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만] 소설 <빙점>으로 그리스도인의 죄론 이해하기(5)
©향이네 (khan.co.kr)
신.문.만 : 신학과 문학과의 만남(5)
"소설 <빙점>으로 그리스도인의 죄론 이해하기"
"나의 마음은 언제 차가워지나요? 얼어버린 마음은 무엇을 낳나요?"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결핵으로 긴 투병 생활을 보내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 그리고 용서라는 주제로 작품을 집필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바로 「빙점」입니다. 빙점은 물의 어는점과 녹는점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이 물과 같아서 언제든 사소한 것에도 차가워지기도 하고, 따듯해질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인간 존재의 내면을 도면 위의 수채화처럼 잘 그려줍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쓰에는 종합병원 원장 게이조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사랑스런 딸 루리코와 아들 도오루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눈병 때문에 남편 병원에서 일하는 안과의사 야쓰오에게 치료를 받습니다. 야쓰오는 그녀의 미모에 반하게 되고, 그녀 역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나쓰에는 치료를 위해 야쓰오를 집으로 부르고, 그와 단둘이 있게 됩니다. 이때 세 살짜리 딸 루리코가 같이 놀자고 엄마 나쓰에를 자꾸 보채죠. 그녀는 짜증석인 말로 루리코에게 친구 집에 놀러 가라고 보냅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도록 루리코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안 식구들 모두 루리코를 찾아 나섰지만 딸은 주검이 되어 돌아옵니다. 루리코를 죽인 범인은 루리코와 동년배의 딸을 둔 홀아비였습니다. 살인범은 금세 붙잡혔고, 감옥에서 자살합니다. 나쓰에는 자기 때문에 딸이 죽었다는 생각에 자책합니다. 이를 안쓰러워하던 게이조가 딸을 입양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 중에 루리코가 사라진 그 날 나쓰에와 야쓰오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는 나쓰에에게 잔혹한 형벌을 주기로 마음먹습니다. 그의 친구 유치로가 살인범의 딸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아이를 입양합니다. 그는 살인범의 딸을 애지중지하게 키우게 한 후에 그 딸이 살인범의 자녀라는 밝힐 계획이었습니다. 그의 계획대로 나쓰에는 그 여자아이의 이름을 요코라고 부르며 친자식처럼 기릅니다. 그리고 요코는 거의 완벽한 아이처럼 예쁘고 똑똑하고 착한 아이로 자랍니다. 한편, 이 모든 사실을 아는 게이조는 요코에게 차갑게 대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나쓰에와 게이조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집니다. 나쓰에는 서재를 청소하던 중 우연히 게이조의 일기장을 보게 됩니다. 그년 요코가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범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경악을 하며 부들부들 떱니다. 그때 마침 요코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충격 속에 있는 나쓰에는 갑자기 요코의 목을 조릅니다. 이로 인해 요코는 큰 충격을 받고, 나쓰에는 요코를 증오합니다. 그 미움으로 요코에게 급식비도 주지 않아 한겨울에 요코는 우유배달을 할 수밖에 없었고 눈에 덮여 죽을 뻔하기도 합니다. 반면, 요코에게 차갑게 대하는 나쓰에를 보며 게이조는 오히려 요코에게 친절하게 대하죠.
어느 날 요코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도오루와 갑자기 돌변한 엄마의 태도에 혼란스러운 요코는 나쓰에와 게이조가 부부싸움 하던 중 ‘요코가 친딸이 아니라’는 말을 듣습니다. 놀라운 사실 앞에 요코는 오히려 침착하게 ‘나중에 만날 친모에게 자신이 열심히 잘 살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도오루는 커서 성인이 되면 친동생이 아닌 요코와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 합니다.
