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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인격표현

by 원처치 posted Apr 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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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인격표현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기쁨’이지 ‘재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커스 예배의 설교자인 김남국 목사님은 세상에서는 ‘성공’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일지 모르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공’은 맞지 않은 표현이고, ‘성장’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진행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배를 드리는 모든 예배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그들의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예배가 아니라, 그들이게 필요한 것을 제시하고 그것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도록 인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우리의 위치는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쁨과 은혜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예배방식이 언제까지 다음 세대에게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예배’로 인식되어져야 할 것인가? 언제까지 온전한 예배에 대한 핵심(혹은 성공)을 숫자적인 부흥 같은 것을 통해서 인식을 시켜줄 것인가? 우리는 진정한 예배의 핵심은 구약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셨는가 아닌가’임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러 나온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모습이지만, 자칫 주일에 교회에 나온 것으로 온전히 예배를 드렸다고 오해할 수 있는 문화와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예배의 본질과 중요성을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다음 세대 예배자들을 위한 성경적 가르침의 삶의 예배는 그들이 서 있는 세상의 현실, 삶의 정황 속에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에서만의 빛과 소금이 아닌, 세상 속에서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이러한 실천을 돕기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의 삶을 보여주는 신앙의 어른으로서의 분명한 역할이다.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소외되고 외톨이였던 그 여인의 고백은 ‘주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사마리아 성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너무도 놀라운 고백을 하는데, 바로 “내가 행한 것을 말한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니겠는가?”라는 고백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 여인이 살아온 삶의 모습은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였고, 아픔과 슬픔이 가득한 삶이었다. 그 이유로 인해 아무도 없는 대낮에 뜨거운 햇살을 맞아가며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물을 길러 간 것이었는데, 거기서 주님과 깊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더이상 부끄러움에 갇혀 있는 삶이 아닌, 그녀와 비슷한 현실에 있는 사마리아인들에게 “당신들도 내가 만난 그분을 만나보라”고 자신을 변화시킨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요4:21-24 참조) 삶의 예배는 연극을 구경하는 수동적인 회중의 모습이 아니다. 느낌과 상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 만나는 것이다. 말씀 앞에 자신과 자신이 삶아온 삶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돌아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 예배를 어디에서 드려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예배의 중요한 본질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먼저 예배 본질을 되짚어보며, 우리의 예배가 삶의 예배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예배의 본질을 배우고 삶의 예배를 통해 예배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을 믿는다.

 

점점 발전하는 예배문화 속에서,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이 있는 예배를 위한 수고와 노력이다. 은혜로운 예배를 위한 성공비결이 훌륭한 성가대나 잘 갖추어진 예배프로그램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양한 악기를 배제하고 조용히 피아노나 오르간 등으로 드리는 예배만이 진정한 예배도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예배음악에 밴드를 구성하여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저들 세대가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께 반응하는 한 방법이듯이, 어른세대가 클래식과 관현악 등으로 형식을 갖추어 예배를 드림은 어른세대의 하나님을 향한 하나의 고백과 반응인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예배 가운데 세대별로 다르게 반응하는 특징에 대해서 논의와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는데, 문명과 문화의 발전과 통합(혹은 다문화)속에서 예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되어야 하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특별히 이 부분은 젊은 세대를 위해서도 더욱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데, 바로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기쁨’이지 ‘재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를 떠나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교회가 흥미와 재미로 저들을 붙잡으려는 노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을 위한 마음으로 재미와 흥미를 더해주려는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저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다음 세대의 삶의 예배’를 나누었는데, 어떤 분께서 삶의 예배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삶의 예배의 시작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묵상하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자신의 통찰에서 시작된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자신의 저서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에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인격인가?’를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그 메시지의 중요한 포인트는 신앙과 삶이 분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의 삶이 변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며 돌아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필자는 ‘삶의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인격표현(혹은 삶의 자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이해하고, 예배와 믿음의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만남이 깊어질수록 인격의 깊이도 깊어진다. 때때로 신앙인인 우리가 실수하는 것 중의 하나는 ‘예배’ 또는 ‘예배자’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적용의 범위를, 예배시간이나 교회라는 공간적 개념의 용어로 사용하고 이해하여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예배는 특정한 장소적용에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머무는 다양한 삶의 자리, 혹은 신학자 칼 바르트가 표현한 ‘삶의 정황’(삶의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부르는데,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인간의 감성 혹은 느낌이나 감각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한때는 절대적으로 인정받았던 종교를 통해 얻고자 했으나 종교가 무너지고(중세시대), 그 후에는 놀랍게 발전된 과학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책임져 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산업혁명 이후), 1.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과학은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적 시간을 지나오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기대가 무너진 공허한 마음과 삶의 행복을 감성이나 느낌 등에서 찾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예배와 예배자들, 특별히 젊은 층의 예배자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몇 년 전에 어느 집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한 청년이 다가와서 “오늘 예배는 정말 은혜로운 예배였어요!”라고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를 물어보았는데, 그의 대답은 예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즉 물 흐르듯이 잘 진행된 예배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설교시간과, 특송조차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어서 한층 더 좋은 분위기의 예배였다는 것이다. 사실 그 청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그의 대답에는 예배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기에 마음 한켠에서 느껴지는 씁쓸함과 서글픈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원처치 저자 김태원 목사

profile

저자 김태원 목사는 대전 침례신학대학교 및 대전 침례신학대원(M. Div) 졸업했다. 청년 사역자 모임에서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뉴질랜드 에덴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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