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교회 오클랜드 서부교회
이른비와 늦은비의 기적

영원으로 가는 길 Ⅲ, Ⅳ

by AIC posted Apr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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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으로 가는 길 Ⅲ

 

"후회 없는 삶"

 

"하나님의 알씀 안에서 살아가는 삶"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후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뒤돌아보면 잘한 일은 별로 없고 후회되는 일만 가슴에 남아 있다. 귀한 시간에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 후회해서는 안 될 것을 한 후회, 때로는 능력이 없어서 지혜가 없어서 잘못한 일들로 일평생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인생들이 많다. 오늘 하루의 후회부터 1년, 10년, 한 평생, 아니 영원을 후회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미용실을 잘못 선택하면 최소 한 달 후회,핸드폰을 잘 못 사면 최소 3년 후회, 냉장고를 잘못 사면 최소 10년 후회, 배우자를 잘못 선택하면 일평생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신앙을 잘못 선택하면 영원히 후회하게 된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바른 정신으로 바른 목적을 바라보지 못하고 산다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종말이 바로 눈앞에 닥칠 것이다. 성경은 세월이 날아간다고 하였다. 우리 선조들도 인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했다.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가 꿈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미국의 어느 연구소에서 인생 70년을 분석하여 통계를 내놓은 적이 있다. 잠자는 데 24년, 일하는 데 11년, 오락하는 데 8년, 기다리는 데 6년, 걷는 데 6년, 모양내는 데 6년, 책을 읽는 데 3년, 대화하는 데 3년, TV 보는 데 6-7년, 그리고 교회 가는 데 6개월을 사용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내 생에 주어진 시간들은 하나님이 내게 사명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의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한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앱 5:15-16).
 

  성경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이다. '크로노스’는 시계와 달력이 말해 주는 일반적 시간이다. 1분 60초,1년 12개월로 묶인 시간,즉 지구의 자전에 따른 시간이다. 그러나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시간이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바로 부활의 시간이요, 구원의 시간이요, 죄사함의 시간이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의 시간이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나의 시간(크로노스)을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으로 바꾸는 것이고,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영원을 향하여 살아 가는 삶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시간을 넘어서 이미 이 땅에서 영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매여 살 필요도 없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삶은 바로 이 영원지향적, 본향지향적인 카이로스 시간 속의 삶이 되어야 한다. 영원을 생각하지 않는 삶은 후회 할 수밖에 없는 삶이다. 이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기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살았을지라도 영원이 없는 삶은 비참할 수 밖에 없다.
 

  대표적 무신론자인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1694-1778)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글을 많이 썼다. 인쇄소를 세워서 무신론에 대한 책을 펴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가는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불신앙에 빠진 시민들은 그의 무신론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신이 난 그는 파리의 대로에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십시오!" 그렇지만 그도 나이의 벽을 뚫지 못했다. 점점 노인이 되어 갔고, 결국 병들어 죽음 앞에 이르게 되었다. 원기 왕성할 때 확신에 찼던 무신론자의 마지막 고백은 이 한마디였다. "아, 나는 이제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

 

  세월은 흘러 볼테르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가 호언장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신론 책을 펴내던 그의 인쇄기는 성경을 인쇄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의 저택은 성경 보관 창고로 사용되었다. 기회는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순간도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이 시간이 지나가지만 많은 사람이 이 시간을 끝으로 이 땅의 생을 마감하고 있다.
 

  몇 년 전 우리 학교에 베트남에서 한 학생이 유학을 왔다. 베트남에서 아주 부유한 가정의 귀한 아들이었고 귀공자처럼 생긴 21세의 청년이었다. 우리는 온 맘을 다하여 이 청년에게 사랑을 베풀며 복음을 전했다. 우리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고마웠는지 몇 차례 예배에 참석을 했다. 그러나 끝까지 복음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영어학교로 옮겨 버렸다. 그리고 매일 아침 힘들게 버스를 타고 그 먼 길을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이 머물고 있던 친척집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그 청년의 장례예배를 드려 달라는 것이었다. 며칠 전까지도 놀러 오곤 했던 청년의 장례예배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침에 그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반대 차선 에서 달리던 트럭의 바퀴가 빠져 날아와 이 청년의 자리를 강타했다는 것이다. 청년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로서 중앙 분리대가 굉장히 높게 세워져 있다. 트럭 바퀴가 그곳을 넘어왔다는 것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시간을 바꿀 자가 아무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반드시 서게 된다. 바로 그날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는 자색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다가 지옥에 가게 된다. 음부의 고통 중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고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청을 한다. 그러나 그 간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형제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으나 그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비록 이 땅에서는 원없이 살았으나 그에게는 이제 영원한 음부의 고통 속에서 처절한 후회만 남았다. 어리석은 부자는 이 땅의 시간만을 생각했지, 영원을 보지 못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라 하면서도 천국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세상의 축복을 받기 위해 신앙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다. 이 땅에 우리의 업적을 쌓으면 쌓을수록 후회의 분량은 커져만 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기회를 주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외면하고 산다. 영원을 사모하고 살아야 할 그 순간에 이 땅의 쾌락만을 좇아 사는 사람이 많다. 영원을 준비하라고 주신 시간을 나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사용하고, 하늘의 상급을 쌓으라고 주신 물질을 내 육신의 안락만을 위해 사용하는 자가 많다.
 