시간이 흘러 요코는 고등학생에 진학합니다. 그리고 도오루는 대학생이 됩니다. 하루는 도오루의 친구 미츠오가 집에 왔다가 요코를 보고 첫 눈에 반합니다. 이후 그는 요코와 좋은 관계로 발전하죠. 이에 나쓰에는 둘이 잘 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 요코에게 오는 미츠오의 편지를 말없이 반송시키며 둘 사이를 이간질 합니다. 하지만 둘의 오해는 이내 풀리고 미래를 약속하려 합니다. 이를 알게 된 나쓰에는 결국 자신의 입술로 요코의 아버지가 살인자였고 말합니다.
요코는 자신의 친부가 살인범이라는 말에 경악을 하며 유서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이로 인해 집안은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힙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게이조의 친구 유치로가 요코의 출생에 대한 진실을 밝힙니다. 사실 요코는 살인자의 딸이 아니라 다른 유부녀의 혼외자라는 겁니다. 유치로는 게이조의 인품을 믿고 요코를 살인자의 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맡겼던 겁니다. 뒤늦게 이 사실은 들은 나쓰에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에 자책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요코는 나쓰에의 친 딸이 죽은 강가에 쓰러졌고, 뒤늦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지며 끝이 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이 언제 결빙현상(freezing phenomenon)처럼 얼어버리는 것인지 아느냐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절대로 녹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융해현상(melting phenomenon)과 같이 한 순간에 녹을 수 있는지 메아리처럼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또한 이는 누가 보더라도 악인 같은 사람도 선한 면이 있고, 그 누구보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눅10:25~37)도 악한 면이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는 구약성서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민12:3) 그는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을 다 받아내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였고, 가나안 땅에서 40년의 긴 세월동안 이스라엘들의 영적 아비로 그들을 잘 지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속적인 불평에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칩니다.(민20:11) 온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부드럽고 친절하고 배려할 순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울의 왕위를 대신하게 될 다윗은 사울로부터 보복을 당하며 수차례 죽을 위기를 겪습니다. (삼상19:9~11) 다윗은 자신을 위압하는 사울에게 선한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사울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삼상24:4)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선택을 했고, 자비로운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온 사람 나발이 음식을 달라는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을 모욕했을 때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당시 다윗은 나발을 향해 그 어떤 인정이나 배려를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격하게 분노하며 나발의 가문을 몰락시키고자 합니다.(삼상25:2~13) 선량한 다윗도 이중적인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와 다윗의 마음이 왜 얼어버렸는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서는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성서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서사를 풀어내는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서의 스토리에는 이런 비약인 난무하고 파편적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넘쳐납니다. 성경 텍스트는 때론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은폐되어 있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한 내적 동기와 목적도 친절하게 소개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왜 지팡이를 두 번 쳤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또, 당시 모세는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떤 불편함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는지에 대해서도 침묵합니다. 그래서 성서를 읽는 독자는 온유하다던 모세가 얼마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보편적인 감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비슷한 패턴아래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불친절하게 넘어간 사람의 감정과 심리를 인문학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고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성서에서 다루지 않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잘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녀는 빙점, 곧 어는점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인간의 원죄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겁니다.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도 자신의 저서 「고백록」(Confessions)과 「신국론」(The City of God)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근대 비판 철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도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과 「실천이성비판」(Critique of Practical Reason)에서 사람은 도덕적 법칙을 따를 능력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인 성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사람은 도덕적으로 의무를 이해하고 추구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이익에 의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진정 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죄의 속성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깨트리고, 마음을 차갑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 내면의 깊숙이 자리한 죄와 도덕적 결함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불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또한, 사람은 주변사람들이나 사회적 기대에 의한 압력, 가족 사이에서의 갈등과 자아의 상처, 그리고 정서적 고립과 같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마음이 얼어 버리기도 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소설 「빙점」에서 각각의 등장인물을 통해 이러한 마음의 얼음이 깊어지는 과정을 드러냅니다. 