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가난 중에도 함께하신 하나님
하늘 문을 열고 부어 주신 하나님
"고통스러운 가난 중에도 함께하신 하나님"
미지의 땅 뉴질랜드
—“뉴질랜드? 어디 있는 거지?”
방황은 길었고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셨다. 교통사고로 어린아이를 치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한 후 13년이 흘렀다. 어린아이를 차로 쳤을 때 나는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다.
“하나님! 왜 저 때문에 이 아이를 다치게 하십니까? 제 다리 하나만 부러뜨리셨으면 회개하고 돌아왔을 텐데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다.
“다음은 네 차례야.”
하나님의 경고대로 나는 매를 맞았고 무릎이 박살났다. 그런데 걸어서 병원을 나가게만 해주시면 바로 신학을 하겠다고 서원한 뒤에도 3년을 방황했다. 나는 정말로 패역한 인간이었다. 목회자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부흥 집회에서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바로 목회의 길을 걸었다는 사람도 많던데,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방황하면서 하나님을 기다리게 했던 것이다.
방황하는 3년 동안에도 하나님은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주셨다.
“그래, 내가 너를 때려도 돌아오지 않는구나. 그럼 다음은 네 아들 차례다.”
이런 말씀이 들려오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들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도 바싹 말라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약한데, 저 아들이 매를 맞으면 어떡하나? 지난번 교통사고 때 머리를 다쳐서 한동안 잠도 못 자고 두통에 시달렸는데……. 걱정때문에 하루하루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또 다른 매를 맞기 전에 어느 신학교든 가야 할 것 같았다.
한전에 근무하던 시절, 서울 시내에 있는 한전 아파트에 살았는데 바로 옆집에 살던 이웃 직원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나는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혹시 신학교를 알아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친구는 마침 이웃에 아는 전도사님이 있다며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그 전도사님이 다니던 하나님의 성회 (Assembly of God, AOG) 신학교에 지원하기로 했고, 감사하게도 입학 허가를 받았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뉴질랜드가 낙농 국가라는 것만 알았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뉴질랜드가 유럽에 있는 나라인 줄 알았다. 입학 허가를 받자마자 우리 가족은 여행용 가방 세 개만을 챙겨서 미지의 땅 뉴질랜드로 향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뉴질랜드로 가는 내내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1995년 4월 8일,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학교를 소개해 주고 입학을 도와준 전도사님이 공항으로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오클랜드 중심에 있는 하버브리지를 건널 때, 뉴질랜드의 바다를 보고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눈부신 햇살 아래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푸르고 투명한 바다는 너무나 멋진 장관이었다. 하지만 찬란한 뉴질랜드의 자연 속에서 마냥 즐겁기만 한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들을 어떻게 인도하실까? 우리의 미래도 과연 저 햇살처럼, 저 푸른 바다처럼 눈부실 수 있을까? 두렵고 막막했다.
한국에서 집과 차를 다 팔고 가방 세 개만 들고 무작정 찾아온 미지의 땅 뉴질랜드. 누구에게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집을 판돈으로 유학을 왔으니 실패라도 하면 돌아갈 곳마저 없는 상황이었다. 차로 한 시간가량 달려 전도사님 댁에 도착했다. 전도사님 댁 바로 옆집에 방을 얻었으나 한 달을 기다려야 해서, 그동안 그 전도사님 댁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다. 전도사님 댁은 기대와 달리 판잣집처럼 초라했다. 방 두 개짜리 좁은 집에서 두 가정이 지내기가 무척 불편했지만 그래도 당분간 지낼 곳이 있어서 감사했다.
한 달 동안 전도사님 가족들과 지낸 후에 집을 옮겼다. 방 두 칸짜리 집을 빌렸는데, 집이 너무 낡아서 곰팡이 냄새가 심했다. 축축한 카펫에서 침대도 없이 잠을 잤고, 과일도 제대로 못 먹는 생활이 이어졌다. 과일 가게에서 상한 과일을 싸게 팔기도 했는데, 이런 상한 과일을 잔뜩 가져와 성한 부분만 골라 먹었다. 그렇게라도 가족들에게 과일을 먹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앞으로는 이런 과일들을 사오지 말라고 했다. 쓰레기봉투 값이 더 드니 차라리 안 먹는 것이 낫다고 했다.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동안 한국에서 편하게 살았는데, 다시 시작되는 가난은 나와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게다가 신학 공부가 얼마나 길어질지, 뉴질랜드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알 수가 없어서 그릇도 가져오지 못한 상태라 여행용 코펠을 사용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코펠이라도 일반 그릇만큼 튼튼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구멍 난 코펠 그릇을 닳고 닳도록 쓰다가, 결국은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며 누군가가 쓰다 버린, 조금씩 깨지고 이가 나간 그릇을 구해 와서 사용했다. 그야말로 나그네 삶이었다. 어린 아들이 먹고 싶다는 1불짜리 햄버거조차 사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아끼며 생활해도 돈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정말 심장이 녹는 것 같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사과에 붙은 상표 스티커를 떼다가 자기 공책에 열심히 붙였다. 그 이유를 물었다. 요즘 스티커 붙이기 놀이가 유행이라며 친구들은 모두 스티커 책을 갖고 있는데 자신은 5불짜리 스티커 책이 없어서 사과에 붙은 스티커를 공책에 붙이는 거라고 했다. 갖고 싶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스티커 북을 하나 사주었더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지금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나이에 반짝거리는 스티커를 가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신이 났을까? 게다가 이 녀석이 얼마나 재주가 좋은지, 제일 싼 스티커를 가져다가 값비싼 스티커로 바꿔왔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부모로서 참 안타깝고 측은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영어로 공부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영어 공부를 계속 할 수 있게 인도하셨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학교에 오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학교에 간 첫날, 내 소개를 했더니 옆에 있던 뉴질랜드 학생이 말했다.
