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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비와 늦은 비의 기적

나의 ‘코드 원’, 나의 하나님 Ⅱ

by AIC posted Jun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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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

 

"나의 ‘코드 원’, 나의 하나님"

 

 

국방부로 전출
—“날개, 또 교회 가”

 다음 날 아침, 수송대에서 갑자기 나를 찾았다. 영문도 모르고 사무실에 갔더니 우리 부대에서 ‘백사’라고 부르는 감독관 준위가 앉아 있었다.

 

 “너, 국방부 갈래?”


 백사의 물음에 나는 속으로 ‘할렐루야! 이제 교회에 갈 수 있겠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보내려고 나를 다른 곳으로 옮기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문밖으로 나오자 고참들이 물었다.

 

 “야, 백사가 뭐라 그러냐?”
 “국방부 가라는데요.”
 “그래서 뭐라 그랬냐?”
 “간다고 했습니다.”
 “너 미쳤구나. 국방부 가면 죽어. 당장 다시 가서 안 간다고 그래, 빨리!”


 죽는다는 말에 겁이 나서 다시 백사를 찾아갔다.


 “저, 국방부 못 가겠는데요.”
 “뭐? 이미 발령 났어. 빨리 가서 짐이나 싸, 이제 국방부에서 너 데리러 올 거야. 빨리 가서 짐 싸!”


 국방부에는 육군이 대부분이라 파견된 타군에게는 텃세가 심했다. 내가 갔을 때도 보자마자 “야, 날개, 이리 와 봐. 너 몇 살이야? 왜 이렇게 늙었어? 마흔 살은 돼 보이네” 하며 놀려댔다. 그들은 공군을 날개, 해군을 물개라고 불렀고, 그에 대항해서 공군과 해군은 육군을 땅개라고 불렀다.

 

 얼마나 고생이 심했으면 ‘국방부에 있느니 차라리 공군 감옥에 있는 게 낫다’며 국방부 차를 몰고 공군본부로 돌아온 후 탈영했다고 자수한 사람도 있었다. 국방부의 수송대는 사회에서 트럭을 운전하던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분위기가 거칠었다. 공군뿐 아니라 육군, 해군들과 함께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생활 속에서 교회에 가기란 쉽지 않았다. 육군 소속 고참들은 주일만 되면 관물 정리를 했다. 쏘지도 않는 총을 꺼내서 분해하고 쑤시고 닦고 기름칠을 하며 열심히 청소를 했다. 그런데 공군에서 온 졸병이 “교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버리니, 그들 눈에서는 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교회 간다고 구박을 받아도 나 혼자 받으니 마음은 차라리 편했다. 국방부에 오기 전 공군본부에서 나 때문에 하늘같은 상병들이 구둣발로 차이는 광경을 본 나로서는 나 혼자 당하는 핍박이 오히려 나았다. 마침 내무반에서 가까워진 병장이 한 명 있었는데, 내가 나이도 많고 너무 간절하게 예배드리기를 소원하니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병장의 도움으로 교회에 갈 수는 있었지만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3주쯤 지나서 병장이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


 “앞으로는 교회에 가지 않는 게 좋겠다. 너를 계속 도와주려고 했는데, 내무반에서 회의를 해서 더 이상은 그럴 수가 없게 됐어. 앞으로 교회에 가는 일로 내무반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책임 못 진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병장의 사정도 있으니 더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 주 내내 내무반의 모든 관심은 내가 교회에 가느냐 마느냐에 있었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갈며 나를 주시했다. 주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너무 초조하고 두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 공군본부로 돌려보내 주세요”라는 기도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훈련소에서 다짐했던 대로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국방부에서 버텨 보고 싶었다.

 

 대신 마음에 소원이 하나 생겼다. 국방부 식당에 특이한 상병이 있었다. 나처럼 공군에서 파견되었는데, 국방부 생활이 워낙 힘들어서인지 식당에서 밥을 퍼주면서 중얼중얼 쉬지 않고 욕을 하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상병이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신장결석증’으로 국군수도통합병원에 후송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복한 후에는 공군본부로 돌아갔다고 했다.

 

 신장결석증. 이상하게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계속 ‘신장결석증에 걸리면 공군본부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주말을 향해 달려갔다. 내무반 고참들은 교회에 가는 나를 어떻게 잡을까 머리를 굴렸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 내일이면 죽든지 살든지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전에는 업무 때문에 국방부 군무원과 시내에 나갔다. 한참 차를 운전하며 가는데 옆구리가 참을 수 없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서 몸이 자꾸 한쪽으로 울어졌다. 그 상태로 운전을 하자 군무관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야. 너 왜 그래?”
 “아…… 아……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안 펴져요.”
 “안 되겠다. 일이고 뭐고 빨리 병원부터 가자!”