선량한 사람 게이조를 통해 신망을 받는 사람도 배신감의 덫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그는 딸의 죽음이 나쓰에의 잘못된 행동과 결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며 복수와 증오심 속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나쓰에를 연민하지 못하고, 그녀의 마음도 전혀 이해 못합니다. 한편 아름다운 외모와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나쓰에를 통해선 남편의 비밀과 거짓말로 인해 생긴 불신에 마음이 무너져 그녀가 가진 아름아운 모성애적 감정을 잃어버립니다. 요코는 착한아이 콤플렉스(nice guy syndrome)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양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가족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제하고 항상 착하고 순종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인자의 딸이라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토대가 흔들리며 내면적 갈등이 극단에 달하게 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자살기도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인식도 사람의 마음을 얼게 합니다. 나를 기준으로 관계를 맺을 때 사람은 상대방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합니다. 게이조는 아내를 배신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복수를 할 생각으로 행동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감정과 분노를 기준으로 나쓰에와 요코와의 관계를 맺으며 가정 내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나쓰에는 자신의 감정과 상처만에 매몰되어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요코와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요코에게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기준으로 관계를 맺게 되면 타자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공감도 할 수 없게 되어 소통도 단절되고 오해는 깊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다 높은 윤리적 의식을 가지고 교회와 세상에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옮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과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언제 어떻게 어는 지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은 점점 고립되게 되고, 좁은 시야 속에 상대방과의 관계는 불편해 질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우리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파악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내 마음의 동요를 예민하게 느끼고 더 나은 선택으로 내 마음도 보호하고, 타자의 마음도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어는점을 알아야 우리의 얼어버린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온도로 회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에 이름을 지어주어 불현 듯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을 직면하여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지능이 있는데 이를 인식하기 위해선 감정 라벨링(emotion labeling)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정서적 자기 관리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됩니다. 이 감정 명명(emotion naming)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하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보다 논리적으로 그 감정을 처리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전달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여유 속에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타자 중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원처치 저자 탁재우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과정(M.DIV)을 마치고, 숭실대학교에서 성서신학(TH.M)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오클랜드 한인교회에서 다음세대 사역을 섬기고 있으며, 청년사역자모임(청사모)에서 회장으로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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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신앙 (3) 저출산 인구 절벽시대에 교회의 역할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1:28 대한민국 인구가 2020년 정점(5,184만 명)을 지나 2021년(5,174만 명) 감소했다고 통계...Date2024.04.26 Category교회와 신앙 Reply0 -
[성경과 통일] 명칭 사용에서 본 우리 민족의 우선 과제: 통일이냐 평화냐
(출처: 위키백과) 성경과 통일 (3) 명칭 사용에서 본 우리 민족의 우선 과제 "통일 대신 평화를 강조하고 남북 통일을 외치기 전에 한-조 평화를 이루는 것이 우선적인 민족 과제라 생각된다." 1948년 이후,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현재까지 한반도에...Date2024.04.22 Category성경과 통일 Reply0 -
왜 신약성경의 세계속에서 신약성경을 묵상해야 하는가? (3부)
주후 50-79년 사이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 폼페이에서 발견된 제빵사 테렌티우스 네오와 그의 아내의 벽화. 테렌티우스(남편)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고, 그의 아내는 펜과 같은 기능을 했을것으로 추정할수 있는 스타일러스와 계산 하는 판을 들고 ...Date2024.04.14 Category신약의 세계 속에서 묵상하는 신약성경 Reply1 -
[일기쓰기] 도전! 암호는 어떻게♡(1/2)
일기쓰기(3) 도전! 암호는 어떻게♡(1/2) "생각, 말, 행동, 잘한 것, 못한 것을 모두 일기에 적어보려고 해, 그런데, 암호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풀어 쓴 찰스 웨슬리의 편지에서 1729년 1월 22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영성 수업과 영성 훈련, 그리고 ...Date2024.04.08 Category일기쓰기 Reply0 -
[교회와 신앙] 녹슨 못의 영향력
교회와 신앙 (2) 녹슨 못의 영향력 "교회 공동체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부정한 상태도 아니고 정결한 상태도 아닌 거룩한 상태여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자주 사용하는 못, 나사못, 볼트, 너트등이 들어 있는 플라스틱 못 통을 정리하면서 흥미로...Date2024.03.31 Category교회와 신앙 Reply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