에 반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은, 소돔과 고모라의 성적인 한계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더욱 경악스럽게 느껴진다. 놀랍게 문명이 발달했던 도시, 롯 뿐만 아니라, 그 누가 봐도 풍요로움과 번영을 가져다줄 것 같은 매혹적인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앞에 풍전등화 같은 모습이었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의 한 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기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해 오는 것을 느낀다.

 

7~8년 전에 동성결혼이 합법이라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에 대해 존 파이퍼 목사는 ‘새로운 재앙은 동성애가 아니라 그것을 국가가 제도와 합법화한다는 것이다’라고 성토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큰 도시들에서 동성결혼의 합법화 이후에, 소아성애자들(Pedophilia)이 어린아이들을 향한 자기들의 성적 욕망이 동성연애자와 다름없는 또 하나의 ‘성적 취향’이라고 주장하는 발의안이 올라왔고 백악관에서는 이 법안을 동의하며 통과시켰다고 하니, 참으로 두려운 이 시대 현실의 단면이 아닌가 싶다. 진리를 가장하여 개인이나 소속 공동체의 탐욕을 좇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풍요로움과 번성함을 줄 것 같은, 자신들의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을 망설임 없이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예배자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신앙의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심각하고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멸망해가는 도시의 입구에 앉아 있는 롯(창19:1)이 있었다면, 광야의 상수리나무 곁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다.(창18: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진노를 눈앞에 두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가고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을 영접하여 대접하고 대화를 한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간절함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이다. 죄악이 가득한 땅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우리 믿는 자가 행해야 할 의(義)와 공도(公道)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즉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며 죄악으로 가득한 땅이 회개하고 의와 공도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중보하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 이유이고, 또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위해 부름 받은 이유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유황과 불을 멸망이 임박한 땅에 떨어뜨리기 전에 그들을 위해 중보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마치 흥정하듯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께 간청하는 아브라함의 말을 기쁘게 받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너져가고 멸망해가는 땅을 바라보며, 그들을 향한 애타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들의 멸망을 막기 위해 중보하는 중재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바로 그것이 믿음의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역할임을 가슴에 새기고, 이 사명을 지닌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사야 59장 16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멸망의 길로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그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등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세상 속에 있는 교회 안에, 믿음의 사람들이나 혹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하나님을 찾으며 저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없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신 것이다.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며 ‘이 세상이 왜 이렇게 타락하고, 불의가 가득한 세상이 되었나요? 우리나라가, 혹은 우리 가정이 왜 이렇게 힘들게 되었나요?’라고 많은 사람들이 토로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토로에 대해 오히려 ‘세상이 불의하고 나라와 가정이 힘든 것을 아는 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 중에 중재하는 사람이 없는지 그것이 이상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삶을 좇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며,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예배자의 삶이고, 또한 믿음의 삶이며 그리스도인의 신분이고 역할이다. 이 싸움을 우리는 ‘신앙생활’ 혹은 ‘영적 싸움’이라고 부르는데, 결국 그리스도인의 신분으로 산다는 것은 이 싸움을 평생하는 것이고, 이 싸움을 선택한 사람이 바로 예배자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대화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 그렇듯이 예배자는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왜 자신에게 그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도시가 멸망하고 있을 때 롯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지만, 아브라함은 롯과 소돔과 고모라를 지켜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기도하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시며 당신의 마음에 새기고 롯과 그의 가정을 구원해 주셨다.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선조가 그리하였듯이 우리 세대에도 끊임없이 소돔과 고모라 같은 상황이 나타나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중보하고 기도하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하는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자들이 나타나기를 중보해야 한다. 그러한 우리의 믿음의 발걸음은 분명히 다음 세대에게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그 역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며, 그들도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의 믿음의 중재자가 되어 구원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을 믿는다.

 

원처치 저자 김태원 목사

profile

저자 김태원 목사는 대전 침례신학대학교 및 대전 침례신학대원(M. Div) 졸업했다. 청년 사역자 모임에서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뉴질랜드 에덴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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