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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코드 원’, 나의 하나님 Ⅳ

by AIC posted Jun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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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


"나의 ‘코드 원’, 나의 하나님"

 

 

군법회의
—“코드 원, 코드 원”


 박 병장의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던 6월 25일. 군의관과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교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대위는 일을 마친 후 퇴근하고 나 혼자 구급차를 몰고 공군본부로 돌아가는데, 여의도로 가는 아현동 고가도로 밑이 꽉 막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녁먹을 시간에 맞춰 들어가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반대편 신호등이 빨간색인 것을 확인한 후 사이렌을 켜고 중앙선을 넘어 앞을 향해 달렸다. 일반적으로 구급차가 사이렌을 켜고 역주행을 하면 반대편에서 오던 차들이 알아서 비켜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한 무리의 차량이 방향도 바꾸지 않고 오히려 헤드라이트를 켜며 나에게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군대 구급차에게 비키라고 하는 그 차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속력을 냈더니 그 차가 결국 방향을 바꿔서 내 옆을 쓱 지나갔다.

 

 차량을 보니 당시 장관급들이 타고 다니던 ‘푸조’라는 차였다. 그 차를 따라서 수십 대의 검은 외제차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그날은 6.25기념일이었다. 아마도 국회의사당에서 나오는 차들인 듯했다. ‘국회의원들이 무슨 행사를 하고 올라오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검은 외제차가 줄지어 가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좀 찝찝했다.

 

 아현동 고가도로 밑 질주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시간 내에 부대에 도착해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헌병대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당장 구급차를 끌고 정문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수십 대의 경찰차와 경찰 오토바이, 무전을 치는 경찰관들이 보였다. 영화에서 범인을 포위할 때나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내가 나타나자 수많은 경찰들이 나를 주시했고,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어느 길로 오셨습니까?”


 나는 혜화동에서부터 온 길을 쭉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무전기를 뽑아 들고 무전을 주고받았다.


 “코드 원, 코드 원, 용의자 잡았습니다.”
 “환자의 탑승 여부, 그리고 환자의 상태 및 관등 성명을 보고하라, 오버."

 

 무전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위압적이었다. 나 혼자였는데, 환자라니 무슨 말이지? 용의자는 뭐고 코드 원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그 차가 누구 차인지 몰랐습니까?”


 그 사람이 내게 물었다. 아마도 고가도로 밑에서 보았던 검은 외제차를 말하는 것 같았다.


 “…….”
 “각하 차였습니다.”


 세상에, 각하라니! 각하라면 대통령이 아닌가! 그 많은 검은 차 중 하나에 대통령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무전기에 대고 말하던 ‘코드 원’은 대통령을 의미했다. 그런데 나는 뭣도 모르고 대통령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한 것이었다.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곧바로 ‘삼청교육대’로 보내지던 살벌했던 시기, 대통령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절이었다. 아현동 고가도로 밑 광란의 질주는 갑자기 내 목숨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 탄 차는 비공식 행사 때문에 일반 차량들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웬 구급차가 나타나 돌진해 왔다. 앞에서 달려오는 구급차를 비켜 세우려다 실패한 경호차가 바로 무전으로 연락해서 곳곳에 숨어 경비하던 경찰들에게 나를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린 것이다. 

 

 ‘대통령 암살 음모죄.’ 법이 없던 시절, 그게 바로 내 죄명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바로 연락이 오는 바람에 공군 전체가 다 뒤집혔다. 나는 체포되자마자 헌병 수사대로 끌려가 바로 현장 검증을 했다. 그러고는 밤새도록 슬리퍼로 두들겨 맞아 가며 사건의 경위에 대한 수사를 받아야 했다.

 

 “외국에는 구급차를 가장한 암살단이 많단 말이야. 그러니 각하께서 얼마나 놀라셨겠냐!”

 

 충성스러운 헌병대 조사관이 각하의 안위를 염려하면서 나를 취조했다. 다음 날 나는 일주일만 있어도 사람이 이상하게 변한다는 군기교육대로 보내졌다. 군법회의가 열리는 동안 나는 군기교육대에서 벌을 받아야 했다. 내가 연루된 사건은 참모총장이 보고하고 공군 전체가 다 뒤집혔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법이었던 시절, 우상과도 같던 대통령의 안전을 위협했으니 군기교육대에서 온전히 살아 나오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군기교육대에는 문제 병사들을 다루는 담당 중사가 있었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데 내가 들어갔을 때 다행히도 그 중사가 없었다. 바로 전날,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나에게 징벌을 가해야 할 사람이 사라진 그곳에서 나는 일주일 동안 기도만 했다.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정리해 놓으셨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었다. 