  어느 복음주의자의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세고 계실 때 나는 돈을 세었고,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것을 세고 계실 때 나는 얻은 것을 세었다. 내가 곳간에 쌓아 둔 물건들의 값어치를 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선 나의 상처를 감싸 주셨고, 내가 지위를 구하고 명예에 눈이 어두웠을 때 하나님께선 나의 무릎 위에 놓인 시간들을 세며 눈물 지으셨다. 어느날 무덤가에 서기까지 나는 그토록 얻으려고 했던 것들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지 못하였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릴 때까지 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음이 가장 부유한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환경을 주신다. 때로는 평안도 주시고, 때로는 고난의 시간도 주신다. 특별히 우리에게 고난의 시간들을 주시는 이유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다. 내 삶에 평안만 있다면 영원을 사모할 사람이 없다. 고난이 있어야 비로소 영원을 사모하게 된다. 하나님은 슬픔도 아픔도 고난도 영원을 위하여 모두 아름답게 사용하신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환경의 궁극적 목적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하심이다. 세상의 일들은 별로 후회할 가치가 없다. 우리에게 영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고 가슴치며 후회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후회함이 없는 자가 되도록 늘 위의 것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1-3).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세상 것들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요, 우리를 멸망케하는 것들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 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업음이라"(롬 8:7).
 

  우리는 늘 위의 것, 천국의 것, 영원한 것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의 것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슬피 울며 후회할 그날이 반드시 온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6-17).
 

  오래전 미국 시애틀에 집회를 간 적이 있다.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인트헬레나 산이 있다. 시간이 나서 그곳을 방문해 보았다. 그 산은 1980년에 큰 화산 폭발이 있어 화산재가 전 도시를 덮었었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바위도 재가 되어 있다.

 

  당시 그곳에 한 교포가 처음 이민와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철저히 신앙생활을 하며 살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좋은 모텔을 구입하게 되었다. 오랜 고생 끝에 성공하여 뭇사람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을 때 그는 세상의 쾌락에 빠져 하나님과 멀어졌다. 그때 세인트헬레나 산에 화산 폭발이 있었고, 15년 동안 고생해서 모아 둔 재산이 한순간에 모두 재가 되어 버렸다. 보험도 되지 않고, 거지가 되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떠난 삶을 후회하며 재 한 박스를 가지고 로스앤젤레스로 왔다. 그는 집 응접실에 재를 놔두고 다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리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늘 그것을 바라보았다. 세상 것은 재밖에 없음을 깊이 깨닫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다시 기반을 잡고 살았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시 144: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4).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재와 같다. 이제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영원히 후회가 없는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말씀 안에 참 기쁨과 행복과 영원한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뱀전 1:24-25).

 

 

 

 

 

영원으로 가는 길 Ⅳ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으로"


  하나님께서는 일생이란 제한된 시간을 허락하셨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 생애를 어떻게 살다 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이 땅의 삶이 바로 영생을 위한 준비기간이기 때문이다. 빌딩의 기초가 잘못되면 무너지듯이 영생의 기초가 되는 이 땅의 삶이 잘못되면 영원을 망치게 된다.


  아름다운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것이다. 때때로 보면 좋은 목적을 가지고 평생 아름답게 살아 왔던 사람도 마지막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치욕적인 삶으로 끝내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마지막 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일평생 악을 행하고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아름다운 종말을 만들 수는 없다. 하루하루의 아름다움이 쌓여서 일 년이 아름다워지고, 한 해 한 해의 아름다움이 쌓여서 아름다운 종말을 만드는 것이다.


  리더십 동기 연구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빈 S. 샤르마라고 하는 분이 있다. 그가 쓴《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라는 책이 있다. 책 속에는 성공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백 한 가지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너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은 기뻐했단다. 그런데 네가 죽을 때는 많은 사람이 울겠지만 그때 네 자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의 진정한 슬픔 속에 죽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자신이 진정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하직하는 것은 더 쉽지 않다. 마지막 시간에 참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살다 간 사람이 바로 바울 사도이다. 그는 죽음의 순간을 늘 소망하고 그 순간을 위해 일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디모데후서 4장 6절에 임종을 맞이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그는 하나님의 정하신 기약이 있다는 것을 늘 깨닫고 살아왔다. 인생의 시작도 하나님으로부터이며, 마지막도 하나님의 정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때로는 아주 짧을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제한된 삶을 두려움으로 경건하게 지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돌아보며 너무나 감격해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우리는 일평생 무언가를 위해 처절하게 싸우며 살고 있다. 물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성공을 위해 죽음의 순간도 망각한 채 죽기 살기로 달려가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순간부터 일평생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학식도, 명예도 모두 배설물처럼 버렸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만을 위해서 선한 싸움을 싸워 왔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향한 믿음을 지켰다. 세상의 출세와 안위를 위하여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었다. 오늘 우리는 조그마한 어려움이 오면 너무나 쉽게 믿음을 저버린다. 몇 푼의 돈을 위하여 신앙양심도 팔아먹는다.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뉴질랜드 땅에서 교육선교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공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초창기 믿지 않는 교직원들이 학교에서 기독교를 강요한다고 교육청에 투서를 두 번이나 넣었다. 학교를 폐쇄시키고 나를 법정에 세우겠다고 이를 갈았다. 두 번의 특별감사도 받았다. 지금까지도 나의 믿음을 파괴하려는 악령의 역사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때로는 그 공격이 너무나 두렵고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바울은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생각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의 삶의 목적이 그리스도요, 삶의 이유도 그리스도였다. 아니, 삶 그 자체가 그리스도였다. 이제 달려갈 길을 마치고 하나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깊은 감격에 젖어 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이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내 삶에 많은 실수와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 삶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 은혜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고 싶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원처치 저자 이은태 목사

profile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 속에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다. 뉴질랜드 유학 중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개의 빌딩을 받고, 크리스천 영어학교를 세워 매년 200여 명의 기독청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 지원,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 노인 나눔센터 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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