“인사를 영어로 해야지, 왜 한국말로 하나요?”
그 친구가 내 한국식 발음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의사소통이 잘될 리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해도 과제물을 제출하기가 어려웠다. 영어로 신학을 공부한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물론 제일 큰 고통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뉴질랜드에 올 때는 신학을 마치고 현지 선교 단체에 취직해서 선교하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알아보니 선교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다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에 나 같은 동양인이 취직해서 월급 받으며 일할 곳은 없었다. 내 꿈은 이뤄질 가능성조차 없어 보였다. 수중에 돈은 줄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신학교를 졸업해도 나를 불러 줄 곳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절망스러웠다. 오죽하면 새벽에 공부를 하다가 책을 집어던져 버렸을까. 정말 하나님께 매 맞을까봐 죽지 못해서 하는 공부였다.
1년이 지나니 더 이상 공부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라도 구해 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나이 든 동양인을 써주는 곳은 없었다. 게다가 다리에 장애까지 있어서 노동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가지, 매일 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하나님께 여쭙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영어 연수 과정 개설과 학생 모집
—“유학 갈 아이들은 다 간 것 같으니 이제 돌아갑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오직 기도로 매달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혜를 주셨다. 그때는 이민의 문이 열려서 뉴질랜드로 이민 오는 한국 사람들이 많았고, 공부하러 오는 유학생들도 급증하는 추세였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니던 신학교에 영어 과정을 개설해서 유학생들을 신앙 안에서 공부시키라는 마음을 주셨다.
나는 신학교 학장님에게 영어 과정을 개설하자고 제안했다. 그 당시 신학교의 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유학생이 많이 오면 신학교도 도울 수 있고 내 미래도 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안을 들은 학장님은 좋은 생각이라면서 교단측과 상의해 본 후에 답을 주겠다고 했다. 바로 답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1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애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기다림 끝에 교단의 대표 목사님 두 분이 나를 찾아왔다. 교단에서 회의하고 검토한 결과, 이 일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붙잡고 1년이나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안 하겠다니. 나는 되지도 않는 짧은 영어로 두 시간 동안 그분들을 설득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인데 왜 이렇게 믿음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실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두 목사님이 한참 생각하더니 한 번 더 회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이 땅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것 같아 참으로 막막했다. 2개월 후 그분들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우리가 회의를 해봤지만 안 하기로 했습니다. 하려면 당신 혼자 하십시오. 원하면 신학교의 이름을 빌려 줄 테니 수익금은 신학교로 입금하세요.”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지만 신학교와 연계해서 취업 비자라도 받아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해보겠다고 말했다. 신학교도 당장 영어 과정을 개설할 여건이 되지 않아서, 한 크리스천 랭귀지 스쿨과 연결하여 그 학교 안에 크리스천 영어 과정을 개설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신학교를 휴학하고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무작정 한국으로 갔다. 하지만 한국에 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광고를 낼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학생을 모집할 만한 사무실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먼저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다.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분을 통해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연결되었고, 순복음교회 내 미주선교회에서 학생을 모집할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다. 사실 순복음교회 안에서는 어떤 영업 활동도 금지되어 있어서 학생을 모집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내가 순복음교회 교인도 아닌데 누가 이런 일을 허락하겠는가?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순복음교회 가족신문을 통해 모집 광고가 나가게 되었다. 매주 70만 성도가 보는 신문에 광고가 나간다니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모른다. 신문이 나간 다음 날, 기대하며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수요일, 금요일 예배가 지날 때까지 전화를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실망과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사무실을 준비해 주신 하나님께서 학생들도 보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를 도와주었던 그분은 한국에서 개인적인 일들을 마치고 몇 주를 지켜보다 먼저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유학 갈 아이들은 이미 다 간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갑시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분명히 보았기에 혼자 남아서 학생들을 기다렸다. 얼마 뒤에 하나님은 <국민일보>를 통해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다.
“뉴질랜드 하나님의 성회 신학대학 영어 연수생 모집”
돈이 없어 광고를 내지는 못했지만 신문 한 구석 알림란에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너무 작아서 찾아보기도 힘든 이 기사가 나간 후 기적이 일어났다. 하루 종일 세 대의 전화기에 문의가 폭주한 것이다. 이 기적을 통해 첫해에 스물여덟 명의 학생을 모집하게 되었고 영어 과정을 개설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었다.
학교는 순조롭게 운영되었고 나는 미래에 대한 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6개월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차 학생 모집을 위해 다시 순복음교회를 찾았다. 그런데 미주선교회가 없어져서 더 이상 학생을 모집할 곳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학원선교회’라는 곳으로 인도하셨고 그 곳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게 여건을 허락하셨다.
그때 한국은 IMF가 발생하기 1년 전이어서 국가 재정이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한겨울인데도 나는 매일 밤 도봉산 영락기도원에 가서 눈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른여섯 명의 학생을 보내 주셨고 영어 과정을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
원처치 저자 이은태 목사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 속에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다. 뉴질랜드 유학 중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개의 빌딩을 받고, 크리스천 영어학교를 세워 매년 200여 명의 기독청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훈련을 시키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 지원, 다니엘 크리스천 캠프, 노인 나눔센터 사역을 하고 있다.
지난 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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