 

항공대학 학군단 발령

—“영창에 가더라도 주일 성수만은”


 너무 큰 사건이라 앞날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었다. 어쩌면 영창에 간 다음 백령도 같은 최전방에 보내질 수도 있었다. 나는 주님 앞에 두 가지 제목을 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어느 곳이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보내 주세요. 그리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공군운전병으로 지원했으니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 주세요.”


 군기 교육대에서 일주일 동안 간절히 기도했다. 군법회의에서 나는 영창 15일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나를 감독했던 수송대 윤 상사라는 분이 나를 영창에 보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는 수송대 감독관인 백사에게 와서 나를 적극 변호했다. 잘못이라고는 급하게 군대에 들어와야 해서 차선을 변경한 것 뿐인데, 대한민국 어느 법이 그걸로 영창을 15일이나 살게 하냐며, 내가 영창에 가면 자신이 옷을 벗겠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자기가 나를 다른 부대에 보낼 테니 영창에 보내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의 인품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기 위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시고 여러 사람들을 통해 나를 돕게 하신 것이 분명하다.

 

 백사의 방에서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백사는 언성을 높이며 안 된다는 대답만 반복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30여 분 후에 중위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백사보다 지위가 높은 중위가 운전병 한 사람만 바꿔 달라고 애원했다. 전날 항공대학 공군학군단 단장의 운전병이 밤새 술을 마신 후 운전을 해서 차가 인도로 올라가 버리는 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안 대령이 당장 운전병을 바꾸라고 했다는 것이다. 중위는 운전병을 달라고 사정하고 백사는 안 된다며 다퉜다. 그때 중위가 감독관실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다짜고짜 물었다.

 

 “너, 운전병이냐?”
 “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이야?”
 “네. 크리스천입니다.”
 “이야, 네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 주신 운전병이다!”


 그러자 듣고 있던 백사가 한마디 했다.

 

 “걔 지금 영창 가려고 대기 중인데 데려가긴 어딜 데려가?”
 “영창이고 뭐고 난 지금 얘를 데려가야겠소.”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거기에 대꾸하는 백사의 대답이 더 놀라웠다.


 “데려가고 싶으면 데려가든지.”


 당장 영창에 가야 할 내가 공군에서 가장 가기 어려운, 유일한 학군단인 항공대학으로 가게 되다니.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그날이 7월 1일이라는 것이었다. 박 병장이 제대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내가 항공대학으로 가려고 짐을 챙기러 내무반에 돌아갔을 때, 두 일병은 눈에 불을 켠 채 이를 갈고 있었다. 박 병장도 제대했겠다, 공군 전체를 다 뒤집은 사고까지 쳤으니 가만 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별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학군단 단장이 타고 다니는 최고급 승용차인 포니2를 타고 등장해 내무반에 들어가 더플백만 챙겨서 나와 버렸다.

 

 감사하게도 내가 모시게 된 학군단 단장님은 교회 집사님이었다. 하나님은 조그만 믿음을 지킨 나에게 어마어마한 선물들을 허락해 주셨다. 사병이 부대 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한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제대할 때까지 집에서 출퇴근하게 해주셨다. 당시 군대에서는 기름을 절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덕분에 나는 경기도 수색에 있는 항공대학에서 단장님 댁인 반포까지 운전한 후 차는 거기 세워 놓고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었다.

 

 학군단 단장의 운전병으로 일하면서 매일 아침 나는 너무나 황홀한 순간을 맞았다. 차를 몰고 항공대학 학군단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군인들이 도열해 있다가 경례를 시작했다. 단장님은 내 뒤에 앉아 있으니 내가 그 경례를 가장 먼저 받는 셈이었다.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차에서 내리면 방위병들이 차려 주는 아침밥을 먹고, 하루 종일 영어 공부를 하며 지냈다.

 

 사실 나는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무기고 한쪽에 있는 책상에 앉아서 신나게 공부했다. 그 모습을 본 단장님은 행정 담당 장교에게 장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내 책상을 만들어 주라고 지시해 주셨다. 일개 사병이 장교들 틈에서 공부를 하다니! 심지어 장교들은 그 추운 겨울에 군사훈련을 시킨다고 난로에 손 한번 쬔 다음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나는 하루 종일 난로 옆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서울 시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려고 해도 새벽 일찍 일어나 추운 데서 버스를 기다리고 도서관 앞에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나라에서 제공하는 자가용을 타고 대학에 가서 내 자리에 앉아, 때 되면 차려 주는 밥을 먹으며 원 없이 공부할 수 있었으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 모두가 주일 성수를 향한 내 마음, 그 작은 것을 기쁘게 보신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하나님은 내가 군기 교육대에서 일주일간 기도했던 것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다.

 

원처치 저자 이은태 목사

profile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 속에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다. 뉴질랜드 유학 중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개의 빌딩을 받고, 크리스천 영어학교를 세워 매년 200여 명의 기독청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 지원,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 노인 나눔센터 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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