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Z 최초 한인 목회자 김용환 목사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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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누아투 선교 이야기 (3) 산토섬  원주민들의 생활

by 원처치 posted Oct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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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누아투 선교 이야기

 

(3) 산토섬  원주민들의 생활

 

말라타우 교회는 바누아투 원주민 선교사역에 최초 원주민 교회를 세워서 원주민 선교를 시작했던 교회다. 이곳은 순 원주민들만이 사는 깊은 산곡마을이었다. 그간 수많은 외지인들이 바누아투를 드나들었으나 당시 이곳 깊은 산골마을까지는 들어가지 않았었다. 바누아투 산토섬을 중심으로 원주민 마을은 거의가 다 같은 형편이었다.

 

첫째-남녀 간 옷을 입지 않고 산다.


그곳 원주민들은 사리라고 하는 풀잎으로 여자들은 하체를 가리고 거의가 다 유방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놓고 산다. 그리고 남자들도 하체의 생식기만 헝겊 천으로 가리고 지낸다. 그러니 남녀 간에 전혀 옷을 입지 않고 사는 원주민들은 영락없이 원시인 그대로이다. 외지인들이 와도 자기들의 벌거벗은 자기 몸에 대하여 전혀 부끄럽다든지 수치스럽다든지 그런 것이 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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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목사와 바누아투 부시 원주민들의 모습

 

둘째-그들은 거의 문맹자들이다
 

주로 원주민들은 바누아투의 국어인 비슬람어를 사용하지 않고 현지어인 그 지역말을 사용한다. 그렇기에 바누아투 83개의 섬으로 된 나라에 현지어 사용이 100개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어서 언어소통이 대단히 어려운 곳이다. 언어소통이 문제가 됨으로 현지어를 아는 사람의 동행과 통역이 필요하다. 이렇게 산속에 사는 원주민들은 전혀 글을 읽지도 쓰지 못하고 자기 이름조차 쓰고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원주민 마을에 들어갈 때면 했던 설교가 가장 쉬운 말로 에덴동산 이야기, 탕자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 거지나사로와 부자 이야기 등이었다.  

 

셋째- 그들은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옷을 입지 않고 벌고 벗고 살기 때문에 매일 매일 이산 저산으로 다니면서 열매를 따고 나물을 뜯으며 활동을 하기에 온 몸에 상처투성이다. 나뭇가지와 사나운 가시에 화산지역의 거친 돌멩이 등으로 인해 몸에 상처가 나기 일쑤인 것이다. 그곳에는 약도 병원도 간호사도 의사도 전혀 없어 의료해택은 전혀 없는 곳이기에 많은 원주민들이 약 한번 연고 한번 발라보지 못하면서 사는 원주민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과 치료가 동시에 중요함을 알고 원주민들에게 갈 때 마다 많은 연고와 대일밴드를 준비해 갔다. 연고와 밴드로 상처를 싸매주면서 목사와 의사와 간호사 노릇을 하며 원주민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그런 의료사역의 선교 효과는 100%가 넘었다. 연고를 가지고 상처 치료가 시작되면 온 동리마을 전체 사람들이 모여 상처 치료를 받으면서 성경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복음과 치료가 겸한 선교사역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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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목사가 원주민들에게 옷을 나눠주고 있다

 

넷째-주일이면 예배를 드린다.


주일이면 온 동리사람들을 제일 큰 움집에 모아놓고 성경이야기와 기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준다. 그리고 감사, 회개와 간구의 세 가지 기도를 쉽게 설명하여 꼭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하게하였다. 그리고 일주일 중 주일 하루는 일하지 않고 쉬라고 하면서 주일성수도 가르치고 헌금하는 것도 가르치면서 원주민 선교활동을 하였다.

 

다섯째-문맹자들을 위하여 교육선교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글을 알지 못하니 성경도 읽을 수가 없고, 글을 모르니 너무도 원시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현지 움막교회에 신학교를 졸업한 원주민 신학생 전도사를 파송하여 낮에는 비슬람어(국어)를 가르치게 하였다. 밤마다 비슬람어 ABC부터 가르치기를 시작하였다. 복음과 교육과 치료의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치중하여 일 년간 계속했더니 놀랍게도 동리주민들의 거의가 비슬람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원주민들의 이런 모습을 보니 옛날 한국도 해방 후 남녀노소 막론하고 밤마다 교회에 모여서 한글을 배웠던 시대를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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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목사와 바누아투 부시 원주민들의 모습

 

이렇게 바누아투 원주민 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선교 방법으로 활동하는 것을 본 현지교단인 바누아투장로교 총회는 아주 좋은 선교방법이라고 칭찬하며 장로교 직영신학교인 타루아신학교에 BUSH MISSION COURSE 과정을 새로 만들었다. 총회적으로 부시마을 학생들을 모집하여 원주민선교사역에 사명이 투철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1년 동안 순전히 원주민 교회 사역자로 양성하며 원주민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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