결국 나는 펴지지도 않는 몸으로 핸들을 돌려 국방부로 돌아왔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의무실로 갔다

 

국군수도통합병원 입원
—“꿈에도 그리던 신장결석증”

 

 군의관은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서두르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급히 구급차를 불렀다. 나는 국군수도통합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그곳은 여러 후송병원을 거친 군인들이 죽기 전에 가는 곳이었다. 그날 밤 나는 사경을 헤맸다. 열이 40도가 넘어 몸이 부글부글 끓었고,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당직 군의관이 밤새 이곳저곳을 진찰하더니 자신 있게 ‘스톤(stone)’이라고 외쳤다. 내가 그렇게 소원했던 ‘신장결석증’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진을 찍고 살펴봐도 돌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증상은 ‘신장결석증’인데 돌이 보이지 않으니 진찰을 하던 군의관이 굉장히 당황스러워 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응급실에 난리가 났다.

 

 “이 자식들, 이틀 동안 뭘 한 거야! 어떻게 병명 하나 못 알아내서 이러고 있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고참 군의관이 당직 군의관에게 소리를 질렀다. 소령인 내과 과장이 당장 나를 내과에 입원시키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나는 입원병동으로 옮겨졌다. 사람은 죽어 가고 병명은 찾아야 하니 군의관들은 마음이 급해져서 나를 붙들고 검사란 검사는 다 했다. 그런데도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었는지, 나는 24시간 내내 누워서 링거만 맞았다. 다음 날이 되자 열이 깨끗이 내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과 관찰’ 대상이었기 때문에 퇴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루에 네 병씩 한 달 반 동안 150병 이상의 링거를 맞으며 병원에서 지냈다.

 

 국군수도통합병원 내과의 입원 병동에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날 군인들만 있었다. 환자 카드에는 군번, 성명, 병명이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백혈병 내지는 암이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내과에서 죽어 가는 청년들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곳에 있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죽기 직전인 사람들이라 복음이 더더욱 귀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사병이 있다. 동해안 경비 사령부에서 근무했던 구성회라는 열아홉 살의 청년이다. 그는 백혈병에 걸려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내과 입원실 한쪽에는 별실이 있었는데 환자들은 병세가 악화되면 그곳으로 옮겨졌다. 그 방으로 간 환자들은 대부분 사흘 안에 세상을 떠났다. 

 

 구성회라는 청년은 내과 입원실에 오자마자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만큼 위독했던 것이다. 나는 매일 그를 찾아가서 기도해 주고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받아들인 후로 그 친구는 내게 자주 성경을 읽어 달라고 하기도 하고 기도도 부탁했다. 어렸을 때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면서 하나님에 대해 알아 가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자신을 면회하러 온 불교 신자인 누나에게 꼭 교회에 나가야 한다며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구원을 받게 하려고 애썼다. 주일이 되면 휠체어를 끌어 주며 그들을 교회로 인도했다. 감사하게도 그 짧은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출석했다. 병원에 있는 교회에서 나에게 전도상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복음을 증거하는 곳에는 언제나 핍박이 있기 마련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중환자들이 뼈만 남은 얼굴로 악을 쓰면서 나에게 “한 번만 더 전도하면 죽여 버리겠다”라고 말하며 폭력과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과 용기로 계속 전도하면서 병원 생활을 이어 나갔다. 입원한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내과 의사가 나를 불렀다.


“그동안 너 아프지 않았다는 거 다 안다. 근데 네가 졸병이고 군생활을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 편하게 지내라고 그냥 두었던 거다. 이제는 퇴원하고 복귀해라.”


 ‘내과 관찰’이라는 카드를 달고 한 달 반 동안 편하게 생활했고, 그 시간을 복음 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공군본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며 나는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더 추가했다. 그건 바로 공군본부로 돌아가게 되면 공군본부안의 병원(항공의학연구원, 이하 항의원)에서 근무하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원처치 저자 이은태 목사

profile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 속에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다. 뉴질랜드 유학 중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개의 빌딩을 받고, 크리스천 영어학교를 세워 매년 200여 명의 기독청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 지원,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 노인 나눔센터 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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