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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누이 교회이야기

[왕가누이 교회이야기] 어떻게 왕가누이로 가셨어요?

by ChrisLIM posted Feb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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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jpg

 

왕가누이 교회이야기 

 

"어떻게 왕가누이로 가셨어요?"

 

"하나님의 시계는 정확했고 그의 계획은 완벽했다."

 

 

주의: 이 칼럼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관점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독자들에게 왕가누이로 이주하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아주 약간 포함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와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 10번의 칼럼을 통해 이 두 종류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어보려 한다.

 

 왕가누이에 오기 전 나를 알았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어떻게 왕가누이까지 가셨어요?”

 

 2020년 1월, 나는 한국에 있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온누리교회를 떠나 금호중앙교회라는 새로운 둥지에서 자리를 잡고있었다 (참고로 금호중앙교회는 과거 오클랜드 온누리교회에서 동역했던 멘토 목사님이 청빙받아 가신 곳이였다). 당시 아내와 세자녀는 처제의 결혼식 참석차 뉴질랜드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때 COVID-19가 터졌다.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생이별을 해야했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했지만, 자녀들의 안정된 환경을 위해 당분간 떨어져 있기로 결정했다. 그 전에도 출산문제로 길게는 1년 반, 짧게는 몇 달씩 떨어져 지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서 저녁 7시, 늦으면 11시에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되니 내 몸이 망가졌다. 아내 또한 어린 세 자녀를 홀로 돌보며 지쳐갔다.

 

 어느 날 와카타네에 사시는 장모님께 카톡이 왔다. 사위 걱정 반, 딸 걱정 반의 내용이었다. 장모님의 염려를 덜어드리고자 이런 말을 남겼다. “뉴질랜드에서 담임목회 자리가 있으면 앞뒤안보고 응답이다 생각하고 이동할 마음이 있습니다.” 장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이 말에는 20%의 진심밖에 담겨있지 않았다. 새 사역지로 옮긴 지 채 1년이 안됐고, 멘토 목사님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간 곳을 그렇게 빨리 떠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안수받은지 3년 밖에 안된 초보목사를 담임목회자로 청빙 할 교회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일주일 후, 장모님으로부터 단문의 문자를 받았다. “임서방, 지금 집이야?” 무언가 다급함이 느껴졌다.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통화를 해보니 나를 담임목사로 청빙하길 원하는 교회가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연락하신 것이었다. 청빙위원장이 오클랜드에 있을 때 나랑 매우 가까이 지냈던 집사님이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사진 2.jpg

 

 

 나를 청빙하기 원했던 교회는 왕가누이 한인교회였다. 뉴질랜드에서 13년을 살았지만 왕가누이라는 지역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왕가레이와 혼동하시는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교회를 소개받고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 교회가 내가 꿈꿔왔던 교회와 매우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중 첫번째가 새벽기도가 없는 교회였다. 한때 새벽기도 신봉자(?)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몸이 상하고 나니 새벽기도 만든 분(?)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둘째로는 지역 내의 유일한 한인교회였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아무리 서로 지지고 볶고 해도 한 울타리 안에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셋째는 소형교회였다. 대형 교회와 중형교회의 경험이 있었지만 소형 교회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첫 담임목회지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하는 교회였다. 이는 선교에 중점을 둔 온누리교회의 영향이 컷을 것이다. 당시 왕가누이 한인교회는 총재정의 20%이상을 선교지로 흘려 보내고 있었다.

 

 40일간 작정하고 기도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가라는 확인을 얻었다. 결정을 내린 후부터는 실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먼저 월세집을 빼야 했다. 계약만료일 전에 빼는 거라 급하게 세입자가 필요했다. 놀랍게도 그 시기에 월세 법이 바뀌면서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월세 계약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내놓은 지 3일만에 세입자가 나타났다. 다음은 멘토 목사님과 섬기던 교회에도 말을 해야했다. 이게 가장 힘들었다. 처음에는 목사님께서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런데 며칠 후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꿔주셨다고 하시며 축복가운데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 남아있고 평생 빚진 마음으로 살 것 같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당시 입국자는 2주간의 격리가 의무였다. 격리장소는 임의로 지정됐다. 가족이 거주하고 있던 타우랑가에서 한시간 거리인 로토루아에 머물게 됐다. 게다가 그 격리소는 아내와 딸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로토루아 여행 때 머물렀던 숙소였다. 그런 작은 디테일들 통해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심을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숙소에 머물면서 지난 7년을 정리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서 그런지 정리할게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한가지 까무라치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오클랜드를 떠난 것이 2013년 10월 1일이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이제껏 하나님께서 7년 단위로 내 지경을 옮기시는 패턴이 있었기에, 떠날 때 언제 돌아올거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7년 뒤에 오겠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날이 2020년 9월 27일이었다. 곧 한국에서 머문 시간은 정확히 7년이었다. 사역지를 옮기면서 한국에 더 머물려 했고, 뉴질랜드로 오는 과정에서도 “이게 맞나?” 질문하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는 정확했고 그의 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격리를 마치고 가족과 기쁨의 재회를 가진 후, 나는 어떤 기상천외한 하나님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른 채 왕가누이로 향했다.

 

♪ Cuz you’re my girl~ you are the one that I envisioned in my dreams ♬

 

다음 이야기: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에 있는 4개의 한인교회가 한 날에 왕가누이에 모였다고? 

 

원처치 칼럼은 저자의 주장이 담긴 글입니다. 정치적, 신학적 의도나 방향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원처치 저자 임경헌 목사

profile

임경헌 목사는 Laidlaw College(B.Min)와 장신대 신대원(M.Div)을 졸업했다. 오클랜드 온누리교회 및 금호중앙교회 등 부목사를 역임하고, 현재 왕가누이한인교회와 St Andrew's 장로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임경헌 목사는 사랑스런 아내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빠이고, 뉴질랜드 1.5세대 목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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